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팅게일의 노래
2017년 12월 26일 월요일. 아침 일찍 호텔을 나섰다. 줄이 길어지기 전에 노트르담 대성당과 생트 샤펠에 가보기 위해서이다. 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은 파리 시청 앞을 크리스마스트리가 밝히고 있다.
노트르담 대성당은 센 강 위 시테 섬 안에 자리한다. 노트르담 다리를 건너자 해가 떴다. 성당은 이제 막 문을 열어 사람이 거의 없다. 12세기부터 14세기까지 약 200년 동안 지어진 고딕 건축물은 그 자체로 아우라를 지녔다. 전날 성대한 크리스마스 미사를 지낸 여운이 아직 느껴지는 듯하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이 시즌에만 볼 수 있는 성탄 미니어처이다. 전 세계 성당들이 제 여건에 맞는 성탄 미니어처를 제작해 신도들을 반긴다. 가톨릭의 뿌리가 깊은 프랑스에서도 파리 대교구의 성당이 갖는 의미는 작지 않다.
올해 미니어처의 콘셉트는 프로방스에 태어난 아기 예수이다. 폭 7~8미터는 될 법한 크기의 테이블 위에 아기자기한 인형들로 민초들의 삶을 꾸며놓았다. 풍차와 대장간, 빵집, 시장, 가는 곳마다 사람들은 지난밤의 밝은 빛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양과 염소가 모여든 암굴 속 구유에 아기 예수가 누워 있고, 동방박사 세 사람이 경배한다. 미니어처 뒤로는 글을 모르는 신도들을 위해 부조로 장식한 성당 판화가 같은 장면을 보여준다.
스트라빈스키가 크리스마스를 위해 작곡한 음악은 딱히 떠오르지 않는다. 그렇지만 정교한 인형들에서 <페트루시카>나 <풀치넬라>의 장면을 생각해 본다. 인형은 곧 인형극의 주체이다.
누구든 절대적인 힘으로부터 자유로운 인간이 있을까? 운명과 담판을 짓는 이야기는 비단 꼭두각시 <페트루시카>나 악마와 거래하는 <병사 이야기>에 그치지 않는다. 가장 스트라빈스키다운 작품이랄 <오이디푸스 왕>이 결정판이다. 운명의 줄에 묶인 불쌍한 인물은 남프랑스에서 만나게 된다.
노트르담 대성당을 나오면 바로 앞에 기다리는 것이 샤를 마뉴의 동상이다. 라틴어로 카를로스 마그누스, 역사 시간에 카를 대제라고 배운 인물이다. 프랑스와 독일, 이탈리아가 갈라지기 이전 프랑크 제국을 다스렸던 기독교 세계의 영웅이다.
8세기 인물인 샤를 마뉴는 1000년 뒤 유럽의 모습을 예감이나 했을까? 자신의 제국이 세 나라로 갈라진 지 오래이며, 러시아 동토에서 자신과 같은 르네상스를 일굴 표트르 대제가 등장하고, 러시아 서유럽화의 가장 현대적인 결실인 ‘발레 뤼스’가 파리를 매혹시킬 것을 말이다.
샤를 마뉴의 동상은 19세기 후반 파리 만국 박람회를 거치면서 이 자리에 서게 되었다. 그 행사에서는 이미 러시아뿐만 아니라 중국과 일본의 문물까지 프랑스로 건너와 ‘아르 누보’ 양식을 불러일으켰고, 그로 인해 드뷔시와 모네로 대표되는 ‘벨 에포크’의 예술가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친 것이다.
스트라빈스키의 작품 가운데 아르 누보의 냄새가 가장 짙은 것은 오페라 <나이팅게일>이다. 앞서 보았듯이 <나이팅게일>은 안데르센의 동화가 원작이며 주인공의 모델은 안데르센이 흠모했던 ‘스웨덴의 나이팅게일’ 제니 린트였다.
제1막: 새벽녘의 숲. 어부 한 사람이 그물을 손질하며 신세를 한탄한다. 그가 위로 삼을 것은 오직 나이팅게일의 노래뿐이다. 곧 새가 날아가고 천자의 신하 한 무리가 등장한다. 조리장은 내관에게 나이팅게일이 새벽마다 이 숲에 와 노래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들은 새소리를 듣게 된다. 그때 어부의 소가 울기 시작하자(베이스와 첼로의 글리산도) 모두가 귀를 기울인다. 어부가 공손히 그것은 자기가 키우는 소의 우는 소리라고 말한다. 신하들은 나이팅게일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다. 조리장은 나이팅게일이 올 것이라고 안심시킨다. 이번에는 개구리가 운다(오보에). 신하들은 그것을 나이팅게일로 여긴다. 조리장은 저것도 아니라고 말한다. 그가 나무에 앉은 나이팅게일을 발견한다. 내관은 나이팅게일에게 병을 앓고 있는 천자가 노랫소리를 듣고 싶어 하니 궁으로 와서 노래를 불러달라고 청한다. 나이팅게일은 이에 응하고 조리장의 품으로 들어온다. 일동 퇴장.
제2막: 도자기로 된 천자의 궁전. 내관이 들어와 주위를 물리치고 황제가 백관과 함께 등장한다. 천자의 행렬(중국풍의 행진곡). 나이팅게일이 불려 오고 천자는 노래를 명한다. 그가 노래하자 천자의 눈에는 눈물이 고인다. 병이 나은 천자는 나이팅게일에게 곤룡포를 하사한다. 궁중의 귀부인들은 입에 물을 머금고 고개를 들어 올려 저마다 나이팅게일 소리를 흉내 낸다. 그때 일본 사신이 도착한다. 그는 천자에게 기계 나이팅게일을 선물한다. 기계가 지칠 줄 모르고 노래하자 진짜 나이팅게일은 날아가 버린다. 화가 난 천자는 진짜를 내치고 가짜에게 궁정 가수의 작위를 내린다. 어부의 노랫소리가 들려온다.
제3막: 천자의 침소. 잠든 천자가 꿈에 망령의 합창을 듣고 가위에 눌린다. 그는 가짜 나이팅게일에게 노래를 명하지만 그 사이 고장 난 기계 새는 노래하지 않는다. 그때 진짜 새가 날아와 노래한다. 천자는 감동한다. 나이팅게일이 갑자기 노래를 멈추자 역시 귀 기울이고 있던 죽음이 왜 노래를 멈추냐고 묻는다. 나이팅게일은 죽음에게 천자의 왕관을 돌려주라고 말한다. 죽음은 물러가고 천자는 진짜 새에게 일등 작위를 내리겠다고 말한다. 나이팅게일은 필요 없다며 오직 천자가 흘리는 감동의 눈물만이 보답이라고 말한다. 날이 밝고 천자가 승하했으리라 생각한 신하들이 장례를 지내기 위해 들어온다. 그러나 천자가 기쁘게 그들을 맞이하자 모두 놀란다. 멀리서 어부의 노래가 들려온다.
2004년, 크리스티안 쇼데라는 감독이 스트라빈스키의 <나이팅게일>을 영상으로 만들었다. 제임스 콜론이 지휘하는 파리 오페라의 1999년 녹음에 시각적인 효과를 입힌 것이다. 나이팅게일을 부른 소프라노 나탈리 드세, 내관 역에 그녀의 남편 로랑 나우리를 비롯해 음반에 참여한 뛰어난 가수들이 직접 실사 연기도 펼친다. 중국풍의 이미지에 덧붙인 컴퓨터 그래픽은 “이 곡은 듣는 것으로는 불충분하고 보아야 한다”라고 말한 작곡가의 뜻에 부합하는 시도였다. 특히 강가에서 시작하는 어부의 노래와 도자기들이 연주하는 황제의 행진곡은 디즈니의 <판타지아>나 할리우드 감독 팀 버튼이 만든 초현실 세상을 떠올리게 했다.
2010년 엑상 프로방스 페스티벌의 <나이팅게일>은 ‘태양의 서커스’로 유명한 로베르 르파주가 연출했다. 영상물로 발매되지는 않았지만, 유튜브에서 전체를 볼 수 있다. 여기에는 중국 남방이나 베트남 등지에서 성했던 수상(水上) 연극 기법을 도입했다. 무대 앞에 진짜 풀을 만들고 그 안에서 사건이 벌어지며 합창단원은 직접 인형극사(Puppet Master)가 되어 스트라빈스키가 만든 인물에 혼을 불어넣는다.
만국 박람회의 산물인 샤를 마뉴 동상을 뒤로하고 한 블록 건너에 있는 생트 샤펠을 다시 찾는다. 그제 밤에 성탄 전야 콘서트를 보러 갔을 때는 어두워서 스테인드글라스를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침 햇살을 받기 시작한 창은 마치 겨울 나뭇가지 사이로 무지개가 뜨는 듯한 장관이었다. 그리스도의 가시 면류관을 모셨다는 이 예배당에 있으니 머릿속으로 바그너의 <파르지팔> 음악이 흘러간다. 그리스도가 흘린 피를 받았다는 성배(聖杯)를 지키는 기사들의 이야기가 여기보다 잘 어울리는 곳은 없으리라.
<파르지팔> 또한 스트라빈스키에게는 중요한 작품이었다. 원래 <봄의 제전>은 1912년 시즌을 위한 발레였다. 그러나 니진스키의 건강을 염려한 단장 댜길레프는 <봄의 제전>의 초연을 미루었다. 스트라빈스키가 실망하자 댜길레프는 한 가지 제안을 했다. 바이로이트로 바그너의 <파르지팔>을 보러 가자는 것이었다. 댜길레프의 제안은 진정 호의적인 것이었다. 그 자신이 바이로이트에서 바그너의 ‘총체예술Gesamtkunstwerk’이라는 것을 본 결과 발레 뤼스를 창단했기 때문이다. 총체예술이란 음악과 미술, 드라마가 낱낱이 아닌 하나로 결합된 것을 말한다. 오늘날 이 개념이 딱히 신선하게 들리지 않는 것이 바로 바그너의 덕이다. 댜길레프가 스트라빈스키에게 바그너의 작품을 권했다는 말은 곧 그를 발레단의 핵심 멤버로 인정했다는 것이었다.
바그너는 만년을 바이로이트에서 보내면서 자신의 작품만을 위한 극장을 그곳에 지었다. 그의 마지막 작품인 <파르지팔>은 ‘신성무대축제극’이라는 특별한 고안물이기도 했다. 곧 총체예술에 하나 더 종교적인 의미까지 더한 작품이었다. 바그너는 그런 <파르지팔>을 바이로이트 이외의 지역에서는 상연하지 말도록 유언했다. 스트라빈스키는 악보로만 보았을 뿐 당연히 무대 공연을 본 적이 없었고, 그래서 댜길레프의 제안에 구미가 당겼다.
그러나 바이로이트는 그에게 실망감을 안겨주었다. 물론 그는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보낸 어린 시절부터 바그너의 음악을 잘 알았다. 비록 처음 보는 것이긴 했지만 <파르지팔>에 대해서도 음악적으로는 특별한 불만이 없었다. 그가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바이로이트의 분위기였다. 그는 음악이 종교의식처럼 숭배되는 것을 납득할 수 없었다. 스트라빈스키는 예술을 종교화하는 것, 극장을 교회로 만드는 것을 천박하고 부조리한 미학이라고 생각했다. 예술은 비판하고 감동받아야 할 대상이지 신앙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이것이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이나 그 속편이라고 할 수 있는 <결혼>이 바그너의 <파르지팔>과 구별되는 점이다.
뒷날 댜길레프는 라벨의 <라 발스>를 듣고 “이것은 왈츠가 아니라, 왈츠를 그린 그림과 같다”라고 말해 작곡가의 심기를 불편케 했다. 그러나 사실 <라 발스>에 대한 댜길레프의 지적은 적절한 것이었으며, 이는 고스란히 스트라빈스키에게도 적용된다. 스트라빈스키가 <봄의 제전>이나 <결혼>을 통해 보여주고자 한 것은 ‘제식의 초상’이지 제식 자체의 구현이 아니었다.
결국 스트라빈스키가 바이로이트에서 얻은 기억은 막 사이마다 나눠준 소시지 두 개와 맥주 한 잔 그리고 비좁은 의자에서 몸을 틀었을 때 났던 ‘삐거덕’ 소리와 자신에게 돌아온 사방의 곱지 못한 시선뿐이었다. 이번 여행 동안 이와 똑같은 것을 나는 직접 경험했다. 그것은 바그너가 아니라 바로 그 반대편에 있는 로시니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