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이 매너를 만들다

스트라빈스키와 클레

by 정준호

루스카야 무지카: 가장 마지막에 오는 것을 알려면 앞선 모든 것을 알아야 한다


<피아노와 관악기를 위한 협주곡Concerto pour piano et instruments à vent>은 스트라빈스키의 서명과도 같은 곡이다. 첫 악장은 명백히 <풀치넬라>와 <병사 이야기>의 선율로 채웠다. 이탈리아와 러시아를 오간 자신의 이력을 요약한 듯하다.

보리스와 친구들

두 번째 악장의 전반부는 아마 스트라빈스키의 음악 가운데 거의 유일하게 후기 낭만주의를 동경하는 듯한 분위기이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늪에 빠진 발을 끌어내려 안간힘 쓰다가 후반부엔 길 잃은 쓸쓸한 조성을 맴돌며 다음 악장으로 넘어간다.

맙소사, 폴리니의 2악장 연주

3악장은 바흐를 연주하는 피아노와 그를 유혹하는 관악기 사이의 갈등이다.

아시케나지와 무스토넨의 3악장

이 모든 것이 대서양 횡단 여객선에서 태어나 배에서 생을 마친 피아니스트의 얘기를 그린 알레산드로 바리코Alessandro Baricco의 <노베첸토Novecento>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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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세페 토르나토레 감독Giuseppe Tornatore이 영화로도 만든 이 이야기에서 피아니스트는 공간으로나 시간으로나 어느 세상에도 속하지 못했기에 결국 폐선과 운명을 같이 하는 쪽을 택하지만, 스트라빈스키의 피아니스트는 아마도 장고 끝에, 어쩌면 마지못한 척 친구 따라 허둥지둥 하선하는 것처럼 들린다.

명화 <The Legend of 1900>

그런 면에서 스티븐 오스본Steven Osborne이 피아노를 치고, 일란 볼코프Ilan Volkov가 지휘하는 BBC 스코티시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연주한 하이피리언의 음반 커버는 최고의 선택이다.

유튜브는 스트라빈스키가 편곡한 <볼가강의 배 끄는 인부들>로 시작한다

파울 클레가 그린 <세네치오Senecio>는 바젤 쿤스트 무제움이 소장 중이다. 그림에는 ‘초로初老baldgreis’라는 부제가 붙었다. 세네치오는 광대 아를레키노Arlecchino(영어로는 할리퀸Harlequin)의 이름이다. 풀치넬라의 친구인 늘그막 광대의 얼굴을 그리며, 클레는 그의 알록달록한 의상을 얼굴로까지 확대했다. 옷이 매너를 만든 것이다.

800px-Tivoli_Gardens_-_Harlequin.jpg 덴마크 티볼리 극장의 아를레키노

스트라빈스키가 겪은 이력이 곧 그의 예술로 거듭났다고 해석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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