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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준호 Aug 18. 2019

벨몬트는 어디인가?

베니스의 상인

두칼레 궁전에서 베니스의 상인을 만나본다


<베니스의 상인>은 내 셰익스피어 입문작이다. 창작과 비평에서 나온 아동 문고판은 영국의 수필가 찰스와 메리 램 남매가 운문인 희곡을 읽기 쉽게 산문으로 풀어쓴 것이다. 샤일록이 신발 밑창에 칼을 가는 장면을 표지로 썼다. 이 유명한 그림은 아서 래컴이 그린 것인데, 현재 이 버전의 한국어 판권은 비룡소(출판사 이름)로 넘어갔다.

창비는 삽화가를 바꿨고, 비룡소는 래컴의 <한여름 밤의 꿈>을 표지로 썼다

나는 <베니스의 상인>을 국민학교 졸업 학예회 무대에 올리고 싶었지만, 줄거리를 들은 반 친구들이 서로 남녀 주인공을 맡겠다고 우기는 바람에 실현되지 못했다. 도대체 누가 주인공인가? 담임은 이런 기특한 계획을 도우려 들기는커녕 아주 귀찮아했다. 어떻게 하면 한 푼이라도 촌지를 더 받아 그해를 마무리할지 고민하는 사람이었다.


뒷날 영문과에 갈 점수가 부족해 독문과로 간 것이 오히려 음악 칼럼니스트가 되는 데 득이 되었지만, 여전히 셰익스피어는 동경의 대상이었다. 영문학이거나 독문학이거나 한글로 보는 건 마찬가지이니 차이가 없지 않은가! 셰익스피어 전집이 집구석에 책과 영상물로 두 종류씩이나 있으니 뿌듯하기 그지없다.

누가 주인공인가?

많은 셰익스피어 학자들이 <베니스 상인>에 나오는 흔한 지명 벨몬트Belmont를 베네치아 인근 파도바 어디쯤으로 생각했다. 여주인공 포셔의 빌라가 있는 곳이다. 2011년에 나온 리처드 폴 로의 <셰익스피어의 이탈리아 기행The Shakespearse Guide to Italy>에 따르면, 벨몬트는 과거 베네치아의 배후 베네토 지방의 말콘텐타Malcontenta이고, 포셔의 저택은 그곳에 있는 빌라 포스카리Villa Foscari, La Malcontenta이다. 포스카리는 도제를 배출한 베네치아의 가장 유명한 가문 가운데 하나이다. 폴 로가 그렇게 주장하는 근거는 포셔가 극 중에 약혼자를 뒤따라 베네치아로 갈 때 시녀인 네리사에게 한 말이다. 

“오늘 안으로 20마일을 가야 하니 서두르자.”

그에 앞서 그는 다른 하인을 파도바의 사촌에게 보내 법률 자문을 받아오게 한다. 그러면서 자신이 먼저 선착장에 가 있을 테니 거기서 만나자고 약속한다. 베네치아로 가는 선착장은 폴 로가 엄청나게 뿌듯하게 알아냈다고 주장하는 것처럼 푸시나(Fusina)라는 곳이다. 폴 로는 빌라 포스카리에서 푸시나까지가 5마일, 푸시나에서 베네치아 법정 앞 선착장까지가 5마일이기 때문에 도합 10마일, 왕복 20마일이라며 벨몬트를 알아낸 것을 자축한다. 따봉! 아, 그건 델몬트인가?

번역된 책과 번역 안 된 논문

내 보기에 문제는 그리 간단치 않다. 해리스 제이 그리스턴은 1932년에 쓴 논문 ‘포셔의 벨몬테는 어디인가Portia's Belmont Located’에서 바사니오가 포셔에게 구혼하러 가기 위해 많은 여비가 필요했다는 것에 주목한다. 그 여정이 베네치아로부터 만만치 않은 거리이기 때문에 친구 안토니오가 유대인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에게 3천 두카트라는 큰돈을 빌렸다는 것이다. 내 말이! 1 두카트는 3.545그램의 베네치아 금화로, 오늘날로 치면 약 150달러 고액이다. 3천 두카트면 약 44만 달러, 우리 돈으로 5억 3천만 원이 넘는다. (두카트의 액면가에 대해서는 많은 설이 있지만, 현재 같은 무게의 금값을 대입하면 총액은 오히려 늘어난다.)

바사니오가 뒤늦게 갚으려 내놓은 돈. 원금의 두 배인 6천 두카트

그리스턴이 근거로 제시하는 대사 또한 내 생각과 똑같다. 아니 누구라도 이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읽은 독자라면 짚어낼 당연한 것이다. 그리스턴에 따르면, 그보다 얼마 전에 윌리엄 키틀이란 학자가 파도바에서 20마일 떨어진 빌라 베아트리체 데스테Villa Beatrice d'Este를 벨몬트의 포셔 저택이라고 주장했다. 폴 로가 말한 빌라 포스카리보다 오히려 베네치아에서 더 멀다. 그러나 여전히 베네치아 영토 안이고, 거기 가기 위해 3천 두카트라는 큰돈이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되진 않는다. 물론 3천 두카트에는 여비뿐만 아니라 포셔에게 구혼하기 위한 선물 보따리 값도 포함되어 있다. 그래도 5억은 좀 심하지 않은가? 아니라면 할 수 없고.


그러면 선물값을 제하고 여비가 억 단위로 들려면 어때야 하는가? 많은 사람이 먼 거리를 가야 한다. 때문에 그리스턴은 이 여정이 반드시 큰 배를 타고 가야 하는 곳이라고 생각한다. 선원이 많아야 하고 그야말로 왕복까지 염두에 두면 적어도 20명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들을 잘 입히고 불만 없게 먹여야 한다. 만일 벨몬트가 베네치아 안 20마일 언저리에 있다면 여섯 필의 말이 끄는 마차로 하루 안에 갔다 올 수 있다. 그렇다면 바사니오가 안토니오에게 사기를 친 것이 아닌 이상 3천 두카트는 좀  과한 액수가 아닐까 싶다.

수행원은 적정하지만 배는 훨씬 컸어야 하지 않나 싶다. 2004년 영화 가운데

그리스턴이 제시하는 벨몬트는 이탈리아 남서부의 섬 시칠리아이다. 북쪽 해안의 팔레르모에는 괴테가 <이탈리아 기행>에서 “뭐라고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답다”라고 칭한 ‘몬테 펠레그리노Monte Pellegrino’가 있다.

지도에서 보듯 바사니오는 거의 1천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사는 아름다운 상속녀에게 구혼하러 가기 위해 친구의 살 1파운드(453.592그램)를 담보로 대출을 받는 것이다. 부럽게도 이자는 없고 원금상환이다. 오늘날 제시된 최단거리 여행은 베네치아에서 육로로 로마 해안까지 가서 다시 시칠리아까지 항해하는 것이다. 그러나 해양도시 베네치아 사람이라면 마땅히 처음부터 배를 타고 가지 않았을까?


적잖은 시일이 필요할 것임을 알고 안토니오는 자기 걱정 말고 구혼에 매진하고 돌아오라며 바사니오에게 이별을 고한다. 20마일 떨어진 곳이라면 과도한 신파이다.


시칠리아는 지중해 한가운데이다. 포셔의 청혼자가 스코틀랜드, 모로코, 프랑스, 아라곤 등지에서 오기에 적합하다. 특히 스페인의 아라곤은 시칠리아와 마주하는 나폴리를 지배했기에 더욱 합이 맞는다. 물론 베네치아도 그런 국제 도시이긴 하지만, 바사니오가 경쟁자들을 이기고 포셔와 맺어진 뒤를 보면 벨몬트는 베네치아의 지명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안토니오의 불운을 전하러 온 친구들을 보고 바사니오가 ‘동향 친구countrymen’들이 왔다며 반가워한다. 그러나 지척이라면 목숨을 다투는 안토니오의 곤경은 진작에 바사니오에게 전해졌을 것이다.

왼쪽 아래 빌라 데스테는 파도바에서 17.5마일 거리이다. 제작: 나

포셔는 안토니오의 딱한 사정을 들은 바사니오에게 “급한 대로 교회로 가서 식을 올리고 베네치아의 친구에게 가라”라고 한다. 역시 가까운 곳이라면 그리 서두를 일이 아니다. 대개 이런 것은 갔다가 여차 하면 고무신 거꾸로 신을 만한 거리나 시간일 때 하는 일이다.


재판을 성공리에 마친 포셔는 지체하지 않고 벨몬트로 돌아간다. 남편보다 빨리 돌아가야 하니까 당연하다. 그러나 바사니오와 안토니오는 “자고 나서 아침에 벨몬트를 향해 출발하자”라고 한다. 빨리 이 기쁜 소식을 아내에게 전해야 하지 않는가, 불과 20마일 떨어진 곳인데? 그리고 가까운 거리라면 “벨몬트로 가자”면 되지 “향해 출발”할 것까지야 있는가?

빌라 포스카리에서 푸시나를 거쳐 재판소까지 가는 데 8마일. 좀 모자란다. 푸시나엔 오늘날 "안드레아 팔라디오 화력 발전소"가 있다. 우리나라도 장영실 공단쯤 있어야...

다음 날 벨몬트에서 기다리던 시종은 미리 전갈을 받고, 주인이 “아침 전에 도착한다”라고 전한다. 이건 또 뭔가! 아침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밤에 출발한 것일까. 만일 그렇다면 밤에 베네치아를 떠난 사람이 20마일을 앞에 두고 미리 전갈까지 보냈다면 너무 호들갑이 아닐까? 물론 귀한 친구와 돌아가니 미리 연통을 넣었지 않을까 추측할 수도. 그렇지 않다면 아침에 떠났는데 아침 전에 도착하고 만 것이 되니까. 이래저래 하루 만에 갈 수 있는 거리는 아니라는 것이 그리스턴, 그리고 나의 심증이다.


나는 영문학자도 아니고 인디애나 존스도 아니기 때문에 벨몬트 찾기는 이 정도로 만족한다. 2000년대의 폴 로가 1930년대에 나온 그리스턴의 논문에 대해 전혀 언급이 없는 점이 이상하다. 나로서는 그리스턴의 추론에 더욱 끌리지만 셰익스피어의 생각이 뭔지는 알 수 없다. 오히려 작가 자신은 폴 로나 그리스턴만큼 고민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셰익스피어가 당대 여행자들로부터 들은 정보만을 가지고 쓴 것이라면 그 치밀함이 대단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벨몬트의 위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번역자는 자기도 모를 오역을 하기 십상이다.


베네토이거나 시칠리아이거나 두칼레 궁전 앞에서 당장 ‘벨몬트’를 답사하려니 돈과 시간이 많이 들겠다. 저당 잡힐 살(flesh)은 충분하지만 샤일록의 일터인 리알토 부근에 저리대금업자도 보이지 않는다. 나는 산 마르코 광장 바로 건너편에 있는 산 조르조 마조레로 가기로 했다.

알 파치노와 제러미 아이언스가 불꽃 튀는 연기 대결을 펼친 <베니스의 상인>은 학자들의 고민은 안중에도 없이 산 조르조 마조레를 벨몬트로 정했다. 20마일은커녕 운하를 사이에 두고 직선거리로 딱 5백 미터이다. 이 정도면 안토니오의 배가 다 침몰했다는 소문이 돌고 돌아 빚을 갚기로 한 날 전에 충분히 상환했을 것이다.

바로 건너 두칼레 궁전이 보이는 산 조르조 마조레에서 남편들을 배웅하는 여인들

하지만 영화를 찍기엔 아주 근사한 장소이다. 벨몬트의 저택으로 그려진 것은 섬 안의 수도원인데, 지금은 조르조 치니 재단Fondazione Giorgio Cini이 운영하는 복합 문화 공간이다. 더욱이 산 조르조 마조레나 앞서 벨몬트로 제시된 빌라 포스카리 모두 베네치아의 건축가 안드레아 팔라디오가 설계한 것들이다. 

조르조 치니 재단. 4:20 무렵의 미로가 일품이다

산 조르조 마조레에서 보는 파노라마 전망이 베네치아의 장엄한 실체를 가장 잘 담아낸다. 레바논 원산지인 백향목 말뚝 110만 개로 갯벌에 말뚝을 박고 그 위에 벽돌, 다시 그 위에 대리석을 얹어 150개 섬을 400개 다리로 연결한 바다의 도시이다.

백향목이 있는 레바논 국기. 그리기 어렵겠다
산 조르조 마조레에서 본 두칼레 궁전. 뒷편의 돔이 산 마르코 바실리카이다

산 조르조 마조레의 종탑에서 보면 베네치아의 랜드마크가 두칼레 궁전임을 알 수 있다. 리알토 다리나 산 마르코 대성당도 인상적이지만, 베네치아 고딕 양식의 두칼레 궁전이야말로 나라의 정체성을 보관하는 대리석 상자처럼 견고하고 당당하다. 

모대학 학생회관

나는 연세대학교 학생회관이 두칼레 궁전을 닮았다고 생각했다. 물고기 비늘처럼 치밀한 외관을 건축용어로 ‘프리캐스트 콘크리트 커튼월’이라고 한단다.

가까이서 보니 안 비슷하다

그러나 베네치아 두칼레를 가까이서 보면 학생회관처럼 건축 기간을 줄이거나 비용을 아끼기 위한 설계란 생각은 들지 않는다. 모자이크 문양으로 쌓은 벽돌의 상부를 화려하면서도 격조 높은 클로버 장식의 기둥이 받친 모양새이다. 팔라초 두칼레는 공화정인 베네치아의 수반, 도제가 거주하며 통치하던 곳이다. 도제의 집무실, 원로원, 최고 법정으로 가는 방과 복도, 전실마다 베네치아의 내력을 보여주는 벽화와 천정화가 압도한다.


베네치아를 대표하는 화가들, 티치아노, 베로네세, 틴토레토가 그린 그림들이 즐비하다. 12세기 베네치아가 신성로마제국 황제 프리드리히 1세와 싸워 이긴 뒤 맺은 강화조약을 기념하는 그림과 14세기 콘스탄티노플을 함락시킨 제4차 십자군 전쟁, 15세기 캉브레 동맹 전쟁과 레판토 해전의 기록 따위이다. 대략 이 시기가 베네치아의 최대 국운 상승기이기도 하다.

이등변 삼각형 구도의 하단 꼭짓점에 베네치아 도제가 들어가 있다. 꼭 낀다.

우연하게도 학생회관 건너편 중앙 도서관에 비슷한 그림이 걸린 적이 있다.

베네치아 위정자들의 지정석이 놓인 방들을 보면 <베니스의 상인>의 유명한 재판 장면이 떠오른다. 모든 상선을 폭풍우로 잃고 결국 빌린 돈을 갚지 못해 살 1파운드를 떼일 순간에 처한 안토니오. 젊은 법학박사로 변장한 포셔가 명판결로 그의 목숨을 구해낸다. 채권자인 샤일록에게 차용증에 적힌 대로 정확히 1파운드의 살을 가져갈 것이되, 그리스도 교인의 피는 한 방울도 흘려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솔로몬보다 더욱 경탄할 만한 판결이다.

십자가에서 내려진 듯한 아이언맨

안토니오는 틴토레토 그림에서 내려지는 그리스도처럼 기진하여 풀려났지만,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남편의 진정을 시험하려는 포셔가 아직 그의 정체를 모르는 바사니오에게 결혼반지를 달라고 청한 것이다. 뒷 이야기는 하나마나이다.


그렇게 흥미진진한 법정 드라마가 펼쳐지는 동안 가브리엘 포레는 부수적인 정경들에 몰두한다. 극부수음악 <샤일록Shylock>은 그 제목이 무색하게 샤일록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재판의 긴박함도 피해 간다.

리알토 다리를 지나는 제1곡 ‘곤돌라 사공의 노래’에 이어 제2곡 ‘간주곡’은 포셔 빌라에서 전개된 남편 고르기 장면을 묘사한다. 금과 은, 납으로 된 세 개의 상자 중에 포셔의 초상화가 든 것을 고르는 시험이다. 모로코 고관과 아라곤 대공의 장면이 코미디의 정수로 안내한다. 제3곡 ‘마드리갈’은 팔츠 백작, 작센 선제후의 조카, 스코틀랜드 귀족이 구애하는 장면이다.


제4곡 ‘혼례의 축하’에서 마침내 바사니오와 포셔가 서로의 마음을 얻는다. 포레가 바그너에 기대긴 하지만 아무리 그렇더라도 장차 드뷔시로 이어질 프랑스 서정미의 정수를 손상할 정도는 아니다. 


제5곡 ‘녹턴’은 벨몬트에서 모두가 돌아오길 기다리는, 바사니오의 친구 로렌초와 샤일록의 딸 제시카의 사랑을 그린다. 참, 여기서도 로렌초는 말했다. “이런 밤에 제시카는 유대인 부잣집을 빠져나와 낭비쟁이 애인과 베니스에서 머나먼 벨몬트로 달아났지.” 제시카는 아버지의 돈을 들고 야반도주했는데, 그 돈을 프랑크푸르트에서 흥청망청했다는 소문이 베네치아에까지 들어온다. 아버지에게 맞아 죽지 않으려면 베네치아 코앞까지 다시 돌아올 이유가 없다. 벨몬트는 베네치아에서 ‘겁나 먼’ 곳이다.


마지막 ‘피날레’에서 포셔가 곧 재판관이었음이 드러나고, 바사니오가 재판관에게 빼준 반지도 다시 그에게 돌아온다. 심지어 난파된 줄 알았던 안토니오의 배도 무사하단다. “더 궁금한 것이 있으면 물어보라”는 포셔에게 내가 묻는다. “도대체 댁은 어디입니까?”

화재로 소실된 자리에 베로네세가 그림을 그리려 했으나, 그가 세상을 떠나 틴토레토의 일이 되었다

팔라초 두칼레의 하이라이트는 캔버스에 그린 것으로는 가장 크다는 틴토레토의 <천국Il Paradiso>이다. 미켈란젤로의 시스티나 천정화와 벽화를 보고 그린 또 하나의 역작이다. 중앙에는 승천한 그리스도와 성모 마리아가 사랑과 천국을 상징하는 붉고 푸른 옷을 차려입은 채 마주 보고 있다. 성모의 머리 뒤를 비추는 일곱 별의 후광과 그리스도가 든 십자가와 지구가 그 영광과 권능을 상징한다. 성모의 왼편에는 순결의 상징인 백합을 들고 수태고지를 하는 가브리엘 천사가, 그리스도의 오른편에는 최후의 심판을 위한 저울을 전하는 미카엘 천사가 날아든다. 

성모 마리아와 그리스도가 입은 옷의 붉은 색은 사랑, 푸른 색은 천상을 뜻한다

과거와 미래를 아우르는 순간이 역동적으로 펼쳐지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멈춰 선 2차원 회화로 제시되니 마치 천국에서 이 모든 것이 순간처럼 영원하기를 기원하는 것처럼 보인다.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을 보며 베르디 <레퀴엠>의 노도와 같은 ‘디에스 이레’를 들었다면, 틴토레토의 <천국>에는 가장 정적(靜的)인 음악이 어울린다. 베르디의 <네 개의 성스러운 소품Quattro pezzi sacri>은 1886-1897년에 쓴 성가 모음이다.


1. 아베 마리아 Ave Maria (1:45)

2. 스타바트 마테르 Stabat Mater (7:28)

3. 동정녀 마리아 찬가 Laudi alla Vergine Maria (21:24)

4. 테 데움 Te Deum (27:22)  


홀수 곡은 무반주, 짝수 곡은 관현악 반주이며, 특히 세 번째 ‘동정녀 마리아 찬가’는 단테의 신곡 가운데 ‘천국’의 마지막 시를 여성 무반주 4부 합창이 부르게 한다. 미켈란젤로가 <피에타>에서 그랬듯이, 틴토레토도 노래의 첫 구절처럼 마리아를 그리스도만큼 젊게 그렸다.

동정녀이신 어머니, 당신 아들의 따님이시여

지휘자 한스 폰 뷜로가 베르디의 <레퀴엠>을 두고 “오페라 의상을 입은 종교 음악”이라고 비아냥거렸지만, 이 성가들에는 누구도 그런 불평을 하지 못할 것이다.

이 연주처럼 프랑스에서 초연되었다

이제 베네치아와 또 작별할 시간이 되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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