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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준호 Aug 07. 2019

몬테베르디에서 베르디까지

베네치아 라 페니체 극장

이탈리아 오페라의 산실, 불사조 극장을 가다


2019년 그리스도 수난일 저녁 라 페니체 극장에서는 디에고 파솔리스가 모차르트의 <레퀴엠>을 지휘했다. 모차르트가 완성하지 못한 <레퀴엠>은 후대에 많은 완성 시도가 있었고, 파솔리스 또한 기존의 여러 판본을 토대로 자신만의 해법을 내놓았다.


빠른 템포와 급격한 셈여림 변화는 파솔리스의 장기이다. 그는 이런 자극적인 해석으로 모차르트와 그 이전 이탈리아 음악의 권위자가 되었다. 보통 1시간가량 걸리는 이 곡을 파솔리스는 45분 만에 끝냈기에 뭔가 좀 더 필요했다. 모차르트의 오페라 ‘이집트의 왕, 타모스’ 가운데 한 장면과 성가곡 ‘오소서, 참된 성체시여’로 마무리되었다.

스위스 지휘자 디에고 파솔리스의 모차르트 <레퀴엠> 앨범. 요즘은 다 이런 식이다

모차르트의 연주를 드라마틱하게 마친 파솔리스는 수난일에 쏟아지는 박수가 겸연쩍었던지 한두 번의 커튼콜 뒤로 악보를 높이 치켜들며 파할 것을 유도한다. 모든 공은 음악에 돌리자는 신호가 최근 유행이 되었다. 드레스덴이나 베를린에서도 흔히 보아온 제스처이다.

앞서 산 마르코 바실리카에서 만난 몬테베르디가 베네치아에 남긴 공적은 교회음악에 국한되지 않았다. 만토바의 사육제를 위해 작곡한 <오르페오>(1607)와 더불어 베네치아 관객을 위해 쓴 <율리시스의 귀환>(1641), <포페아의 대관>(1642)은 바로크 오페라의 초석이 되었다. 바흐가 바로크 양식을 완성했다면 몬테베르디는 그 문을 연 사람으로 꼽을 만하다.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는 트로이 전쟁의 뒷이야기이다. ‘트로이 목마’의 지략으로 전쟁을 끝낸 오디세우스가 고향 이타카로 돌아가는 10년의 여정을 그린 것이다. 사이렌, 칼립소, 나우시카와 같은 숱한 여인들의 구애를 마다하고 조강지처 페넬로페를 찾아가는 사연이 기구하다. 어긔야 어강됴리 아으 다롱디리.

바젤 미술관이 소장한 아르놀트 뵈클린의 <오디세우스와 칼립소>

천신만고 끝에 고향에 돌아갔지만, 이미 아내 곁에는 호시탐탐 왕위를 노리는 구혼자들이 우굴거리는 탓에 자칫 잘못하면 신변이 위험할 지경이다. 구혼자들을 구슬리며 양탄자를 짰다 풀었다 하던 페넬로페는 마침내 한 사람을 받아들이겠다고 공포한다. 단, 조건은 남편이 쏘던 활로 그가 맞히던 과녁을 명중시키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 그런데 그 활이라는 것이, 시위가 풀려 있어 일단 활을 구부려 줄을 걸어야 한다. 보통 사람은 들기도 어려운 활 무게인데, 그것을 구부려 줄을 거는 것은 아예 후보로 나서지도 말라는 의도였다. 심지어 과녁은 나란히 세운 열두 개 도낏자루에 달린 귀를 모두 통과해 맞혀야 유효한 것이었다.


지병 치료차 국궁을 배운 친구에게 들은 경험담이 오디세우스의 활 이야기를 더욱 흥미진진하게 했다. 활이 크고 복원력이 셀수록 시위의 장력이 클 것임은 자명하다. 그런 조건을 충족하려면 자연히 활이 무거울 수밖에 없다. 활쏘기를 본 사람은 사거리가 늘어날수록 화살을 위로 겨냥하는 모습이 기억날 것이다. 날아가는 포물선이 길수록 화살은 바람의 영향을 많이 받고 정확한 조준도 어렵다. 그저 경험과 감에 의존할 뿐이다. 그러니 말을 타며 활을 쐈던 무용총의 용사가 얼마나 신묘한가!

문 장군의 활쏘기 무용담에 옆 친구는 잠이 들고... 원래는 문 장군 머리 사이즈가 아무에게나 뒤지지 않지만 광각렌즈가...

반면 탄성이 큰 활은 과녁을 향해 최단거리로 날아가기 때문에 바람의 영향도 덜 받고 조준도 쉽다. 다만 충분히 그 활을 들어 시위를 당길 수 있을 때 가능한 얘기이다. 먼저 떠오르는 것은 현악기의 발전이다. 현을 긋는 활은 말 그대로 활이다. 19세기까지는 지금처럼 탄성이 강한 활을 쓰지 않았다. 그러나 음악이 극도의 셈여림을 오가고 공연장이 커지면서 현악기도 더욱 크고 자극적인 소리를 내야 했다. 화살을 멀리 보내는 것과 같이 소리를 멀리 보내기 위한 것이다. 활과 현의 탄성이 모두 늘어나야 했다. 활털을 팽팽하게 맬 수 있도록 단단한 브라질 페르남부쿠 산(産) 나무를 사용했다. 그 결과는 아래와 같다.

활 사세요

위가 재미있으면 아래도 추천한다. 하지만 내 얘기가 더 재미있으면 건너뛰어도 된다.

북 치고 장구 치고

오디세우스로 돌아와, 페넬로페의 무례한 구혼자들은 하나같이 활을 쏘는 데 실패했다. 그때 구석에 거지 노인으로 변장하고 숨었던 오디세우스가 활쏘기를 청하고 번개 같이 과녁을 맞혔다. 그 뒤로는 정숙한 왕비를 농락하고 왕실 재산을 탕진한 죄를 물어 피의 숙청이 이어진다. 오디세우스는 흔히 지략이 뛰어난 장수로 꼽히지만, 이 부분을 보면 그의 힘도 남달랐음을 짐작할 수 있다. 아마도 <오디세이아>를 아는 사람이라면 이 순간을 가장 짜릿하게 생각할 것이다. 일종의 암행어사 출도이다.


몬테베르디의 <율리시스의 귀환>도 오디세우스가 고향에 돌아와 겪는 일들을 다룬다. 작곡가의 이름을 딴 악단을 창단해 고음악 운동을 일으켰던 영국 지휘자 존 엘리엇 가드너가 2017년 몬테베르디 탄생 450주년을 맞아 라 페니체 극장에서 이 곡을 연주했다. 구혼자들과  그리고 그들과 타락한 시녀들이 페넬로페를 향해 연회를 열자고 부추기는 노래는 몬테베르디의 장기인 세속 가요 마드리갈의 정수를 보여준다.


클라이맥스는 오디세우스가 정체를 드러내고 연적이자 정적들을 제거한 뒤 막이 바뀔 때 연주되는 ‘전쟁 교향악Sinfonia da guerra’이다. 바로크 시대나 지금이나 진정한 호메로스와 몬테베르디의 팬이라면 아버지를 자랑스러워하는 아들 텔레마코스와 야속한 남편의 도착에 놀라면서도 기뻐하는 페넬로페의 표정까지 놓치지 않을 것이다.

무려 전곡 공연인데, 대략 (2:27:25)부터 활쏘기 겨루기가 펼쳐진다

베네치아 음악의 심장인 라 페니체는 ‘불사조’(不死鳥)라는 뜻인데 그 때문인지 두 번의 화재(1836, 1996)로 전소한 이력이 있다. 재개관 뒤 21세기에는 신년 음악회에 공을 들였다. 특히 마지막 곡이 의미심장하다. 옛 지배자였던 빈의 신년 음악회가 자신들을 짓밟은 라데츠키 장군을 기리는 행진곡으로 끝맺는 것을 의식해, 베네치아에서는 베르디의 <나부코> 가운데 ‘히브리 포로들의 합창’을 연주한다. 존 엘리엇 가드너도 단골로 초대되는 지휘자이다. 가드너는 독일 작곡가 바그너를 절대로 연주하지 않는 사람이니 이탈리아가 더욱 좋아할 만하다.

보니엠이 부른 "By the rivers of Babylon~"의 원곡이다

바빌론 강둑에 앉아 고향 생각을 했던 포로들의 심경을 오스트리아의 지배를 받는 이탈리아의 처지에 비긴 것이다.


<베네치아에서 죽음>의 감독 비스콘티가 만든 또 다른 영화 <애증>(원제목은 ‘Senso’, 1954)은 1866년의 라 페니체 극장에서 시작한다. 베르디의 오페라 <일 트로바토레>가 상연된다. ‘저 타는 불꽃을 보라’라고 노래하며 적진으로 뛰어들자는 테너의 노래에 객석의 이탈리아인들은 술렁이고 점령군인 오스트리아를 규탄하는 봉기로 확대된다. 화재를 입었던 극장이 현재처럼 복원된 데는 이 장면에 힘입은 바 크다.

당대 정치 환경과 무관하게 주인공인 이탈리아 귀족 부인 리비아는 오스트리아의 중위 루츠와 불륜에 빠진다. 남편과 조국에, 두 번 등을 돌린 이 여자를 에워싼 음악은 온통 오스트리아 작곡가 브루크너의 교향곡 제7번이다. 앞서 <베네치아에서 죽음>이 브루크너의 후배 말러의 교향곡에 젖었던 것과 같은 맥락이다.

이처럼 라 페니체는 언제나 화려했다. 베르디의 <에르나니>(1844)와 <리골레토>(1851), <라 트라비아타>(1853)가 여기서 초연되었고, 심지어 20세기에도 러시아 태생의 미국 작곡가 이고리 스트라빈스키의 <난봉꾼의 행각>(1951)과 영국에서 온 벤저민 브리튼의 <나사의 회전>(1954)과 같은 주요 작품이 ‘불사조’ 극장을 더욱 밝혔다.


그러나 이 모든 작품이 몬테베르디나 비발디의 업적과 같이 뼛속부터 베네치아의 산물인 경우는 없었고, 그저 옛 명성과 대중의 허영에 기댄 것이었다. 니체의 말과 같이 음악은 모든 예술의 맨 마지막에 등장해 그 퇴조를 볼 운명이기 때문이다. 역사의 뒤안길로 밀려난 베네치아 공화국이 감당하기에 오페라의 최후는 거스를 수 없는 조류였다. 그 썰물 뒤로 새로운 예술이 태어난다면 그것을 기적이라고 할 만하다. 모세의 기적을 그린 로시니 오페라의 마지막 장면을 파가니니의 편곡으로 들으며 불사조 극장을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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