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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준호 Dec 29. 2019

세계 최고 악단의 의무

베를린의 오케스트라들

베를린은 가장 역동적으로 변화하는 독일의 심장이다.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거리 1번지에 위치한 베를린 필하르모니 앞도 공사 중이라 버스가 서지 않는다. 2007년부터 2018년까지 <FM실황음악>을 진행하는 동안 숱하게 많이 찾았던 곳이다. 나의 첫 방송 프로그램도 사이먼 래틀이 지휘하는 베를린 필하모닉의 연주였다. 2007년 2월 14일 하이든의 곡만으로 꾸민 연주회였다. 그날 실황은 그보다 앞선 연주회 프로그램과 한 음반으로 발매되어 더욱 반가웠다. 하이든의 교향곡 88번부터 92번까지 다섯 곡과 신포니아 콘체르탄테 한 곡을 양일에 연주한 것이다. 래틀은, 아니 하이든은 교향곡 90번의 4악장에서 두 차례 관객을 머쓱하게 만들었다. 화끈한 종지에 곡이 끝난 줄 알고 박수를 보내지만 두 번 모두 가짜 종지였다.

(3분 20초와 5분 50초에 두 번 박수가 나온다)

당시만 해도 방송 전에 음원을 체크하기 힘든 여건 탓에 공연 전반의 분위기는 전하지 못했고, 곡 설명과 연주자 약력 소개에 급급했다. 첫 방송의 버벅거림과는 비교할 수 없는 실수도 이곳 베를린 필하르모니에서 나왔다. 쇼팽의 탄생 200주년을 기념하던 2010년, 다니엘 바렌보임이 피아노에 앉아 쇼팽의 두 피아노 협주곡을 연주했다. 사전 예고된 순서는 협주곡 1번과 2번을 전후반에 연주한 것이었다. 방송 직전에야 음원이 도착했고, 생방송이 아닌 탓에 준비된 멘트를 공연 앞뒤에 얼른 삽입했다. 그런데 맙소사! 이날 바렌보임과 베를린 필하모닉은 협주곡 2번을 전반에, 1번을 후반에 연주했다. 의도야 바로 알았다. 쇼팽은 두 곡을 나란히 작곡했고, 순서로는 2번이 앞서지만 1번을 먼저 출판했기에 번호가 바뀐 것이다. (베토벤도 이와 같다.) 바렌보임은 작곡된 순서를 되돌려 놓고자 한 시도였지만, 이미 나간 방송은 되돌릴 수 없었다.

나한테 왜 그랬어요?

베를린 필하모닉의 연주 가운데 가장 기억할 만한 것은 역시 2011년 4월 11일에 열린 바흐의 <마태 수난곡> 전곡 실황이다. 피터 셀라스가 무대 연출한 공연에서는 베를린 라디오 합창단이 특히 돋보였다. 테너 마크 패드모어는 이 공연으로 우리 시대 최고의 복음사가 자리를 굳혔고, 만삭의 소프라노 카밀라 틸링도 래틀 사단 핵심 멤버가 되었다. 바리톤 토마스 크바스트호프는 장애를 딛고 무대에 서는 자체가 인간 승리였으며, 지휘자의 아내인 메조소프라노 막달레나 코체나도 그녀의 이름이 그리스도에게 각별한 이름인 것처럼 곡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감을 보여주었다.

현지인에 따르면 이날 현장에 있던 청중은 은혜받았다고 함!

이 공연은 영상물로 발매되어 큰 반향을 모았지만, 라디오 방송 때는 영상물에 없는 래틀의 멘트를 들을 수 있었다. 그는 이 공연으로, 직전에 타계한 영국 테너 필립 랭그리지를 추모했다. 헨델에서 브리튼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무대에서 영국을 대표하던 성악가의 다소 때 이른 죽음이었다.

최고의 오이디푸스이자 톰 레이크웰, 티토, 머큐쇼였던 필립 랭그리지

래틀과 셀라스의 성공은 마땅히 <요한 수난곡>으로 이어졌다. 2014년 2월 베를린 필하르모니 무대 또한 <FM실황음악> 전파를 탔다. 바리톤 크리스티안 게라어가 변함없이 그리스도를 불렀고, <마태 수난곡>보다 훨씬 드라마틱한 군중 장면에서 베를린 라디오 합창단은 2000년 전 예루살렘의 그들처럼 야유하고 통곡했다.

옴 마니 반메 훔

이날 이후로 바흐의 수난곡은 완전히 새로운 전기를 맞았다. 세계 최고의 악단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보여준 것이다. 혹자는 종교 음악을 다소 드라마틱하게 다룬 이 공연이 못마땅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바흐가 보았더라도 이들의 노력과 진정성에 감사를 보냈을 것이다.


그 밖에도 사이먼 래틀은 베를린 필하모닉에는 생소한 작곡가였던 시벨리우스의 교향곡 전곡을 두 번이나 연주했고, 몇 차례 내한 공연을 가지면서 우리와 더욱 친숙해졌다.

카라얀 이후 아바도를 건너뛰고 시벨리우스 악단이 된 베를린 필하모닉

나는 2013년 발트뷔네 무대를 현장에서 보았던 경험을 잊을 수 없다. 베토벤 <합창 교향곡> 3악장에서 무한 선율이 이어지는 가운데 숲 속 무대 특유의 새들의 합창이 가세한 것이다. 오만가지 새들이 베토벤의 음악과 어우러지는 모습은 장관이었다. 4악장의 압도적인 피날레가 끝나고 앙코르 <베를린의 대기>가 연주될 때 래틀은 팀파니 주자와 자리를 바꿨다. 자신이 음악을 시작했던 자리로 잠시 돌아가 청중에게 웃음을 주었다.

나도 현장에서 은혜 받음!

<FM실황음악>을 진행하는 11년 동안 단연 주인공은 베를린 필하모닉이었고, 래틀뿐만 아니라 다니엘 바렌보임, 베르나르트 하이팅크, 헤르베르트 블롬슈테트, 마리스 얀손스와 같은 거장이 각자 장기로 하는 레퍼토리의 기준을 세우곤 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세대교체였다. 20세기 마에스트로들이 서서히 물러난 자리에 안드리스 넬손스와 구스타보 두다멜 그리고 현 음악감독인 키릴 페트렌코가 들어서는 모습을 차례로 지켜보았다. 래틀이 확보한 악단의 대중 친화적 이미지를 천재 지휘자가 어떻게 이어갈지 지켜보자.


2018년 10월 짧은 체류 기간 동안 베를린 필하모닉의 연주는 없지만 포기는 이르다. 베를린에는 그 못지않은 최고의 오케스트라가 셋이나 더 있고, 오페라단 또한 같은 수만큼 유지되고 있다. 얘기인즉슨 베를린에 가면 늘 최고의 콘서트나 오페라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베를린 도이치 심포니 오케스트라Deutsches Symphonie-Orchester Berlin는 통일 전 서독 방송 교향악단이다. 통일 이후 옛 동베를린 라디오 심포니와 명칭이 겹치면서 ‘도이치 심포니’로 바꿨다. 신생 악단을 거쳐간 젊은 지휘자들은 뒷날 세계적인 명장이 되었다. 로린 마젤, 리카르도 샤이, 켄트 나가노와 같은 사람들이다. 베를린 도이치 심포니 또한 오세티아 태생의 러시아 지휘자 투간 소히예프가 볼쇼이 오페라로 가면서 지금은 영국의 젊은 지휘자 로빈 티치아티가 맡았다.

약단의 70년 약사. 볼 만함!

나는 2013년 이 홀에서 소히예프의 지휘로 슈베르트의 교향곡 9번을 들었다. 장차 큰 무대로 갈 선 굵은 지휘자임을 확인했고, 특별한 영상물로도 소히예프의 구석구석을 살폈다. 다름 아닌 롱테이크로 찍은 브람스의 교향곡 2번이었다. 하나의 카메라를 가지고 브람스 구조물의 짜임새를 낱낱이 스캔하는 멋진 경험을 한 것이다. 소히예프는 목관이 현악에게 들려준 소리와 팀파니가 악단 전체에 미친 영향을 찬찬히 조망하게 한다.


https://youtu.be/Pex1iIUq13Q

(유로아츠는 퍼가기 금지로 링크만 걸음)


독일 통일절에 네덜란드의 바로크 음악 명인 톤 코프만이 베를린 도이치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연주할 곡은 바흐 부자(父子)와 하이든의 음악이다. 함부르크부터 이어지는 바흐의 둘째 아들 얘기에, “아들도 유명한가” 궁금할 독자가 많으실 것이다. 가업을 잇는 경우는 많지만 대개는 아버지나 아들 어느 한쪽으로 무게가 기울게 마련이다. 아들 카를 필리프 에마누엘 바흐도 아버지에 비할 정도는 아니지만, 아버지가 아니었다면 훨씬 인정받았을 중요한 음악가였다.


프랑스 첼리스트 장 기엥 케라스가 연주한 아들 바흐의 첼로 협주곡이 바로 그런 증거 가운데 하나이다. 카를 필리프 에마누엘은 문예사에서 ‘다정다감 양식’을 대표한다. 고색창연한 바로크 시대를 마감하고 대신 훨씬 밝고 경쾌한 양식이 잇따르며 그 뒤에 올 고전주의를 예고했던 것이다.

참 예쁘게 만들었다. 이런 게 화개장터

지난 2014년은 아들 바흐의 탄생 300주년 기념해였다. 독일에서 그와 관련 있는 도시들이 연합해 홈페이지와 로고를 만들고 행사를 공동 주최했다. 함부르크나 베를린 같이 큰 도시가 포츠담이나 바이마르처럼 작은 도시와 어깨를 나란히 했다. 홍길동의 본적을 놓고 강원도 강릉과 전라도 장성이 법정까지 가서 결론을 냈던 우리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 결론을 누가 아나?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했던 홍길동인데, 서로 연대할 수는 없었을까?

5척 단구의 표본

카를 필리프 에마누엘 바흐가 완성한 다정다감 양식의 특징 가운데 하나가 ‘질풍노도’이다. 케라스는 마치 망망대해 한가운데에 있는 조각배의 조타수처럼 바람 한점 없는 바다에 미풍을 일으켰고, 폭풍우가 몰아칠 때도 배가 뒤집어지지 않게 했다.

앙상블 레조난츠와 CPE 바흐 협주곡을 녹음한 케라스

앙코르인 장 루이 뒤포르의 연습곡도 시의적절했다. 베를린에서 활동한 뒤포르는 베토벤이 자신의 첫 첼로 소나타를 헌정했을 정도로 이름난 명인이었다. 프랑스 첼리스트 케라스가 베를린 청중에게 선보이기에 뒤포르는 더없이 알맞은 곡이지 않은가!


톤 코프만은 전반부 바흐 부자의 음악에 이어 후반에는 고전주의의 아버지인 하이든의 교향곡 98번을 지휘했다. 불협화음마저도 화음의 일부로 만들어 버리는 하이든의 교향곡과 청중의 박수에 해맑게 화답하는 노인의 모습 덕분에 오후에 본 시위대와 경찰의 대치는 까맣게 잊혔다.

베를린 필하모닉과 같은 곡을 연주한 코프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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