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6월 CD 리뷰
26세로 요절하던 페르골레시가 병상에서 쓴 마지막 곡 <슬픔의 성모>는 그보다 15살 많은 바흐가 칸타타로 편곡할 정도로 높이 샀다. 그만큼 소프라노가 한번쯤 녹음하고픈 레퍼토리이기도 하다. 이력의 정점에서 이 곡에 처음 도전한 프랑스 바로크 음악의 뮤즈 상드랭 피오는 안드레아스 숄/바버라 보니 앨범에 이어 20년 만에 이 곡을 찾은 크리스토퍼 루세와 레 탈랑 리리크의 든든한 도움을 받았다. 젊은 미국 카운터 테너 크리스토퍼 로리도 그녀와 완벽한 호흡을 이루며, 두 사람은 각각 포르포라의 <성모 찬송가>와 레오나르도 레오의 <복 있는 자>로 나폴리 음악의 전성기를 조명한다.
BBC 뮤직 매거진 초이스
연주: 상드랭 피오 (소프라노), 크리스토퍼 로리 (카운터테너), 레 탈랑 리리크 등
벨기에와 접한 북프랑스 상공업 도시 릴은 인구수로 프랑스 제4의 도시이지만, 문화로 얘기할 것은 적었다. 1976년 장 클로드 카사드쉬가 오케스트라를 창단하고 국립의 타이틀을 가져오기까지 노력한 끝에 위상에 걸맞은 악단이 탄생했고, 카사드쉬가 30년을 조련한 악단은 프랑스의 신예 알렉상드르 블로슈가 물려 받았다. 이들의 알파 두 번째 녹음은 라벨의 대표작 <라 발스>과 <스페인 광시곡>, 그리고 악단의 상주 작곡가였던 뱅자맹 아타히르의 서펜트(뱀 모양의 관악기) 협주곡 <아도르>이다. 거침없는 상상력과 이국적인 색채, 대담한 관현악법은 두 작곡가의 100년 차를 부담없이 이어준다.
연주: 알렉상드르 블로슈 (지휘), 릴 국립 오케스트라
에스토니아의 에르키 스벤 튀르와 지휘자 파보 예르비는 40년 전 탈린 음악학교에서 처음 만난 친구이다. 모국을 대표하는 작곡가와 지휘자로 인연을 맺은 것은 25년 전이고, 튀르는 에스토니아의 건국 100주년을 기념하는 <신화>를 친구에게 헌정했다. 35분의 대편성 관현악 <신화>는 튀르의 아홉 번째 교향곡이다. 혼돈으로부터 빅뱅을 거쳐 창조가 이뤄지는 듯한 광경이 에너지의 파동처럼 전해진다. 선배 아르보 페르트가 명상과 침묵의 작곡가였다면, 튀르는 변태와 확산의 작곡가임을 확인케 한다. <폭풍의 주문>과 성경 구절에 기초한 <바람의 씨뿌림>은 환경 파괴에 대한 경고까지 담았다.
디아파종 황금상
연주: 파보 예르비 (지휘), 에스토니아 페스티벌 오케스트라
베토벤이 만돌린과 건반을 위해 작곡한 음악은 거의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 가치와 즐거움은 특별하다. 1796년 26세의 베토벤은 리히놉스키 공과 프라하를 방문했을 때 아마추어 가수이자 만돌린 연주자인 요제피네 클라리 알드링겐 백작부인을 소개받고, 콘서트 아리아 ‘아, 무정한 사람’과 만돌린 음악을 그녀에게 헌정했다. 프라하는 모차르트 오페라 <돈 조반니>의 초연지이고, 만돌린은 돈 조반니의 악기이다. 이 곡들로 아직 재능 있는 피아니스트에 불과했던 베토벤이 모차르트를 잇는 작곡가로 발돋움하는 것이다. 동시대 보르톨라치와 훔멜이 쓴 만돌린 음악이 달달했던 빈의 대기를 만끽하게 한다.
연주: 라파엘레 라 라조네 (만돌린), 마르코 크로세토 (포르테 피아노)
16세기 벨기에의 안트베르펜은 상공업과 문화예술의 황금 시대를 누렸고, 특히 음악은 베네치아와 함께 유럽의 중심이었다. 뤼케르 가문의 공방에서 만든 하프시코드와 버지널을 구하기 위해 전 유럽의 고객이 줄을 섰다. 틸만 수사토와 피에르 팔레스로 대표되는 인쇄 출판업자들의 명성도 자자했다. 리코더와 숌, 크럼호른, 류트를 따위의 당대 악기로 구성된 라 카치아 앙상블은 P. 팔레시우스, E. 아드리엔센, B. 아펜첼러, 수사토 등의 음악을 선곡해 5인조 중창단 카필라 플라멘카와 함께 연주했다. 인본주의를 주창한 이탈리아 르네상스가 알프스 이북에서 어떻게 꽃폈는지 살펴보는 노작의 반가운 재발매이다.
연주: 파트리크 데네케르 (리코더, 지휘), 라 카치아 앙상블, 카필라 플라멘카 중창단
루이 13세와 14세가 다스리던 프랑스의 17세기는 ‘그랑 시에클’, 곧 위대한 세기로 불린다. 30년 전쟁을 승리로 마무리하고, 베르사유 궁전을 지어 국력을 과시한 때이다. 앙드레 르 노트르가 정원을 설계하고, 프랑수아 앙사르가 지은 궁전에 니콜라 푸생이 그림을 더했다. 라 퐁텐과 라신, 몰리에르가 지은 시에 륄리와 쿠프랭이 곡을 붙였다. 여기에 빠트릴 수 없는 이름이 앙투안 샤르팡티에이다. 국가의 번영을 찬양하는 <테 데움>의 의기양양함은 오늘날까지 빛이 줄지 않는다. <오르간을 대신한 여러 악기를 위한 미사>는 중세 이래 ‘악마의 소리’라 멀리했던 기악을 전례 성가의 반주로 굳힌 탁월하고 독창적인 성과이다.
연주: 장 튀베리 (지휘), 나뮈르 실내 합창단, 레 자그레망 앙상블, 라 페니체 앙상블
‘조반니 바티스타’, 곧 세례자 요한이라는 흔하면서도 묵직한 이름의 많은 음악가 가운데 가장 우뚝한 사람은 페르골레시이다. 그리스도의 모친을 동정하고 위로하는 여러 작곡가의 <슬픔의 성모> 중에도 그의 작품은 특별하다. 극적인 페르골레시에 비하면 그에게 영향을 준 선배 안토니오 칼다라의 <그리스도 발 아래 막달라 마리아>는 정적인 슬픔으로 뒤에 올 세례자를 예고한다. 바르트 내생스(지휘)와 아마릴리스 딜티엥스(소프라노) 부부가 이끄는 카프리올라 디 조이아 앙상블 멤버들의 즉흥적이고 자발적인 반응은 수난을 그린 두 종교 음악을 생동감 넘치는 표정으로 빛나게 한다.
연주: 즐거운 공중제비(Capriola di gioia) 앙상블, 클린트 판 데어 린데(카운터테너)
스위스 작곡가 프랑크 마르탱의 <무반주 이중 합창을 위한 미사> 중 ‘키리에’로 시작해, 아르보 페르트 특유의 종소리와 같은 <마니피카트>, 미국 작곡가 모턴 로리드슨의 광활한 <위대한 신비>, 드레스덴 폭격을 애도한 루돌프 마우어스베르거의 <이 도시가 얼마나 황량한가>에 이른 음반은 가장 유명한 바버의 <아뉴스 데이>로 정점을 이룬다. 제1차 세계대전 100주년을 기리는 마르턴 판 인겔겜의 <미완의 풍경>과 블레이크 시에 붙인 쿠르트 비켐베르의 실험적인 노래, 케네디 대통령을 추모하는 허버트 하월스의 곡, 끝으로 <겨울 나그네>를 모델로 한 풀랑크의 <눈 오는 저녁>까지 목소리로 치유하고 침묵으로 위로한다.
연주: 바르트 판 레인 (지휘), 플랑드르 라디오 합창단
http://www.youtube.com/playlist?list=OLAK5uy_mfNu_Iu0k4RAbBIjUrdYCR4zWTA8uy6lk
아트마 데뷔 음반 ‘파사지’로 호평 받은 캐나다 연주자 뱅상 로제가 코렐리의 교회 소나타 스타일을 따른 텔레만의 두 협주곡을 녹음했다. 로제는 텔레만 자신이 이미 십대에 빼어난 리코더 연주자였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바순 주자 마티유 뤼시에도 이중 협주곡에서 로제와 충만한 화성을 자아낸다. 19세기가 바흐의 부활을 이뤘고, 20세기 들어 헨델과 비발디가 복원되었다면, 텔레만은 아직도 발굴 중이다. 북미에서 가장 오랜 전통과 권위를 자랑하는 캐나다의 아리옹 바로크 오케스트라가 이탈리아와 프랑스 취향을 독일에서 꽃피운 진정한 바로크 마스터셰프의 레시피를 탐험한다.
연주: 뱅상 로제 (리코더), 마티유 뤼시에 (바순), 아리옹 바로크 오케스트라
비올 앙상블 ‘레 부아 위멘’(인간의 목소리)의 멤버로, 모든 비올 족 악기와 첼로에, 리코더까지 연주하는 멜리장드 코리보. 그녀가 단짝 하프시코드 연주자 에릭 밀른스와 마랭 마레의 비올과 통주저음을 위한 작품집 제4권을 발췌 녹음했다. 칠십 평생 동안 다섯 개 비올 작품집을 낸 마레는 61세 때인 1717년에 6개 모음곡과, 36곡으로 이뤄진 ‘낯선 취향의 모음곡’을 담은 작품집 4권을 발표했다. 전 유럽에서 프랑스로 흘러온 취향과 양식, 몸짓과 수사를 백과사전처럼 정리한 업적이다. 코리보와 밀른스는 장차 텔레만과 바흐에게 흡수될 바로크 양식의 재료들을 세심하고 사려깊게 어루만진다.
연주: 멜리장드 코리보 (베이스 비올), 에릭 밀른스 (하프시코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