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아카 막시마와 진실의 입

로마의 목욕탕과 하수도

by 정준호


아피아 가도는 기원전 4세기 초부터 군사 목적으로 건설되었지만, 일반에 익숙한 것은 기독교 관련 유적이다. 헨리크 시엔키에비츠의 소설 <쿠오 바디스>로 유명한, 도미네 쿠오 바디스 교회, 산 세바스티아노 바실리카가 길가에 자리한다. 아피아 가도에 귀족 가문의 카타콤이 생기기 시작했는데, 이곳에 기독교인들이 비밀리에 모였다. 로마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재위 284-305)의 근위 장교 세바스티아누스도 그들 가운데 하나였다.


세바스티아누스는 형장으로 끌려가는 신도들을 격려하다가 그 자신도 사형을 선고받았다. 군중이 보는 앞에서 나무 기둥에 묶인 채 화살을 맞는 형벌이었다. 그러나 그는 화살을 맞고도 죽지 않고 구출되었다. 근처에 황제가 지나간다는 소식을 들은 세바스티아누스는 채 회복되지 않은 몸을 끌고 나가 다시 그리스도교를 설파한다. 황제는 매질해 죽이고 시신은 하수도에 버리라고 했다. 결국 숨진 그의 시신을 루치나라는 독실한 여인이 수습해 아피아 가도 곁 카타콤에 묻었다. 시피오네 보르게세 추기경이 그 자리에 성당을 지었다.

로도비코 카라치의 <하수도에 버려지는 성 세바스티아누스>

로도비코 카라치(1555-1619)는 포폴로 성당의 <성모승천>을 그린 안니발레 카라치의 사촌이다. 모두가 화살 맞은 세바스티아누스를 그릴 때 그는 특이하게 성인의 주검이 하수도에 버려지는 장면을 그렸다. 클로아카 막시마Cloaca Maxima라고 부르는 로마 하수구는 원래 고대 로마 이전, 이 지역에 자리 잡았던 에트루리아의 유적이다. 처음엔 청계천처럼 하천과 운하 형태이던 것이 테베레강 범람에 대비해 도시 표고를 높이면서 지하로 내려갔다.

디오클레티아누스 욕장

로마 북부 공화국 광장에 도시 상하수도망의 규모를 예상할 수 있는 유적이 있다. 역시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욕장이다. 이런 대규모 공공 목욕탕에 수도교를 통해 물을 대고 클로아카 막시마로 하수를 빼냈다. 디오클레티아누스 욕장은 냉탕과 온탕은 물론이고, 도서관까지 갖췄다. 요즘으로 말하면 도심 복합 리조트인 것이다. 계란도 삶아 먹었을지 모른다. 이 기념비적인 유적에 천사와 순교자를 위한 성모 마리아 대성당(Santa Maria degli Angeli e dei Martiri)을 설계한 사람 또한 미켈란젤로이다.

천사와 순교자를 위한 성모 마리아 대성당

성당 안에 눈길을 끄는 것은 자오선 측정기이다. 18세기 초 교황 클레멘트 11세는 천문학자 프란체스코 비안키니에게 이곳에서 태양을 관측하게 했다. 16세기 그레고리오 13세 역법의 정확성을 확인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기독교를 박해한 로마 교황의 목욕탕에서, 카이사르가 정한 율리우스 역법보다 기독교의 역법이 우수함을 내비치려 한 것이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클로아카 막시마가 없었더라면 교황도 바티칸 아닌, 다른 곳에 자리 잡았을지 모를 일이다. 아니 클로아카 막시마가 없었더라면 로마 제국도 없었을 터이고, 유대 왕국의 나사렛 예수도 다른 제국의 총독을 상대했을 것이다. 이 또한 하늘의 뜻이었나 보다.

자오선에서 미터법이 나왔던가?

19세기 파리 하수구를 정비했던 오스만 남작보다 거의 2천 년 전에 이런 토목 공사가 이뤄진 덕분에 고대 로마는 1백만 인구를 감당할 정도로 위생적인 도시가 되었다. 2020년 코로나로 몸살을 앓는 후손을 보면 고대 로마인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그냥 이게 다다, 아무도 관심 없다

로마의 하수도가 결국 런던과 파리 근대 도시 정비 사업의 효시였던 셈이니 얼마나 대단한가! 도시의 위생 확보와 시민의 건강 보장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새삼 절감하는 중이니 말이다. 빅토르 위고의 <레 미제라블>에서 가장 세밀하게 묘사된 장면 가운데 하나가 하수도이다. 장발장이 바리케이드에서 부상당한 마리우스를 업고 하수도로 탈출하는 냄새나는 장면은 <쇼생크 탈출>의 원조이다.

2019 BBC 버전: 이것이 결정판! 레미제라블이 6시간이 되어야지!

요즘엔 007이나 톰 아저씨도 하수도를 좋아한다. 모터보트를 타고 템즈강으로 나가는 장면은 실제일까 세트일까?

왜 내가 신나냐?

클로아카 막시마를 보러 오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바로 옆의 ‘진실의 입La Bocca della Verità’은 <로마의 휴일> 덕분에 줄이 생긴 뒤, 이제는 아예 돈까지 받는다. 원래는 옆에 있는 헤라클레스 신전에서 썼던 것으로 추정된다. 제물을 바치고 그 피가 가면의 입을 통해 빠져나가게 했다는 설과 지붕의 덮개인데 판테온처럼 빗물이 떨어지도록 구멍을 뚫었다는 설이 있다.

거짓말 감별사가 뒤에서 손을 잡아주고 돈을 두 배로 받자!

가면은 대양의 신 오케아노스를 묘사한 것이란다. ‘오션’이라는 말이 이 거인족 신으로부터 유래한다. 오케아노스는 바다의 여신 테티스와 사이에 오케아니스라는 딸들을 낳았다. 물의 요정 님프이다. 먼저 시벨리우스가 1912년에 쓴 교향시 <오케아니스The Oceanides>를 들을 수 있다.

드뷔시의 <바다>를 따라한 것이다

직전인 1912년에 리하르트 슈트라우스가 쓴 걸작 <낙소스의 아리아드네>에도 물의 요정 나야드, 드리아드, 에코가 다 나온다. 그리스인들에게 대양이라 봐야 지중해이고, 낙소스가 지중해 가운데 있으니 대양의 딸들이 맞는다. 모차르트의 <마술피리> 가운데 밤의 여왕의 세 시녀, 바그너 <라인의 황금>의 세 처녀를 잇는 최고의 여성 트리오이다.

적십자 버전

진실의 입 앞에 선 사람들은 모두 거짓말이라고는 생전 해본 적이 없다는 듯 신나게 입 속에 손을 넣는다. 손이 잘리지는 않겠지만, 벌로 거짓말을 못하게 된다면 어떨까? 파파게노처럼 입에 자물쇠를 채운다면? 짐 캐리의 <라이어 라이어>부터 나미란의 <정직한 후보>까지 배꼽 잡게 하는 이야깃거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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