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의 완승

16세기 vs 19세기

by 정준호

A905 팔라댕: 류트 작품집 ARCANA 재발매 (아르카나 레이블 최초 발매 음반 A1)

밀라노에서 태어난 조반니 파올로 팔라디노는 프랑스로 건너가 장 폴 팔라댕으로 활동했다. 그는 리옹에 대장원과 포도밭을 가진 상인이기도 했다. 생몰연대는 확실치 않지만, 대략 1540-60년에 활동한 이력이 전한다. 문화를 숭상해 다빈치를 스승으로 모신 프랑수아 1세와 스코틀랜드의 메리 여왕을 위해 일했다는 사실이 그의 위상을 보여준다. 당대 경제 중심이던 리옹의 시인 기욤 드 라 테소니에르는 팔라댕의 류트가 오르페우스를 능가하고, 그의 리라는 아폴로보다 낫다고 예찬했다. 그런 솜씨를 재현한 사람이 외젠 페레이다. 류트 독주이지만 세속 가요 마드리갈의 반주임을 알아챌 수 있는 농밀한 서정미가 현대 감수성에 전혀 뒤지지 않는다.

다울랜드의 강력한 경쟁자: 기사 장 폴


A904 메룰로: 토카타, 리체르카, 칸초네 ARCANA 1997년 앨범 재발매

클라우디오 메를로(1533-1604)는 아드리안 빌레르트에서 조반니 가브리엘리에 이르는 16세기 베네치아 악파의 중심인물이다. 베네치아 산 마르코 대성당에는 두 대의 오르간이 있었다. 1557년 제2 오르가니스트가 된 메를로는 1566년에 제1 오르가니스트로 승격한다. 1584년 파르마로 떠나기 전까지 메를로는 말 그대로 ‘오르간의 대공’으로 건반의 모든 가능성을 열어보였다. 파비오 보니초니는 한 작품집 안의 여러 작품을 각기 오르간과 하프시코드로 나눠 연주해, 작곡가로서뿐만 아니라 출판자로서 메룰로가 이룬 업적을 보여준다. 메룰로의 토카타와 리체르카르는 150년 뒤 바흐와 비교해 손색없을 만큼 폭넓은 셈여림과 화려한 음의 팔레트를 담았다.

하프시코드도 좋고 오르간도 좋고...

CVS026 라모: <레 보레아드> 전곡 Chateau de Versailles 그라모폰 에디터스 초이스

1763년에 작곡된 <보레아드>는 장 필리프 라모의 마지막 오페라이다. 7년 전쟁의 종식을 축하하며 작곡했지만, 리허설 이후 정식으로 상연되었다는 기록이 남지 않았다. 라모 탄생 200주년을 기념한 1964년에 부활한 이 걸작은 1982년 존 엘리엇 가드너의 녹음 뒤로 진가를 인정받았다. 두 번째 전곡 녹음인 바츨라프 루크스와 콜레기움 1704의 베르사유 앨범은 그간의 목마름을 말끔히 해소한다. 북풍의 신 보레아드는 자신의 정혼자 알피스가 아바리스와 결혼하는 것에 화가 난다. 아폴론의 개입으로 아바리스가 보레아드 님프의 아들임이 밝혀져 갈등이 해소된다. 라모 특유의 끊이지 않는 멜로디와 바람을 부르고 물리는 놀라운 관현악에 3시간이 짧게 느껴진다.

네덜란드 위트레흐트 고음악 축제 실황

A901 베토벤: 하모니무지크(목관 앙상블) ARCANA 2006년 앨범 재발매

알프레도 베르나르디니가 이끄는 체피로 앙상블이 베토벤 목관 음악의 즐거움을 만끽하게 한다. 수록곡은 대부분 청년 베토벤이 고향 본을 떠날 무렵이나 빈에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작곡한 것이다. 사후 출판되어 번호가 엉뚱하게 부여된 탓에 간과되거나 오해받던 작품을 하나로 모았다. 첫 두 곡인 파르티아(Op. 103)와 론도(WoO. 25)는 사실상 한 곡인데 따로 출판되었고, 잇따르는 삼중주(Op. 87)도 같은 시기 곡이다. 모차르트와 하이든의 목관 합주를 완벽히 익힌 베토벤이 앞으로 쓸 관현악을 예고하는 멋진 출발선이다. 반면 1810년에 쓴 터키풍 행진곡과 폴로네즈, 에코세즈(WoO. 20-22)에서는 베토벤 중기의 군악과 이국 취향을 엿볼 수 있다.

19세기를 지배한 노래

ALPHA642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3번, 트리플 콘체르토

베토벤 탄생 250주년을 앞두고 시작된 마르틴 헴헨의 피아노 협주곡 전곡 녹음이 3번을 끝으로 완결되었다. 협주곡 2&5번, 1&4번을 묶은 데 이어 이번에는 삼중 협주곡과 쌍을 이뤘다. 베테랑 바이올리니스트 안트예 바이트하스와 헴헨의 아내인 첼리스트 마리 엘리자베트 헤커가 앙상블을 이뤘다. 같은 조성의 모차르트 협주곡 24번이 모델인 협주곡 3번에서 헴헨은 여전히 명징하고 군더더기 없으며, 앤드루 맨지도 베를린 도이치 심포니를 날 선 사운드로 이끌어 그를 돋보이게 한다. 절친한 친구들이 만드는 신명 나는 합주 협주곡은 화려한 편성에 비하면 평가가 인색한 편인 삼중 협주곡을 다시 보게 한다.

ALPHA633 말러: 대지의 노래

네덜란드의 피아니스트이자 지휘자, 작곡가 라인베르트 데 레우는 2020년 2월 세상을 떠났다. 그가 죽기 한 달 전 남긴 녹음이다. 말러의 <대지의 노래>는 교향곡 8번과 9번 사이에 작곡된 번호 없는 교향곡이며, 테너와 메조소프라노가 번갈아 여섯 개 악장을 노래한다. 당송 시대 고시를 한스 베트게가 독일어 번역한 가사이다. 인생의 호시절을 돌아보며 술과 고독을 벗 삼는 화자(話者)는 마지막 악장에서 돌아오지 못할 곳으로 떠나며 영원한 이별을 고한다. 데 레우는 2010년 자신이 직접 편곡한 실내악 편성을 지휘했다. 말러의 피아노 반주 버전과 쇤베르크의 미완성 실내악 버전을 잇는 데 레우의 편곡 덕에 성악은 극한으로 몰리지 않고 섬세한 시상을 해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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