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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준호 Mar 15. 2019

오르세 미술관의 오페라

세기말 파리의 풍경

프랑스를 미술의 나라라고 부르는 데 반대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음악은 어떠한가? 프랑스에게 음악은 어떤 것이었는지, 20세기에 이곳에 온 러시아 작곡가 스트라빈스키의 눈으로 살펴본다. 인상파 미술 교과서에서 본 음악은...


원래는 노트르담 성당을 산책 삼아 다녀왔다가 호텔에서 다시 여장을 차려 나올 생각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파리에 온 이래 처음으로 날씨가 맑았고, 컨디션도 그만이다. 바로 센강 건너편 생 미셸 역으로 향했다. 여기서는 한 정거장만 가면 오르세 미술관이다. 역 이름이 생 미셸인 것은 그 앞 광장에 미카엘 대 천사상이 있기 때문이다. 함부르크의 수호성인이자 로마 산탄젤로 성을 지키는 최고 천사가 오늘 나와 함께 하기를 기대하며 열차에 올랐다.


오르세 미술관 앞 매표 줄은 벌써 길지만, 다행히 박물관 패스 소지자의 줄은 그렇지 않다. 내가 선 바로 앞에 레종 도뇌르 박물관(Musée de la Légion d'honneur)이 있다. 프랑스 최고 훈장의 제정 내력과 역대 수상자에 대한 정보를 소장하고 있으리라. 그러나 나는 박물관을 향해 혼자 콧방귀를 뀌어주었다. 스트라빈스키가 에릭 사티로부터 들은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레종 도뇌르는 그것을 거부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그 가치조차 평가하지 말아야 한다.”

일체의 허례허식을 거부했던 사티다운 촌철살인이다. 물론 내가 그와 같이 냉소적일 필요는 없었지만, 관람할 시간이 없는 이곳을 ‘신포도’ 취급을 한 것이다.

오르세 미술관 옆의 레종 도뇌르 박물관

마침내 오르세 미술관에 들어선다. 기차역을 개조해 만든 프랑스 근현대 미술의 보물창고이다. 우리가 아는 인상파 미술의 걸작은 거반이 이 미술관에서 온 것이라고 보면 된다. 국내에도 몇 년에 한 번 ‘오르세 특별전’이라는 이름으로 순회 전시가 열리지만, 알맹이는 뺀 채 호객을 위한 미끼만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초입부터 밀레의 <이삭줍기> 같은 그림이 나오고 여기저기서 한국말이 들린다. 그러나 스트라빈스키와 러시아, 벨 에포크라는 주제 의식을 가지고 온 이상 내 관심을 끄는 그림은 좀 덜 붐비는 곳에 있었다.

너무 빨리 패스해서 초점도 흔들리고... 미안하다 밀레...

가르니에 극장의 얼개를 보여주는 미니어처가 정교하다. 오페라 예술이 얼마나 위대한 하드웨어에 힘입은 것인지 새삼 확인케 했다. 인상주의 화가들의 그림을 모아놓은 방을 거니는 느낌은 마치 그림 속 풍경에 직접 와 있는 듯했다.

스카라무슈와 킹콩이 객석으로 난입하는 장면이 떠오른다
신데렐라의 구두는 어디에...

러시아 5인조 가운데 가장 독창적인 음악을 썼고, 스트라빈스키의 스승 림스키코르사코프와 절친했던 무소륵스키. 그가 쓴 대표작은 <전람회의 그림>이다. 하르트만이라는 화가 친구의 유작전에서 본 그림들을 떠올리며 작곡한 모음곡인데, 한곡 한곡 옮겨갈 때마다 ‘프롬나드promnade’라는 간주곡이 나온다. 바로 그림과 그림 사이를 옮겨가는 이동을 프롬나드, 곧 산책이라 표현한 것이다. 나는 고흐의 농가를 지나 (프롬나드) 모네의 개양귀비가 핀 언덕을 너머 (프롬나드) 수련이 그득 핀 연못 위 다리를 건넜고 (프롬나드) 피아노를 치는 르누아르의 소녀들과 인사를 한 뒤에 (프롬나드) 막 풀밭 위에서 점심을 먹으려는 마네의 손님들을 만났다.

이 <명랑 운동회> 중간에 나오는 중절모가 안무가 모제스 펜들턴이다. 바로 샹젤리제에서 만난 모믹스의 제작자

그러나 이런 유명한 장면에 그리 오래 머물 시간이 없었다. 오히려 내 발길을 붙잡은 그림은 그보다 덜 알려진 장 베로(Jean Béraud, 1848-1935)의 <성 삼위일체 교회 앞>과 <야회> 그리고 앙리 제르베(Henri Gervex, 1852-1929)가 그린 <오페라 무도회>와 장 프랑수아 라파엘리(Jean-François Raffaëlli, 1850-1924)의 <결혼식을 기다리는 하객>이었다. 동년배인 세 사람은 당대 파리의 풍경을 섬세한 필치로 담아냈다. 전원의 풍경이 주를 이루는 인상주의 회화보다는 모든 문화의 중심지였던 파리의 모습을 그린 이들의 그림이 더 신선했다.


장 베로는 프랑스 사람이지만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태어났다. 그와 이름이 같은 아버지가 당시 건축 중이던 성 이삭 성당에서 조각가로 일할 때 아들을 본 것이다. 타지에서 남편이 세상을 떠나자 아내는 아들을 파리로 데리고 돌아왔다. 러시아에서 보낸 어린 시절 탓인지 아들 베로가 그린 <성 삼위일체 교회>와 <야회>는 마치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나 《전쟁과 평화》에 나오는 장면처럼 보인다. 파리 성 삼위일체 교회에서 1869년에 베를리오즈의 장례식이, 1875년에는 비제의 장례식이 열렸다. 베로의 그림은 1901년 크리스마스의 풍경이다. 그림 어딘가에 생상스나 드뷔시가 들어 있지 않을까? 스트라빈스키가 파리에 오려면 10년이 더 지나야 한다.

장 베로의 <성 삼위일체 교회>

베로의 <야회>와 제르베의 <오페라 무도회>는 파리 상류 사회의 단면을 생생하게 담아냈다. 차이콥스키의 <예브게니 오네긴> 가운데 ‘폴로네즈’와 ‘왈츠’, 프로코피예프의 <전쟁과 평화> 가운데 ‘무도회 장면’이 파노라마처럼 스쳐간다. 무도회는 앞서 말했듯이 문명사회가 낳은 양식화된 짝짓기이다. 베네치아 카니발이 빈으로, 다시 요한 슈트라우스 2세를 통해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이식된 것이다.

요한 슈트라우스의 <크라펜 숲에서>, 원래 상트페테르부르크의 파블로프스크 숲을 위한 곡이었다

스탠리 큐브릭 감독이, 소비에트 시절 작곡된 쇼스타코비치의 ‘재즈풍 왈츠’를 20세기 말 자본주의의 상징인 뉴욕의 파티장에 사용한 것은 기막힌 아이디어이다. 세기말 빈의 작가 아르투어 슈니츨러의 《꿈의 노벨레》가 원작인 영화 <아이즈 와이드 셧>은 무르익은 문명이 어떻게 타락하는지 제목 그대로 ‘못 볼 것을 보여주는’ 영화이다.

장 베로의 야회
앙리 제르베의 <오페라 무도회>

이런 생각을 싹 몰아낸 것은 장 프랑수아 라파엘리의 <결혼식을 기다리는 하객>이었다. 시골에서 상경한 듯한 노부부가 카페 앞에 서 있다. 장갑을 끼고 있으니 손금을 보는 집시는 아니리라. 여기가 결혼식장이 맞는지 확인하려는 것인지, 여자가 남자의 손바닥을 쳐다보고 있다. 이런 하객들 틈바구니에서 스트라빈스키는 <봄의 제전>을 잇는 또 하나의 문제작 <결혼Les noces>을 작곡했을 것이다. 바로 오후에 그 이야기를 확인하려 한다.

장 프랑수아 라파엘리의 <결혼식을 기다리는 하객>
별게 다 있네.. 가르니에 오페라를 빌려 귀족놀이 하는 아랍 부호.. 바로 이런 풍경을 그린 그림들이다.. A Night at the Ope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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