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마지막 CD 리뷰
ALPHA588 빈 1900 - 20세기 초 빈의 살롱 음악
1993년 에릭 르 사주와 폴 메이어, 에마뉘엘 파위가 창설한 ‘살롱’ 프로방스 국제 실내악 축제의 2018년 실황이다. 1893년부터 1923년까지 이른바 ‘세기 전환기 빈’에서 펼쳐진 부르주아 살롱 음악회의 절경을 두 장의 앨범에 담았다. 구스타프 말러의 가곡 두 곡을 필두로, 그와 알마 신틀러를 놓고 경쟁한 쳄린스키의 낭만적인 클라리넷 트리오, 쳄린스키의 누이와 결혼했고 장차 12음 체계를 완성할 쇤베르크의 격렬한 <실내 교향곡>, 쇤베르크의 제자 베르크의 야심 찬 첫 피아노 소나타와 클라리넷 소품, 표현주의의 걸작 <실내 협주곡>이 제국의 수도 빈의 황혼을 물들인다. 세기말 빈의 막내 코른골트의 조숙한 피아노 트리오는 리하르트 슈트라우스풍 탐미주의를 유영한다.
ALPHA658 안나 프로하스카 - 구원 (바흐 아리아집)
남이 차려놓은 식탁은 거부하고 늘 직접 고른 메뉴대로 상을 차려야 만족하는 소프라노 안나 프로하스카. 그녀가 볼프강 카추너가 이끄는 라우텐 콤파니 앙상블과 바흐 칸타타 아리아집을 내기로 뜻을 모은 것은 2019년의 일이었다. 공연을 통해 프로그램을 다듬고, 음반으로 발매하는 공들인 과정은 2020년 들어 뜻밖의 코로나 창궐로 오히려 가속화되었다. 계획된 모든 일정이 취소 사태를 빚었기 때문이다. 선곡은 인류가 바라마지 않는 ‘구원’을 주제로 이뤄졌고, 합창을 위한 곡은 이른바 ‘리프킨 설’에 근거해 4중창으로 축소해 부르거나, 기악 앙상블로 편곡되었다. 바흐의 아내 안나 막달레나 이래, 그의 칸타타를 이토록 종횡무진 장악한 여성은 프로하스카가 처음이다.
ALPHA592 말러: 교향곡 7번
말러는 ‘비극적’인 6번 교향곡에 이어 ‘밤의 노래’라는 부제의 두 악장을 담은 교향곡 7번을 내놓았다. 인생의 단꿈이 사라지고, 밀려온 암흑의 공간에서 말러는 새로운 꿈을 꾼다. 외로움과 두려움으로 단련된 야경꾼과 보초병은 젊어서부터 그의 친구이다. 때로는 황당무계한 일장춘몽이 펼쳐지지만 궁극적으로 말러는 확고한 예술가 세상의 아침을 연다. 바그너가 유일한 희극 <뉘른베르크의 마이스터징거>에서 보여준 긍정적인 자신감이 5악장 피날레를 지배하는 것이다. 전곡 가운데 가장 홀대받는 7번을 말러 사이클의 첫 작품으로 빚은 알렉상드르 블로슈와 릴 국립 오케스트라의 기개가 잠시 밤을 맞은 듯하던 말러에 대한 세간의 관심에 여명을 비춘다.
A477 욤멜리: 레퀴엠
나폴리 태생 니콜로 욤멜리는 바로크와 고전주의 사이의 틀을 다진 작곡가이다. 당대 이름 높던 마르티니 신부가 모차르트 이전에 가르침을 줬던 욤멜리는 로마와 베네치아를 거쳐 빈에 도착했고, 뷔르템베르크 대공의 카펠마이스터가 되어 슈투트가르트에 정착한 뒤 눈부신 오페라를 쏟아냈다. 근래 많은 작품 다시 조명되며 그의 이름이 부각되는 가운데 대표작 <레퀴엠>을 최상의 팀이 녹음했다. <레퀴엠>은 모차르트가 태어나던 1756년 타계한 대공의 어머니를 추모하려고 썼다. 독일 바로크와 로코코 양식의 뼈대에 나폴리악파의 선명한 색채를 덧입힌 걸작이다. 바흐의 미사와 모차르트 레퀴엠 사이에 나온 기념비적인 종교음악이 마침내 제대로 인정받게 되었다.
*디아파종 데쿠베르트
RIC417 훔멜의 실내악 편곡으로 듣는 모차르트와 베토벤
베토벤의 부러움을 산 많지 않은 음악가 중 하나가 후배 훔멜이었다. 그가 어려서 모차르트에게 배웠기 때문이다. 하이든에 이어 에스테르하지 가문의 악장이 되었고, 바이마르에서 괴테와 일하던 훔멜은 뒷날 병석의 베토벤을 보살필 만큼 가까웠다.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 24번은 플루트와 피아노 트리오 앙상블로 편곡되었다. 하이든의 궁정악단은 교향곡을 이런 소편성으로 연주하곤 했다. 전례대로 훔멜은 베토벤의 첫 교향곡을 실내악 편곡했다. 훔멜 자신의 피아노 소나타에는 모차르트 <주피터 교향곡>의 4악장 푸가를 녹였다. 브뤼헤 경연 우승자 아우렐리아 비소반이 동료들과 함께 고전주의 3대 거장과 훔멜의 관계를 떼려야 뗄 수 없는 것으로 접합했다.
2020 EPRC 0034 유물들: 슈베르트, 스트라빈스키, 아우어바흐
2003년부터 앙상블을 이뤄온 벨기에 두오, 바이올리니스트 욜렌테 데 마이어와 피아니스트 니콜라스 켄데의 두 번째 앨범. 슈베르트의 <환상곡, D934>와 스트라빈스키의 <이탈리아 모음곡>, 1973년 소련 태생의 미국 작곡가 레나 아우어바흐의 <24개 전주곡>을 한데 모았다. 과거의 유물이 현대에 미치는 영향의 탐구라는 주제 의식은 무너진 이탈리아 궁전에서 찍은 표지 사진에도 잘 반영되었다. 페르골레시를 모델로 쓴 발레 <풀치넬라>를 다시 편곡한 스트라빈스키와, 자신의 가곡 ‘Sei mir gegrüsst’를 변주한 슈베르트에, 쇼팽과 쇼스타코비치를 돌아보는 아우어바흐까지 더해 최상급 실내악 프로그램을 완성한다.
AVI 8553017 둘이 떠나는 여행
그리스 바이올리니스트 조니안 일리아스 카데사와 영국인 최초로 ‘프라하의 봄’ 경연에서 우승한 첼리스트 바시티 헌터는 10년 전 하노버에서 알반 베르크 사중주단 멤버 하토 바이얼레에게 배우며 처음 만났다. ‘둘이 떠나는 여행’은 야니스 크세나키스의 <디플리 지야>를 시작으로 20세기 유럽 변방의 음악을 관통한다. 단순히 ‘두 악사’라는 뜻이지만, 지야는 ‘균형’이라는 고대 그리스 말에서 왔고, 결혼을 관장하는 여신 헤라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서너 악장의 코다이와 오네게르, 스칼코타스 이중주는 언뜻 소나타 양식에 기대는 듯하지만, 각기 헝가리 집시의 열정, 파리 신고전주의의 풍자, 베를린의 카바레 정서를 함축한다. 발칸의 용광로와 같은 실내악 앨범.
AVI 8553478 말러 교향곡 9번
헝가리 거장 아담 피셔의 말러 시리즈 여덟 번째 앨범. 아이젠슈타트 하이든 축제와 부다페스트 바그너 축제의 창설자이자 감독으로 열정적인 만년을 보내는 피셔. 그가 2015년 부임한 뒤셀도르프 악단과 말러 사이클에 매진 중이다. 9번은 번호 없는 <대지의 노래>이 이은 열 번째 교향곡이자, 말러의 마지막 완성작이다. 말러는 렌틀러 춤곡과 풍자적인 부를레스케 악장을 가운데 두고, 표현주의적 격정의 첫 악장과 압도적인 슬픔의 끝 악장으로 비단 자신의 삶뿐만 아니라 오스트리아 제국의 황혼을 뜨겁게 물들인다. 도나우 강변의 작곡가 말러와 지휘자 피셔가 라인강변 뒤셀도르프 교향악단을 마법과 같은 광휘로 몰고간다. 이제 이들에게 남은 도전은 교향곡 2번과 6번뿐이다.
AVI 8553016 베토벤 돌아보기, 헤르베르트 슈흐
루마니아 태생의 독일 피아니스트로 탄탄한 기량과 학구적인 선곡을 해온 헤르베르트 슈흐가 탄생 250주년을 보내는 베토벤을 탐구한다. 소나타 8번 ‘비창’과 16번, 17번 ‘템페스트’를 담은 앨범은 많지만, 슈흐는 여기에 1945년생 마이크 가슨의 <비창 변주곡>과 2009년 타계한 20세기 거장 앙리 푸쇠르의 존 케이지 추모곡, 1999년생 레안더 루프레히트의 소나타를 엮었다. 아방가르드 재즈 피아니스트 가슨은 말할 것도 없이 베토벤의 즉흥성을 대변한다. 푸쇠르의 음렬음악은 베토벤의 ‘비창’이 제목과 달리 엄격하게 통제된 곡임을 대변한다. 끝으로 루프레히트는, 빗자루로 천정을 쳐서 층간 불화에 대응했던 일화를 재현해, 베토벤을 ‘지금 여기’로 소환한다.
AVI 8553113 드보르자크: 시적인 음화
옛 소련 태생의 엘레나 바시키로바는 저명한 피아노 교수 드미트리 바시키로프의 딸이다. 그보다 기돈 크레머의 전처이자, 현재 다니엘 바렌보임의 아내로 더 잘 알려졌지만, 자신이 예루살렘 실내악 음악제와 베를린 유대 박물관 음악제를 주관하는 열혈 피아니스트이다. 그녀가 아비에서 내는 첫 독집에 드보르자크의 숨은 걸작을 담았다. 드보르자크는 1889년 여름휴가 때 열세 개의 슈만풍 소품을 쓰고서 스스로 음악가일 뿐만 아니라 시인이 되었다고 기뻐했다. ‘밤길’, ‘옛 성에서’, ‘농부의 발라드’, ‘세레나데’, ‘바카날’, ‘영웅의 무덤’, ‘성스러운 산’ 따위의 부제가 있었지만, ‘시적인 음화’라는 전곡 제목은 친구 에마누엘 흐발라가 붙여주었다. 진정 물감으로 연주하는 서정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