말레이시아 랑카위에서
말레이시아 랑카위 섬의 레지던스에 묵고 있을 때였다.
조용한 주택가에는 집에서 키우는 개도 있었지만 떠돌이 개들이 훨씬 많았다.
첫날밤, 새벽에 수많은 개들이 모여 늑대 울음소리처럼 울부짖는 바람에 나는 잠을 깼다. 태어나서 그렇게 무시무시한 소리는 처음 들어보았다. 그런데 날이 새고 낮에 본 개들은 그리 사나워 보이지는 않아서 크게 걱정을 하지는 않았다.
다음 날, 섬이라서 그런지 통신 상태가 좋지 않아 통화를 위해 밤중에 밖으로 나왔다. 아니나 다를까, 개 몇 마리가 나에게 달려들었다. 나는 위협감을 느껴서 개들에게 날카롭게 소리쳤다. 내가 소리치자 대부분 개들은 물러났지만 그 중 한 마리는 내 곁을 떠나지 않았다.
나는 몇 번이나 그 개를 보내려고 했지만, 개는 가는 척 하다가 다시 돌아와 내 주변을 맴돌았다. 그때서야 나는 그 개를 자세히 들여다 보았다. 우리나라에도 어딜 가나 흔히 볼 수 있는, 조금은 야윈 누렁이였다.
누렁이는 내 곁에 순하게 서 있다가, 내가 발길을 떼면 꼬리를 흔들며 따라왔다. 그런데 가로등 아래서 자세히 보니 누렁이의 머리 윗부분에는 날카로운 물체에 찍힌 상처가 선명했다. 아직도 핏자국이 남아있는, 손가락 한 마디 정도의 상처였다. 나는 그 상처가 사람에게 당한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통화를 하면서 누렁이를 더 이상 밀어내지 않았다. 누렁이는 처음 본 나를 따라다니며 자꾸만 내 다리를 핥으려 했다. 나는 길가에 놓인 허리 높이의 콘크리트 구조물 위로 올라갔다. 그랬더니 누렁이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껑충 뛰어올라 내 옆에 쭈그리고 앉았다.
제법 긴 시간 동안의 통화를 마칠 때까지, 누렁이는 내 곁을 떠나지 않았다. 내가 누렁이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상처 난 이마 대신 목덜미를 몇 번이고 쓰다듬어 주는 것이 전부였다.
랑카위의 밤은 바닷바람이 불어 제법 시원해졌다. 나는 그 개와 함께 밤바다를 산책했고, 새벽이 가까워져서 숙소로 돌아왔다. 숙소의 대문을 닫는데, 누렁이는 아쉬운 듯 꼬리를 흔들며 내게 눈인사를 건넸다.
누렁이와 헤어지고 날이 밝은 뒤, 나의 아침식사인 호밀식빵을 누렁이를 위해 숙소 대문 앞에 내놓았다. 우유도 플라스틱 접시에 따라 두었다.
그날 나는 숙소를 다른 곳으로 옮겨야 했기에, 누렁이가 그 빵을 먹었는지 알 수가 없다. 하지만, 누렁이가 빵이나 우유를 위해서 내 곁을 지킨 것은 아니라는 것만은 알고 있었다.
그날, 왜 누렁이는 나를 따라왔을까? 내가 잠을 이루지 못하고 새벽 바다를 거닐 때, 왜 내 곁을 끝까지 지켜주었을까? 누렁이를 만난 지 며칠이 지나도록, 내 머릿속에는 누렁이의 상처 난 이마와, 내 곁을 맴돌던 모습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누렁이도 외로웠을까? 나를 보며 자신도 위로를 받고 싶었을까? 나는 누렁이 이마의 상처를 보며, 그것이 누렁이의 것이 아니라, 나의 것이라고 느꼈을까? 나도 누렁이만큼이나 외로웠을까?
앞으로 나는, 어디서든 누렁이와 비슷한 개를 볼 때마다 랑카위 섬에서 내 곁을 지켜준 누렁이를 떠올릴 것이다.
고마웠다 누렁아. 그 상처 부디 잘 아물기를. 다시는 상처 받지 않기를...
살아가다 보면 누구나 외롭고 힘들 때가 있을 것이다. 그때, 잠시라도 기댈 수 있고, 위로를 받을 수 있는 누군가가 곁에 있다면, 그것은 한 사람의 삶에서 참으로 다행스럽고 고마운 일일 것이다.
나는, 숱한 날들을 살아오면서, 누군가에게 누렁이만큼이라도 힘이 되어준 적이 있을까, 부끄럽지만 곰곰이 생각해 본다.
랑카위 주택가에서 바라본 노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