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세기란 언제인가?

2020년 11월 CD 리뷰

by 정준호

AVI8553007 웨인 마셜이 지휘하는 거슈윈

재즈와 영화음악, 경음악을 주로 하는 서독일 라디오 관현악단(테오도르 쿠렌치스가 이끄는 서독일 라디오 교향악단의 자매악단이다.)을 10년 동안 이끌고 떠나는 영국 지휘자 웨인 마셜의 거슈윈 헌정 음반. 8세에 라디오에서 처음 거슈윈을 듣고 음악가가 되기로 결심한 그의 50여 년 거슈윈 사랑을 한 장의 음반으로 간추렸다. 출세작 <랩소디 인 블루>는 오르가니스트인 마셜이 직접 피아노를 연주했다. 후속작 <랩소디 2번>은 최근에야 관현악 악보가 복원된 숨은 걸작이다. 쿠바 재즈의 거장 파키토 드 리베라 또한 자작곡 <브라질 환상곡>과 <코끼리와 어릿광대>를 클라리넷으로 합주해 거슈윈과 라틴 아메리카가 주고받은 영향을 보여준다.

영국 재즈 음악가와 독일 악단의 거슈윈

AVI8553480 CPE 바흐: 피아노 피아노 전곡

리노스는 아폴론의 아들이자 오르페우스의 스승인 음악의 신이다. 그의 이름을 따 2007년에 창단한 리노스 트리오는 2015년에 멜버른 실내악 경연에서 우승해 이름을 알렸다. 리노스 트리오는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의 둘째 아들 카를 필리프 에마누엘의 탄생 300주년을 맞던 2014년부터 꾸준히 녹음한 끝에 그가 남긴 피아노 트리오 전곡을 두 장의 앨범에 담았다. 1775년 출판 당시 이 곡의 이름은 ‘바이올린과 첼로가 반주하는 피아노 소나타’였다. 당시 가장 큰 음악 시장이던 런던의 가정과 살롱을 위한 맞춤형 실내악이다. ‘함부르크의 바흐’의 좌표는 스카를라티와 하이든의 중간쯤이지만, 질풍노도의 양식감은 곧 활약할 베토벤을 예고한다.

참 앞서간 CPE 바흐

AVI8553110 베토벤: 피아노와 목관 합주

독일 중견 피아니스트 마르쿠스 베커와 1989년 ARD 콩쿠르를 우승한 마알로트 목관 오중주단. 이들의 베토벤 초기 음악 모음집은 작곡가 탄생 250주년인 2020년에 나온 가장 듣기 드문 선곡집이다. 14살 때 본의 선제후를 위해 쓴 일명 ‘0번 협주곡’은 피아노 독주 악보만 남았지만, 소년 베토벤의 천재성이 엿보이는 희소한 곡이다. 29세 때 쓴 <자동시계를 위한 네 소품>은 14분가량 길이로, 이듬해 나올 첫 교향곡을 위한 연습이라 볼 수 있다. 클라리네티스트 울프 귀도 셰퍼가 이 앨범을 위해 두 곡을 편곡했다. 유일하게 Op 16으로 정규 출판된 피아노와 목관을 위한 5중주는 같은 편성과 조성의 모차르트 곡을 모델로 한 26세 때 숨은 가작이다.

숨은 베토벤의 드러난 매력

LWC1201 베르디&시벨리우스: 현악 사중주

실내악 팬에게도 꽤 낯설지만, 베르디와 시벨리우스가 한 음반에서 만날 방법은 각자의 현악 사중주를 엮을 때뿐이다. 베르디의 유일한 사중주는 <아이다>를 쓸 무렵이던 1873년 원숙기의 작품이며, 브람스의 첫 두 사중주와 같은 해의 곡이다. 시벨리우스 또한 교향곡 3번과 4번 사이인 1909년에 ‘내면의 목소리’라는 제목의 5악장 사중주를 썼다. 1984년 노르웨이 네 여성이 창단한 베르타보 사중주단은 스칸디나비아를 대표하는 실내악단으로 높은 존재감을 쌓았다. “무쇠주먹에 벨벳 장갑을 낀 앙상블”이라는 평가처럼 유럽의 가장 남쪽과 가장 북쪽의 두 이질적인 작곡가를 때로는 쇳물로 때로는 얼음물로 녹여낸다.

브람스, 스메타나와 경쟁하는 베르디

ALPHA649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1번 & 2번

바로크와 초기 고전주의 녹음으로 좋은 반응을 얻었던 스위스 피아니스트 올리비에 카베의 베토벤 협주곡 녹음. 베토벤과 카베의 인연은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카베의 스승은 ‘나폴리의 호로비츠’라 불렸던 숨은 거장 마리아 티포이다. 이탈리아 방송국(RAI)은 2002년 티포의 70세 생일을 위한 일련의 공연을 기획했는데, 이때 25세에 불과했던 카베가 베토벤의 협주곡 전곡 가운데 1번을 맡았다. 이 성공적인 데뷔 덕에 그는 이듬해 라 스칼라 재개관 무대 초청, DG 녹음과 같은 굵직한 성과를 이어갔다. 출세작으로 돌아온 카베가 청량한 음색으로, 고치를 뚫고 나비가 되던 약관의 베토벤을 재현한다.

연주: 올리비에 카베 (피아노), 파트리크 한 (지휘), 포츠담 실내 아카데미

베토벤이 25세에 작곡한 곡을 25세에 연주했던 카베가 25세 지휘자와 만났다

CKD609 바흐: 골드베르크 변주곡 (소편성 오케스트라 편곡 버전)

요제프 코플러는 제2차 세계대전 말 나치 수용소에서 48세의 생을 마감한 유대계 폴란드 작곡가였다. 펠릭스 바인가르트너에게 배운 그는 12음 기법을 사용한 첫 폴란드 작곡가이기도 했다. 코플러는 1938년 아방가르드와는 전혀 거리가 먼,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 편곡을 내놓았다. 드미트리 시트코베츠키의 현악 3중주 편곡보다 훨씬 더 감상적이고 매혹적이다. 최고의 바로크 해석자인 트레버 피노크가 런던 왕립 음악원 앙상블의 특별 기획을 위해 이 편곡을 골랐다. ‘대서양 횡단 음악 협력’이란 제목의 이 기획을 위해 토론토 글렌 굴드 음악학교 학생들이 앙상블에 초대되었다. 굴드, 피노크 그리고 코플러가 골드베르크로 하나 된 앨범이다.


표지 그림과 똑같은 연주이다: Chana Kowalska's "Shtetl" (The Village, 1934)

CKD640 R. 슈트라우스: 죽음과 변용, 돈 환 외

사이먼 래틀이 떠난 베를린에 무사히 안착한 영국의 닮은꼴 로빈 티치아티는 네 번째 시즌 시작에 맞춰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를 녹음했다. 그는 이미 글라인드본 음악제에서 오페라 <장미의 기사>를 지휘했던 ‘슈트라우스 통’이다. 남독일 신문은 베를린 도이치 심포니를 가리켜 ‘오케스트라의 싱크탱크’라고 칭했다. 베를린 필하모닉을 비롯한 쟁쟁한 자매 악단 틈바구니에서 가장 연혁이 짧은 이 악단이 존재감을 지켜온 비결인 것이다. 앨범에 수록된 두 개의 상상력 넘치는 초기 교향시와 브렌타노 시에 붙인 여섯 개의 가곡이 그 자체로 멋진 하룻밤 프로그램이다. 카디프 성악 콩쿠르 청중상을 받은 소프라노 루이스 올더가 무지개 너머로 청중을 안내한다.

슈트라우스 대세에 올라탄 래틀의 후배

BZ1041 생상스: 오페라 <은종> (하드커버 BOOK+ 전곡 2CD)

1865년 생상스는 교직을 떠나 작곡에 전념하며 첫 오페라 <은종>을 썼지만, 극장 경영난과 보불전쟁으로 오페라는 12년 뒤 1877년에야 초연되었다. 화가 콘라드는 돈에 미쳐 건강마저 해친다. 그는 발레리나를 모델로 키르케를 그린다. 콘라드는 연인 엘렌의 도움도 마다한다. 의사로 변장한 악마가 원하는 돈과 사랑을 얻을 수 있는 은종을 준다. 단, 종을 치면 누군가의 목숨도 내놓아야 한다. 콘라드가 부자가 되는 순간, 엘렌의 아버지가 죽는다. 콘라드를 돕던 엘렌의 제부마저 은종 탓에 죽자 악마의 농간을 눈치챈 콘라드는 죄를 뉘우치고 모든 것을 내려놓은 뒤 엘렌에게 돌아간다. 프랑수아 사비에르 로트가 2017년 오페라 코미크에서 레 시에클, 아첸투스 합창단과 야심 차게 선보인 그랜드 오페라 버전.

그라모폰 에디터스 초이스, 크레센도 조커

피그말리온+파우스트+마술피리

BZ1039 오펜바흐: 오페라 <장인 페로니야> (하드커버 BOOK+ 전곡 2CD)

<장인 페로니야>는 오펜바흐가 61세로 타계하기 3년 전에 쓴 원숙한 오페레타이다. 마드리드 초콜릿 장인이 딸을 시집보내려다 벌어지는 소동을 그렸다. 여러 친숙한 작품의 장점을 취합한 대본. ‘두 남편과 아내’라는 부제가 암시하듯 정략결혼과 그것을 뒤집는 연인의 꾀와 도피가 문제를 일으키지만, 결국 진정한 사랑이 법적으로 인정받는다. 오펜바흐 작품으로 드물게 단기에 상연에 그쳤다. 사후 대본의 표절 논란까지 빚어 그간 잊혔지만, <지옥의 오르페오>나 <아름다운 엘렌>과 같은 익숙한 걸작에 스페인의 정취까지 더한 진정한 장인의 솜씨를 만끽하게 한다. 마르쿠스 포슈너가 지휘하는 프랑스 국립 오케스트라와 라디오 합창단, 신구 성악가가 걸작을 복원했다.

BBC 뮤직 매거진 초이스

세비야의 이발사+피가로의 결혼+지옥의 오르페우스+삼각모자

ALPHA973 륄리: 아르미드(1778년 버전) (하드커버 BOOK+ 2CD)

<아르미드>는 타소가 쓴 유명한 ‘리날도(르노)와 아르미다’를 소재로 한 오페라이다. 1686년 륄리는 루이 14세의 명을 받아 퀴노 대본에 곡을 붙였다. 이들 모두 세상을 떠난 18세기에도 <아르미드>의 명성은 이어졌다. 재연 때마다 당대 스타일에 맞게 개정되었는데, 1777년 중대한 도발이 이뤄졌다. 글루크가 같은 대본에 자신의 곡을 붙인 것이다. 1778년, 륄리가 이룬 ‘위대한 세기’를 신봉하는 사람 가운데 루이 조세프 프랑쾨르가 륄리의 수정판을 내놓았다. 륄리의 <페르세>를 같은 식으로 복원했던 에르베 니케는 춤곡을 더하고 관현악을 압도적으로 보강한 이 수정판을 최초 녹음했다. 글루크 시대에 부활한 륄리의 강렬한 매력은 오페라 팬이라면 거부할 수 없다.

BBC 뮤직 매거진 이달의 음반

하이브리드 륄리, 말하자면 모차르트의 헨델 편곡 비슷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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