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2월의 CD 리뷰
아, 환상 교향곡 3악장이 찬송가였어?
베를리오즈는 약관에 쓴 <장엄미사>를 초연 뒤 폐기했다. 보존된 사보를 1991년 벨기에 음악교사가 발견했고, 1993년 존 엘리엇 가디너가 초연, 녹음한다. <장엄미사>는 뒤이을 <환상 교향곡>, <벤베누토 첼리니>, <레퀴엠>의 씨앗이다. 특히 ‘글로리아’의 ‘감사하나이다Gratias’ 선율은 <환상 교향곡> 3악장 ‘들판의 정경’에 사용되고, ‘부활하시고Resurrexit’는 <레퀴엠>의 ‘놀라운 나팔소리Tuba mirum’와 유사하다. 심지어 전반적 분위기는 포레의 <레퀴엠>을 예고한다. 베를리오즈 150주기를 기렸던 2019년 9월, 베르사유 실황 녹음을 통해 에르베 니케는 베를리오즈 시리즈의 야심 찬 출사표를 던졌다.
* <오페라> 다이아몬드
연주: 에르베 니케 (지휘), 르 콩세르 스피리튀엘 외
셰익스피어의 마지막 희곡에서 가져온 ‘폭풍우La Tempête’라는 악단 명칭만큼이나 격정적이고 파격적인 몬테베르디 앨범이다. 몬테베르디가 베네치아 산마르코 바실리카의 합창장이 되기 위해 제출했던 종교 음악 <성모 마리아의 저녁 기도>를 당대 베네치아를 둘러싼 지중해 세속 음악과 나란히 편집해 연주한 것이다. 처음 듣는 사람에겐 그만큼 진입장벽을 낮춰줄 터이고, 원곡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참신한 해석에 귀가 번쩍할 것이다. 사실 곡의 시작을 여는 장대한 합창이 3년 전에 쓴 오페라 <오르페오>의 서곡 ‘토카타’로부터 온 것임을 떠올리면 베스티옹의 과감하고 학구적인 시도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 쇼크 드 클라시카
연주: 시몽 피에르 베스티옹 (지휘), 라 탕페트
헨델에게 카스트라토 세네시노가, 벨칸토 작곡가에게 마리아 말리브란과 주디타 파스타와 같은 명창이, 바그너에게 당대 헬덴 테너들이 있었던 것처럼 루이 14세의 베르사유에는 루이 골라르 뒤메니라는 가수가 활약했다. ‘오트콩트르haute-contre’라 부르는 그의 음역은 오늘날의 하이 테너이다. 카운터테너의 현란한 기교와 헬덴 테너의 강력한 카리스마를 동시에 가진 뒤메니가 곧 프랑스 바로크 오페라의 주인공을 정의했다. 벨기에 테너 라이나우트 판 메헬런과 그의 앙상블은 륄리부터 캉프라까지 다룬 이번 음반을 시작으로 앞으로 라모와 글루크를 더해, 프랑스 바로크를 지배한 오트콩트르의 매력을 탐험한다.
* 디아파종 황금상
연주: 라이나우트 판 메헬런 (테너), 아 노크테 템포리스
로마에서 시작해 브린디시까지 이어지는 아피아 가도에 이탈리아 자동차 회사 피아트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친퀘첸토가 서 있다. 번호판은 <로마 ‘600>, 곧 17세기 로마로 가자는 뜻이다. 바로크 기타리스트 시모네 발레로톤다와 ‘이 바시폰디’ 동료들은 화가 카라바조와 작곡가 스트라델라가 활동했던 시대의 골목을 누빈다. 앞선 르네상스나 뒤에 올 하이 바로크에 비해 침체되었던 것으로 인식된 17세기 로마야말로 이들에게는 경쟁할 상대가 없는 놀이터이다. 프레스코발디, 캅스베르거, 또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마르케티, 발담브리니와 같은 세속 음악가가 엄숙한 교황의 도시에 생생한 숨결을 불어넣는다.
연주: 시모네 발레로톤다 (기타), 에뫼케 바라트 (소프라노), 엔리코 오노프리 (바이올린) 외
하이든은 젊은 모차르트를 만나 친구가 된 1784년 무렵 교향곡 80번과 18번, 마지막 피아노 협주곡인 D장조 11번을 작곡해 초연했다. 에스테르하지 가문으로부터 점차 자유를 얻어가던 완숙기의 하이든은 자신에게 헌정된 모차르트의 현악 사중주로부터 빼어난 형식미를, 그리고 젊은 천재가 가장 공을 들이던 피아노 협주곡들로부터 드라마틱한 전개를 배우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벨기에 젊은 지휘자 바르트 판 라인과 그의 고음악 앙상블이 세 곡을 군더더기 없이 말끔하게 해석했다. 루카스 블론델은 하이든이 여지를 남긴 협주곡 3악장 카덴차에 모차르트의 판타지아(K.397)를 가져와 둘의 친분을 보여준다.
* BBC 뮤직 매거진 초이스
연주: 바르트 판 라인 (지휘), 르 콩세르 당베르, 루카스 블론델 (포르테피아노)
1960년 소련에서 태어난 지휘자 드미트리 리스는 드미트리 키타옌코에게 배우고 모스크바 필하모닉에서 그를 보좌했다. 보리스 베레좁스키와 주로 녹음하며 이름을 알린 리스가 남네덜란드 필하모닉의 지휘자로 서유럽에 발판을 마련했다. 그는 1953년 스탈린이 죽은 직후 발표된 쇼스타코비치의 10번 교향곡에 남다른 공감을 갖는다. 말러나 프로코피예프 같은 선배 교향악 작곡가들뿐만 아니라 금기였던 스트라빈스키 어법까지 끌어들인 이 곡을 통해 작곡가가 쟁취한 정신의 해방을 탐구한다. 리스의 아내 올가 빅토로바의 <청룡>은 과거와 현재, 유럽과 동양을 잇는 상서로운 매개이다.
연주: 드미트리 리스 (지휘), 남네덜란드 필하모니 오케스트라
AVI8553446 세쿠엔차 (비버, 샤리노, 베리오, 슈만)
1982년 하이델베르크 태생 프란치스카 횔셔의 데뷔 음반. 독일 명 바이올리니스트이자 그녀의 스승인 울프 횔셔와 가족 아니냐는 질문도 자주 받지만 철자를 달리 쓴다. 30대 후반 다소 늦은 데뷔 음반인데, 그간 이력과 음반 수록곡을 보면 납득이 간다. 횔셔는 이미 베를린 콘체르트하우스와 메틀라흐 실내악 축제 예술감독이며, 마르틴 헴헨, 닐스 묀케마이어, 안드레아스 오텐자머 같은 동년배 정상급 연주자의 실내악 파트너이다. 비버의 <파사칼리아>부터 선 굵은 목소리를 내며, 20세기 곡들에서 테크닉의 극한을 보여준다. 슈만 최 만년 소나타는 실내악 축제 예술감독의 존재감을 유감없이 발산한다.
연주: 프란치스카 횔셔 (바이올린), 제페린 폰 에카르트슈타인 (바이올린)
2006년 창단, 2012년 ARD 콩쿠르 우승 뒤, 이젠 어엿한 중견 앙상블이 된 아르미다 사중주단의 두 번째 모차르트 앨범. 1집과 같이 헨레 출판사의 새 악보를 가지고 연주한 초기, 중기, 후기의 세 곡을 한데 엮었다. 사중주 1번을 쓴 1770년, 14세 모차르트는 이미 네 편의 오페라를 작곡한 소년이었다. 빈에서 쓴 사중주 17번은 하이든에게 헌정한 6곡 가운데 가장 유명한 ‘사냥’이다. 출판업자 호프마이스터의 이름이 붙은 사중주 20번이 완숙기를 대표한다. 하이든 오페라에서 가져온 악단명의 여자 마법사처럼 때론 요염하게, 때론 스승 아르테미스와 하겐 사중주단 멤버들 앞인양 진지하게, 모차르트의 가사 없는 4중창을 노래한다.
연주: 아르미다 사중주단
노르웨이 라디오 오케스트라가 북유럽 중견 음악가들과 협연한, 프랑스 6인조 대표주자 프랑시스 풀랑크의 세 협주곡이 하나로 묶였다. 풀랑크 협주곡은 처음에는 그의 멘토 에릭 사티나 스트라빈스키의 아류로 들리다가(피아노 협주곡 1, 2악장) 느닷없이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유머를 마주한다(3악장). 심지어 프로코피예프의 저돌적인 리듬도 튀어나왔다가(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협주곡 1악장) 모차르트(2악장)까지 뒷걸음질 친다. 바흐와 리스트, 프랑크와 라벨이 부유하는 듯한 자유분방함(오르간과 현, 팀파니를 위한 협주곡)이야말로 풀랑크의 매력이다.
연주: 노르웨이 라디오 오케스트라, 토마스 쇤데르고르 (지휘), 호바르 김세 (피아노) 외
오슬로 필하모닉 체임버 세 멤버가 슈만의 <메르헨 에어첼룽겐(동화 이야기)>와 브루흐의 여덟 소품, Op 83, 모차르트의 <케겔슈타트 트리오>를 묶었다. 클라리넷, 비올라, 피아노가 만나는 최상의 선곡이다. 특히 슈만과 모차르트에 비하면 브루흐는 메이저 음반사에서는 좀처럼 찾기 어려운 귀한 곡이다. 슈만과 그 모델 모차르트처럼 브루흐 곡도 원숙기 음악이다. 그럼에도 연주가 드문 까닭은 이 곡이 20세기 초에 브람스풍으로 쓴 시대착오적인 음악이기 때문이다. 차고 넘치는 실내악 가운데 귀한 조합의 트리오, 그중에서도 더욱 쓸쓸하게 평가받지 못한 브루흐 걸작이 들었다는 점에서라도 놓칠 수 없는 음반이다.
연주: 레이프 아르네 페데르센 (클라리넷), 헨닝게 란다스 (비올라), 곤살로 모레노 (피아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