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3월 어느 날
쇼팽을 원해서 듣는 일은 드물다. 벨칸토를 안 좋아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흥미로운 그림 때문에 쇼팽을 들었다. 음반에서 아주 중요한 것이 커버이다. 담긴 내용이야 듣기 전엔 알 수 없지만, 표지를 보면 만듦새를 가늠할 수 있다. 좋은 재킷을 만드는 프로듀서의 안목이라면 좋은 연주일 것이라 기대하게 한다. 국내외 할 것 없이 요즘 나오는 음반은 스튜디오에서 찍은 것 같은 무성의한 인물 사진을 쓴다. 그것이 더 성의 있는 것이라면 할 수 없지만, 듣고 싶은 마음이 싹 사라진다.
감상적인 선입견을 주는 쇼팽의 녹턴 음반에 피아니스트의 얼굴 사진이 실렸다면 들어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박은식의 음반은 처음 보는 영감 넘치는 그림으로 호기심을 불러 모은다. 당장 열어 내지를 보니 예일 대학 미술관이 소장한 장 프랑수아 밀레의 <별밤Nuit Étoilée>이다. 내가 몰라서 그랬지 유명한 그림이다. 밀레가 1849년에 그리기 시작해 이듬해 완성했고, 1865년에 수정해 완성했다고 한다. 런던을 거쳐 예일대에 온 것은 1913년이다. 100년 넘게 소장했으면 진짜 주인이다.
박은식은 서울대와 인디애나 대학, 럿거스 대학에서 공부했고 현재 전남대 교수이다. 보자르 트리오의 멤버 메나햄 프레슬러가 가장 중요한 스승이라 한다. 간결하면서도 맑은 터치가 그를 떠오르게 한다. 잘은 몰라도 상태 좋은 명기로 녹음한 듯하다. 내지 해설도 박은식이 직접 썼다. 그러나 해설이 너무 교과서 같다. 왜 밀레의 그림을 커버로 썼는지, 평소 쇼팽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녹턴 전집에 대개 싣는 21번 C단조는 왜 포함하지 않았는지, 이런 것에 관한 생각을 들려줬더라면 훨씬 좋았을 터이다.
고흐는 <씨뿌리는 사람>에서 보듯이 밀레에게 큰 영향을 받았다. <별 밤>을 직접 보았는지는 모르나 두 사람의 자연을 경외하는 시선은 같다. 밀레의 그림에서, 두드러지는 두 유성의 대칭 위치, 곧 우측 아래 지면에 두 개의 빛이 보인다. 너무 어두워 흙과 구별되지 않는 시냇물에 비친 것일까? 여명인지 황혼인지 모를 이 정도의 어스름이라면 시냇물도 보일 텐데, 자세히 보면 우마차가 지나간 자리 고인 물에 별이 비친 것 같기도 하다. 아니면 반딧불이일까? 파리에서 마요르카로, 아니면 반대로 가던 쇼팽이 바르비종을 지났을까? 밀레가 그림을 그린 1849년에 쇼팽이 세상을 떠났다. 별똥별 하나는 쇼팽일까? 이런 생각이 녹턴을 타고 흐른다.
마이클 호페라는 사람의 음반도 커버 때문에 처음 들었다. 아니 여기저기서 많이 들었을 테지만 호페인 줄은 몰랐을 것이다. 대중 매체를 통해 자주 등장한다 하고 그럴 법한 음악이다. 호페가 쓴 카스파르 다비트 프리드리히의 <해변의 수도사Der Mönch am Meer>는 내가 책이나 음반을 내면 쓰고 싶던 그림이다. 베를린 옛 국립미술관이 소장한 숨은 걸작이다. 폴리그램의 A&R(Artists and repertoire) 책임자였던 호페이니 얼마나 잘 만들었겠는가! 반젤리스나 기타로 같은 음악가의 음반을 기획한 사람이다. 내가 더 거들지 않아도 알아서 잘할 것이다.
프리드리히를 보고 귀스타프 쿠르베는 <팔라바의 해변Le Bord de mer à Palavas>을, 제임스 애벗 맥닐 휘슬러는 <청색과 은색의 조화(화음): 트루비유, 1865Harmony in blue and silver: Trouville, 1865>라는 걸작을 그렸다는 것만 덧붙인다. 이 그림들을 커버로 쓸까? 책이 나오나?
나는 올해, 오랫동안 해오던 빈 신년 음악회 실황 앨범 내지 번역에서 해방되었다. 덕분에(!) 더 좋은 음반을 많이 얻어듣고, 이렇게 주문받지 않은 리뷰도 자진해서 쓴다. 앞서 본 두 앨범에 비하면 소니의 빈 신년 음악회 앨범 표지는 정말 성의 없다. 빈 필하모닉이 프로그램을 만드는 데 들이는 공을 안다면 이러지 말았으면 좋겠다. 악단 전경에 지휘자를 몽타주 하는 천편일률적인 콘셉트이다. 세기말 유겐트슈틸 그림이라도 좀 쓰면 좋겠다. 어쩌면 이런 얼굴값, 이름값이 판매에 더 좋을지도 모를 일이다. 요즘 누가 음반을 사나! 베토벤 탄생 250주년을 기념해 넣은 곡을 들어본다. 합창 교향곡 4악장 중반에 나오는 실러의 가사에 붙인 곡이다. “포옹하라, 백만인이여!Seid umschlungen, Millionen! Walzer, Op. 443”. 실천은 코로나 이후로 미루자.
이 음반에 대해서는 정말 할 말이 많으므로 다시 쓰도록 하겠다. 뚝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