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라빈스키

종(種)의 최후

by 정준호

올해는 이고르 스트라빈스키(1882-1971)의 타계 50주기입니다.

2008년에 나왔던 졸저를 수정하고 보완해 다시 냈습니다.

을유문화사의 <현대 예술의 거장> 시리즈 가운데 유일한 국내 저작입니다.

초판의 부제는 '현대음악의 차르'였는데, '종(種)의 최후'라는 좀 더 도발적인 것으로 바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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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년 동안 값은 10퍼센트 올랐으니 거의 물가 상승분이지만, 분량은 150쪽 늘었네요.

초판 이후 그동안 단 1쇄도 더 내지 못 하다가 작년 말에야 구판이 다 팔렸습니다.

1500권이나 2000권을 찍었다면 1년에 100권 남짓 팔린 셈입니다.

다른 책에 비하면 미미하다고 하겠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국내에 어떤 스트라빈스키 관련 음반도 1500장을 팔지 못 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2015년에 도이치 그라모폰이 발매한 스트라빈스키 전집은 한정반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아직도 구할 수 있습니다.

이 귀한 전집의 구입을 고려하신다면 조금 더 기다려 보시는 편이 낫겠습니다.

오는 4월 스트라빈스키의 타계일에 즈음해 도이치 그라모폰이 새 전집을 내놓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기존과 똑같은 박스에 금테를 둘렀고(ㅋㅋ), 새로 발견된 초기 음악의 녹음을 비롯해 몇 개 트랙을 추가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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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니버설은 이 전집이 좀 머쓱했던지, 리카르도 샤이의 녹음만을 모은 선집을 새로 만들었습니다.

그보다는 워너 뮤직(옛 EMI와 Teldec의 합병)의 새 전집이 궁금합니다.

쇤베르크의 표현주의 화풍 같은 샤이 선집의 표지보다 워너의 서체가 스트라빈스키의 신고전주의 양식에 더 어울립니다.

아직까지 작곡가의 자작자연 전집(옛 CBS)을 보유한 소니에서 새 선집이 나온다는 소식은 없습니다.


이런 환경에서 졸저를 다시 내주는 을유문화사의 뚝심에 감사할 뿐입니다.

'종의 최후'가 무슨 의미인지 궁금한 분들을 위해 새로 더한 에필로그를 붙입니다.

나는 이 책의 도입부에서 ‘살아남은 것’이 클래식이라고 말했다. 고대 그리스는 클래식의 요람이었다. 르네상스는 말할 것도 없다. 그 뒤로도 뭔가 많았을 테지만, 희미하다. 모든 시대에 바흐나 모차르트가 등장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만일 매번 바흐나 모차르트가 나왔더라면 천재란 말이 무색할 것이다.

시간이 흘러 현재로부터 멀리 떨어져 갈수록 많은 사람이 잊힐 것이다. 잊히더라도 딱히 문제없을 사람부터 말이다. 빈곤한 내 교양으로 미뤄볼 때, 20세기에 활동한 음악가 가운데에는 스트라빈스키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가 가장 오래 빛날 존재다. 재미있게도 샤넬을 상징하는 날개를 단 몽트뢰의 스트라빈스키 동상 앞에는 《변용Metamorphosen》의 악보가 적힌 슈트라우스의 흉상이 서 있다. 둘은 전혀 반대 방향으로 내달렸기에 앞으로 누가 더 멀리 갈지 짐작하기는 어렵다. 이들이 속한 유파도 각각 ‘신고전주의’와 ‘후기 낭만주의’ 아닌가!

나머지 사람들은 빠르게 떨어지는 유성처럼 눈 깜짝할 사이에, 또는 재조차 찾기 힘든 모닥불처럼 서서히 잊힐 것이다. 이들의 빛이 스러질 때까지도 스트라빈스키와 슈트라우스는 여전히 제 자리를 지키며 20세기의 수준을 증명할 것이다. 그리고 스트라빈스키나 슈트라우스의 별이 사라지는 날에도 바흐나 모차르트, 베토벤은 여전히 빛날 것이다. 그들보다 더 빛을 발하는 음악가가 나올 수 있을까? 인류가 영존한다면 불가능하진 않겠지만, 먼 미래에 만들어진 음악이 우리가 아는 음악과 비슷하리란 법은 없다. 어느 시대나 본인이 클래식을 만들고 있다는 생각은 오만하거나 무지한 판단이다. 아니, 순진하고 근시안적이라는 편이 낫겠다.

어쩌면 현재 우리는 창작 예술 불모의 ‘신중세’에 돌입했는지 모른다. 다시 1천 년쯤 지나 오늘날 만들어진 모자란 것들이 다 스러지고 정말 중요한 유산만 남았을 때 ‘네오 르네상스’의 싹이 트고 ‘새 낭만주의’의 꽃이 필 것이다. 그 미래의 혁신은 스트라빈스키가 했듯이 음악과 율동을 동기화하고, 그렇게 탄생한 춤을 다시 영상으로 동기화하는 방식은 아닐지 모른다. 다만 어떤 양식의 음악이 탄생하더라도, 지금과 마찬가지로 그것을 창작하고 향유한 모두의 마음이 동기화하는 순간을 빚을 것이다. 그때는 인형들도 손발을 맨 끈을 끊고 자유를 얻을 것이다. 이 책 속의 수많은 이들이 꿈꿨던 것처럼.

이번 책에 추가된 내용은 아래 포스팅에 더 상세하게 올린 바 있습니다.

풍악이 없네요.

불새의 피날레 원곡인 러시아 민요 "대문 옆에 흔들리는 소나무"입니다.

모스크바에서 상트페테르부르크로 가는 열차에서 만든 것입니다.

함께 움직이는 보름달을 처음에는 해로 알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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