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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 있잖아,
영감님 같다는 소리 듣는대

by 용감한 겁쟁이

고등학교 1학년 생각하면 왠지 모르게 가장 많이 떠오르는 친구가 있다. 야자가 자율이던 시기였지만 항상 나와 같은 반에서 석식을 먹고, 야자를 하던 친구여서 그런 걸까 아니면 하필 그 시기에 롤(LOL)을 알려준 친구여서 그런 걸까.


처음으로 고등학생이 된 어리바리한 상태에서, 처음으로 다른 학교 친구를 학원이 아닌 곳에서 만났기 때문인지 이 친구와 급속도로 친해졌다. 아니네, 장난치는 것과 말에 유머가 기본적으로 배어있는 친구여서 그런 것 같다.


1학년 때 그렇게 붙어 다니던 친구와 2학년, 3학년 때 다른 반이 되고 대학교까지 다른 곳으로 가다 보니 만나면 너무 반갑게 인사하지만 자연스럽게 연락을 하지 않게 됐다.


그러던 중 28살이 된 시점, 더 정확히 말하자면 28살 내가 제주도로 가기 전, 23년 5월 17일에 우연히 술을 (처음으로) 마시게 됐다. 20살 이후 처음으로 같이 술 마시는 거라 어색한 듯했지만 무사히 술자리는 마무리됐고, 제주 잘 다녀오라면서 기프티콘까지 보내주는 사이로 조금 발전했다.


제주에 다녀온 후, 9월이 생일인 그 친구에게 "생일 축하한다"라는 카톡에 "고맙다, 제주에서 잘 지내고 있지?"라는 답장을 받았고, "나 제주도에서 올라왔어.."라는 답을 보내자마자 "함 보자 술 한잔해야지"라는 말이 돌아왔다.


'뭐 보자는데, 담에 보자 하기 애매하다'라는 생각에 "그래 보자" 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이 친구는 내가 제주에서 무슨 일 생겨서 다시 올라온 줄 알고 걱정돼서 술 마시자고 한 거였다. 걱정되는 마음에 시작된 술자리가 우리에게 새로운 경험을 시켜줄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둘 다 홈 프로텍터(Home Protector)인 상태였는데, 얘기를 하다 보니 서로 무언가라도 하고 싶은 상태인데 강제성이 없다 보니 흐지부지한 상태인 걸 알게 됐다. "우리 뭔가라도 해보자, 이대로 시간을 버리지 말자"라는 말의 시작으로 "작업실을 구해보자"라는 결론으로 마무리됐다(?)


발전하고 싶은 우리의 열정 때문인지, 소주가 만들어준 알딸딸함 때문인지 술 집에서 나와 바로 작업실 계약까지 했다. 고등학교 근처에 위치한 작업실인데, 딱 1자리 남아있다는 말은 우리를 말릴 수 없었다.(운명인 거지 이건)


계약한 다음 날부터, 우리는 아침 8시에 만나 '나를 알아가는 질문'으로 하루를 시작했고 얘기하는 모습들을 영상으로 남겨놨다. 이러한 이야기를 한 달 정도하다 보니, 서로 하고 싶은 일을 위해 "일단 행동하자"라는 마음가짐으로 각자의 할 일들을 조금이라도 계속해서 행동했다.


[나를 알아가는 질문 예시]

(서로에게 같은 질문을 하고 직접 적어보는 시간을 가졌다.)

너의 진짜 꿈은 뭐야?

지금 정말 무엇이든 되고 싶다면 어떤 걸 하고 싶어?

너의 강점은 뭐야?

너의 약점은 뭐야?

....


두 달 정도, 이 친구와 오글거리지만 진솔한 이야기를 하다 보니 나에 대해서 더 알게 되고 확신이 생긴 점도 좋았지만, 이 친구에 대해서도 새롭게 알게 된 사실들이 있었고, 부러운 점들이 생겼다.


새롭게 알게 된 점은 '정말 생각이 많은 친구'라는 거다.

스스로 생각하기에 나는 생각이 많은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이 친구에 비하면 생각이 없는 편이다. 행동, 말 하나하나에 생각을 많이 하고 움직이거나 말을 하는 친구였고, 반대로 다른 사람의 행동, 말 하나하나에도 신경을 많이 쓰는 친구였다.


그리고 '어떠한 행동을 할 때, 나와는 정반대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구나'라는 걸 알게 됐다. 물론 나와 다른 사람이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정반대로 생각하는 사람의 말을 진지하게 들을 수 있는 시간이 많진 않았던 것 같다.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을 이해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고, 나와는 생각이 다른 사람들이 정말 많겠다는 걸 알게 됐다.


부러운 점 첫 번째는 꾸준히 성실하게 무언가를 한다.

그중에 운동, 헬스를 정말 꾸준히 하는데 일주일에 5-6회 정도 1시간씩이라도 운동을 하는 게 나한테는 멋있어 보인다. 추가로 식단까지 꾸준히 단백질을 섭취해가는 그 모습이 독해 보이면서도 나는 못하고 있으니 대단해 보이더라.


두 번째는 말을 정말 잘 들어준다.

말이 많은 친구이긴 한데, 그만큼 말을 잘 들어준다. 정말 진심으로 말을 들어준다는 게 느껴지고, 말을 들을 때는 뭔가 자기가 그렇게 된 거 마냥 공감해 주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아닐 수 있음, 개인적인 느낌임) 이 친구가 했던 많은 이야기들 중, 상담 관련된 일을 해보고 싶었다는 말이 떠오르는데 잘 어울렸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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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는 각자의 꿈을 위해, 현재 해야 할 일을 하기 위해 작업실을 마무리하고 나왔다. 작업실에서 우리가 나눴던 꿈 얘기들 중에서 이룬 게 있다면 얼마나 뿌듯할까? 그것도 서른 전에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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