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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준호 Nov 17. 2020

천국의 페트야

차이콥스키 별의 좌표

하늘나라의 작곡가들이 모였다. 모처럼 염색과 면도를 한 차이콥스키가 억울한 목소리로 말했다.
“‘비창’ 교향곡 3악장 끝나고 손뼉 좀 치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4악장이 얼마나 슬픈데 미리 산통 깨고...”
온몸에 황금을 뒤집어쓴 요한 슈트라우스 2세가 맞받았다.
“음악가는 박수로 먹고사는 법이야, 우리 아버지가 쓴 ‘라데츠키 행진곡’은 아예 박수 치며 듣잖아.”
장난감 블록으로 극장 모형을 만들던 바그너가 답했다.
“난 아예 박수가 안 나오게 끊지 않고 작곡했지. 한참 자다 깨면 무안해서 더 열광하거든.”
안경을 렌즈로 바꾼 슈베르트는 거의 울 것 같다.
“난 <겨울 나그네> 한번 연주하는데, 박수 스물네 번 받은 적 있어.”
스마트폰 음성인식 앱을 켜 둔 베토벤이 외친다.
“이 사람아, 난 박수를 받아도 들리지 않아”
모차르트가 당구를 치다 깔깔댄다.
“누가 음악을 들어? 난 발레에서 음악은 빼라는 명령도 받았다니까.”
하이든이 가발을 벗으며 답한다.
“그래서 난 귀족 나부랭이 깜짝 놀라게 했잖아, ‘놀람’ 교향곡으로.”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가 파이프오르간 앞에서 일어섰다.
“손뼉을 치다니, 신성모독이군!”  

내가 만든 농담이다. 그런데 너무 수준이 높아 유행하긴 힘들겠다. ‘음악 감상 예절’에 대한 만담 같지만, 내가 하려는 얘기는 그것이 아니다. 차이콥스키를 제외한 나머지 선배 작곡가는 모두 독일 사람이다. 음악사를 이끈 거장으로 꼽아 손색이 없다. 다른 나라 작곡가를 더해야 한다고 주장할지언정, 이들이 자격 미달이라고 할 사람은 없으리라. 독일은 서양 음악사의 절정기인 18세기부터 19세기를 지나는 동안 주역이랄 작곡가를 쏟아냈다. 그 틈바구니에 차이콥스키를 넣었다. 역시 전혀 어색하지 않다. 러시아 변방에서 태어난 차이콥스키가 어떻게 음악사의 중심에 우뚝 섰는지가 내 관심사이다.


우린 딱 듣고 척 보면 100년은 갈 것인지, 괜한 시간 낭비인지 안다. 100년 뒤에도 남아야 클래식, 고전이라 할 수 있다. 그냥 피아노 연주하고 오선지에 끄적이고 논문 쓴다고 클래식이 아니다. 겨우 고전에 기생하며 클래식 음악가를 자처하면 속물이다. 고전도 다 볼 시간이 없는 마당에, 전에 없던 것을 만들고 남이 가지 않은 길을 가는 일 아니면 관심 없다. 차이콥스키는 늘 말했다.

“이것이 내가 쓴 것 중 최고이다.”

고치를 뚫고 나갔는데 다시 고치였다. 아직도 그의 음악 태반은 깡그리 무시된다.

이번이 최고야, 아니야 이거야, 다 갖다 버려, 진짜 짱, 돌겠네!

나는 시시콜콜한 것을 좋아한다. 호메로스 신화와 아서 왕 궁전의 부정한 계보, 주절주절 수다쟁이 셰익스피어, 워털루로 들어가 하수구로 나온 빅토르 위고, 뉴욕주 원주민이던 마지막 모히칸 족과 국경을 거부했던 잉글리시 페이션트, 누구보다 마의 산으로 들어간 토마스 만을 좋아한다. 그들은 모두 쉬지 않고 엉뚱한 구석으로 독자를 이끌곤 한다. 그러나 그 엉뚱한 구석이야말로 늘 핵심 이야기를 만드는 데 꼭 필요한 실마리이다.


별이 가득한 하늘을 떠올려보자. 그 가운데 제일 희미한 하나쯤 없어도 당장은 별문제 없을지 모른다. 그런데 그 미미한 빛이 오래전 멀고 먼 한 은하계의 가장 중요한 별이라면? 그 은하계에 지구와 똑같은 조건의 행성이 있고, 그  행성에 인류와 소통 가능한 지능의 생명이 존재한다면? 또는 그 별을 지운 결과 지구와 그 별 사이의 시공간이 붕괴하고, 수많은  인과 관계가 무너져 결국 우주 전체의 모습을 바꿀 수도 있지 않을까? 차이콥스키를 만나는 이 책에 낯선 지도와 예상하지 못한  등장인물을 만나기를 기대하시라. 그 뜻밖의 만남이 결국, 차이콥스키를 이해하는 데에 꼭 필요한 시발점이거나 그로부터 비롯된 관계를  더욱 탄탄하고 돋보이도록 만들 고리이다.

별을 따러 날아가는 바쿨라의 엄마 솔로하

앞서 박수 논쟁을 벌인 작곡가 가운데 좋아하는 세 사람을 꼽으라면 바흐와 모차르트, 베토벤을  들겠다. 바흐는 나머지 전체를 합친 것보다 위대하다. 모차르트는 세상에 다른 차원을 끌어들인 듯하다. 베토벤은 선택받지 않고  스스로 쟁취한 영웅이 가능하다는 믿음을 준다. 다섯으로 늘리라면 두 자리를 놓고 더욱 치열하지만, 바그너와 차이콥스키를 꼽고  싶다. 무엇보다 이 둘은 창조 과정을 보여주었다. 바그너는 오페라 후발주자 독일에서 모든 것을 이루었다. 차이콥스키는 더 나아가  이탈리아 오페라와 독일 교향악이 양립하며 상호 보완할 수 있음을 증명했다. 바흐, 모차르트, 베토벤, 바그너, 네 사람에 대해서는  이미 나온 책이 많고 여전히 레드오션이다. 차이콥스키는 좋아하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그에 대해 아는 것은 적고, 꼭 알아야 할  것이 이미 아는 것보다 중요하다.


하이네켄, 나가서 마시고 있어!

차이콥스키가 가장 좋아한 선배는 모차르트이다. 좋은 사람을 따르게 마련이고, 그래서 정말 모차르트 이후 처음으로 오페라와 교향곡 모두 최고봉에 오른 작곡가가 되었다. 차이콥스키 이후로는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엄밀히 교향곡은 쓰지 않았지만) 정도가 있을 뿐이다. 오페라와 교향곡을 오갔다는 말은 의미심장하다. 오페라는 세상을 실체로 보려 한 이탈리아와 떼려야 뗄 수 없고, 교향곡은 관념적인 독일이 만든 창조물이다. 대개 작곡가는 어느 한쪽에 몰두했거나, 둘 다 했더라도 다른 쪽과 비교해 무게가 기운다. 베토벤의 유일한 오페라 <피델리오>를 아홉 개 교향곡과 바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슈베르트나 슈만의 오페라를 찾기도 힘들다.


말했듯이 두 가지 모두 완벽함에 도달했던 사람은 모차르트뿐이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했을까? 그에겐 국경과 장벽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나면서부터 여행했고, 여러 나라말에 능통했다. 그는 잉글리시 페이션트처럼 세계인(유럽에 불과했지만)이었고, 모히칸 족처럼 토착민이었다. 차이콥스키가 그랬다. 러시아 끄트머리에서 태어났지만, 불어와 독어를 먼저 배웠다. 평생 차이콥스키가 방문한 도시가 153곳이다. 동쪽 끝의 알라파옙스크부터 서쪽 끝 나이아가라 폭포까지 길 위에서 보낸 시간이 대부분이다. 세계인의 거점도 많지만, 생전 처음 듣는 시골구석도 그만큼 많다.

존 마틴 <융프라우의 만프레드> (1837)

나는 러시아 말을 배울 기회도 없었고, 이 글을 쓰기 전까지 러시아는 두 번 가본 것이 전부였다. 그러나 차이콥스키의 음악을 오래 들었고, 차이콥스키가 여행했던 베를린, 함부르크, 파리, 로마, 제네바와 같은 큰 도시는 물론이고, 봇킨스크, 클린, 다보스, 클라렝스, 포추올리와 같은 작은 마을도 돌아다녔다. 아쉽게도 차이콥스키에게 가장 중요한 터전이던 우크라이나의 많은 곳, 키예프와 하르코프, 오데사는 갈 수 없었다. 하물며 더 중요한 카멘카와 니지, 우소보 같은 시골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코로나 감염 이후는 말할 것도 없고, 이전에도 우크라이나는 여행 자제 지역이기에 러시아가 아닌 벨라루스나 터키를 통해 가야 했다. 어쩌면 크고 작은 전쟁과 감염이 일상이던 19세기에 그토록 돌아다닌 차이콥스키가 나보다 훨씬 용감했나 보다.

다행히 나에겐 차이콥스키에게 없던 인터넷이 있다. 마우스만 움직이고 클릭하는 것만으로 세계 어디든 가지 못할 곳이 없었다. 지도 밖이란 없는 손바닥 세상이 되었다. 무엇보다 ‘차이콥스키 리서치’가 없었더라면 이 책을 쓰는 데 훨씬 오랜 시간이 걸렸을, 아니 불가능했을 것이다. 나는 2006년에 오픈한 이 홈페이지의 자료가 꾸준히 느는 것을 지켜보았다. 브렛 랭스턴, 알렉산더 포즈난스키, 토마스 콜하제, 헨리 자야츠콥스키와 같은 각국 전문가의 힘으로 만든 차이콥스키 포털사이트이다. 누구나 들어가 보면 바로 체감할 수 있는 ‘차이콥스키 위키피디아’이다. 포즈난스키가 정리한 생애를 중심으로 완벽한 작품 목록과 해설, 평생 만난 사람과 찾아간 곳, 무엇보다 차이콥스키가 직접 쓴 편지와 일기, 평론 따위가 거미줄처럼 얽히고 하이퍼텍스트로 연결되어 어느 정도 영어 독해만 가능하면 누구나 차이콥스키 전문가가 될 수 있다. 물론 음악을 듣는 것은 별도의 노력이 필요하지만, 적어도 글로 된 자료는 다 소화하기 힘들 정도이다.


그러나 누구나 얻을 수 있고 먼저 본 사람이 임자라면 나는 굳이 애쓰지 않았을 것이다. 2015년에 한 광고를 녹음했다. 항공사 러시아 취항 광고였는데, 차이콥스키의 음악을 배경으로 세 개의 카피를 읽었다.     

“1881년 초연 당시, 음악에서 악취가 난다는 혹평을 들은 이 곡. 천재에 대한 질투였을까요? 차이콥스키의 바이올린 협주곡입니다.”

“애잔한 선율이 감성을 자극하는 차이콥스키의 비창. 러시아 여행 마지막 날 들으면 더욱 떠나기 싫어질지 모릅니다.”

“자작나무 숲과 광활한 바이칼 호수. 시베리아의 여름 여행을 계획하신다면 이 곡은 꼭 들고 가시는 게 어떨까요? 차이콥스키의 피아노 협주곡 1번입니다.”     

누구나 자기 목소리를 녹음해 들으면 어색하지만, 차이콥스키 음악과 어우러진 내 낭독은 다시 들어도 썩 괜찮다. 그만큼 그의 음악은 언제 들어도 마음속 깊은 곳을 울린다. 광고로 쓸 정도로 대중에게 거리감 없는 차이콥스키이다. 그러나 국내에 나온 몇 권의 차이콥스키 관련 책은 번역서이거나 개인적인 수상을 담은 것이 대부분이다. 무엇보다 차이콥스키의 가장 중요한 업적인 오페라와 발레에 대한 자료가 너무 적다. 차이콥스키의 발레라면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백조의 호수>와 <호두까기 인형>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반대로 오페라라면 진입장벽이 높다. <예브게니 오네긴>과 <스페이드의 여왕>을 아는 사람도 손에 꼽을 정도이지만, 안다 해도 나머지 오페라에 대해서는 대부분 무지하다.


최근 유럽 극장에서 가장 주목받는 차이콥스키 오페라는 마지막 작품 <욜란타>이다. 길이가 길지 않고 무대가 단출한 데다가 쉬운 동화이면서 내용도 깊다. 음악은 말할 나위 없다. 그러나 여전히 <예브게니 오네긴>과 <스페이드의 여왕> 사이 네 오페라를 아는 사람은 드물다. <오를레앙의 처녀>, <마제파>, <체레비츠키>(신발이라는 뜻이나 ‘황후의 신발’로 종종 번역한다), <차로데이카>(‘여자 마법사’나 ‘마녀’쯤으로 번역하면 정체불명이 된다)가 그것이다. <오를레앙의 처녀>가 잔 다르크라는 사실, <마제파>가 리스트도 다룬 코사크 족장이라는 사실 정도 알아도 차이콥스키의 오페라라면 아마 실패작이리라 지레짐작한다. 보긴커녕 들을 방법도 많지 않기 때문이다. 하물며 <체레비츠키>나 <차로데이카>를 안다면 대단한 전문가이다.

이 안에 다 있다

정말로 교향곡 4번과 6번 ‘비창’ 사이에, 바이올린 협주곡이나 <잠자는 숲속의 미녀>와 나란히 쓴 네 편의 오페라가 ‘졸작’일까? 혹시라도 졸작이라면 왜 그럴까 궁금하지 않은가? 차이콥스키가 가장 창작열 불타오르던 시절에 쓴 이런 오페라의 소개는 나의 의무이자 특권이다.


혹자는 불편할 동성애 문제도 언급할 것이다. 그러나 동성애와 무관하게 외로움은 차이콥스키만의 것이 아니다. 차이콥스키는 선입견과 달리 우울한 사람이 아니었다. 평생 150곳 넘는 도시를 여행하며 400명 가까운 지인과 5,300통 넘는 편지를 쓴(받은 것은 제외하고, 현재 남은 수만 그렇다) 사람이 우울증일 리 없다. 명랑하고 다정다감하고 유머 넘치는 차이콥스키를 그의 편지와 음악에서 만날 수 있다.


여러분이 차이콥스키의 유명 협주곡과 교향곡, 발레 선율을 좋아한다면 환영한다. 모차르트나 바그너, 비제의 팬도 반갑다. “나는 차이콥스키라고는 ‘피아노 협주곡’만 아는데”라는 분이라면 얼마나 행운인가? 아직도 감동할 일이 태산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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