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박 잊은 음반들

2021년 3월의 CD 리뷰

by 정준호

© Salvador Dalí, Fundació Gala-Salvador Dalí, Figueres, 2004 Photo © 2003 The Museum of Modern Art, New York


MEW1995 오케겜: 샹송 전곡집

플랑드르악파의 거장 요하네스 오케겜(1410/25-1497)은 15세기를 관통해 살았다. 세계사는 그의 음악이 말 그대로 새 시대 여명을 밝혔음을 보여준다. 비잔틴 제국의 멸망으로 학문이 이탈리아로 넘어왔고, 프랑스에서 백년전쟁을 끝낸 영국은 곧바로 장미전쟁에 돌입했다.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도착도 15세기였다. 미국 음악학자 제시 로딘이 이끄는 컷 서클 앙상블은 15-16세기 필사 악보 해석을 목적으로 2003년에 창단해 오늘에 이른다. 단체명은 박자와 템포를 뜻하는 기보법에서 가져왔다. 이들은 인간 중심의 시대, 르네상스의 도래를 알린 오케겜의 선구적인 비전을 담담하지만 단호하게 제시한다.

그라모폰 에디터스 초이스


A481 비우엘라와 건반악기를 위한 작품집 ARCANA

교황을 위시한 이탈리아 공국들과 프랑스는 신성로마 제국 황제 카를 5세의 스페인에 맞서 코냑 동맹을 맺었다. 카를 5세가 동맹을 궤멸시키고 밀라노를 접수하면서 이탈리아 르네상스를 쇠락하고 대신 스페인의 황금기가 시작된다. 뒤에 펠리페 2세가 될 황태자를 따라 밀라노에 온 안토니오 데 카베손은 스페인 건반의 일인자로, 그와 동료들의 음악이 이 음반을 채운다. 카베손이 황태자와 제노바에 도착했을 때 사람들은 ‘이 시대의 오르페우스’라고 예찬했다. 크로치와 마스카르디는 스페인에서 완성된 궁정 예술이 밀라노를 통해 앞으로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로 이식될 장관을 들려준다. 아르침볼도의 루돌프 2세 황제 초상이 표지로 쓰인 까닭이다.

디아파종 만점


ALPHA415 더블 - 두 대의 클라리넷을 위한 협주곡집 Alpha

시대를 대표하는 클라리넷 명인 메이어와 포르탈이 두 대의 클라리넷을 위한 음악을 가려 묶었다. 모차르트에게 적잖은 영향을 준 만하임 음악가 카를 슈타미츠의 협주곡으로 문을 연 두 사람은 텔레만이 클라리넷의 전신 샬뤼모를 위해 쓴 협주곡과 두오로 밑그림을 확대한다. 멘델스존의 두 협주용 소품은 베버 협주곡에 가린 또 다른 낭만주의 클라리넷 명곡이다(베버처럼 하인리히 베어를 위해 쓴 곡이다). 끝 곡 아들 바흐의 이중주와, 앨범 한가운데에 수록한 차이콥스키의 ‘가을 노래’(피아노 소품의 타케미츠의 편곡)는 클라리넷은 두 대일 때 완성이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ALPHA646 바니타스 - 베토벤, 슈베르트, 림 가곡집 Alpha

1972년 빈 태생 게오르크 니글의 첫 ‘리더아벤트(가곡의 밤)’ 앨범이다. 그는 테너라고 해도 믿을 만큼 밝은 바리톤 음색이다. 몬테베르디에서 쇤베르크까지 시공을 초월한 오페라의 주역으로 탄탄한 이력을 쌓은 니글이 빈 소년 합창단 시절부터 줄곧 자신의 음악적 모국어랄 수 있는 예술가곡으로 돌아왔다. 음반의 중심은 베토벤의 연가곡 <멀리 있는 연인에게>이며, 생존 거장 볼프강 림의 <뒤섞인 꿈>은 니글의 위촉작이다. 그 앞뒤로 슈베르트 애창곡을 가려 불렀다. 음반 제목 ‘허영’은 이런 값진 선곡에 대한 찬사인 동시에 실연과 달리 녹음이 줄 수 있는 완벽주의에 대한 예찬이다. 최고의 예술가곡 앨범이다.

그라모폰 에디터스 초이스, 텔레라마 만점


FUG764 베를리오즈: 환상 교향곡, 안드리센: 고통의 거울 Fuga Libera

베를리오즈의 <환상 교향곡> 때문에 음반을 산 사람에게 첫 곡은 덤 이상의 기쁨을 줄 것이다. 네덜란드의 안드리센 집안은 20세기 들어 여러 음악가를 배출했다. 작곡가이자 오르가니스트 헨리크(1892-1981)가 중심인물이다. 드뷔시와 독일 후기 낭만주의가 중첩된 그의 연가곡 <고통의 거울>은 그리스도의 수난을 그린 앙리 제옹의 시에 붙인 것이다. 크리스티아네 스토틴의 절창으로 듣는 그의 곡은 프랑스 가곡의 계보에 한 자리를 차지할 만하다. 실연당한 예술가의 환각을 총천연색으로 물들인 드미트리 리스와 남네덜란드 필하모닉의 <환상 교향곡>도 흠잡을 데 없다.


LBM028 브람스: 첼로 소나타 1번 & 2번 B Records

브람스 첼로 소나타의 표현의 폭과 내용의 깊이는 그가 쓴 교향악에 필적하고, 기교 또한 지독히 어렵다. 몇몇 거장의 연주만이 빛을 잃지 않고 회자될 뿐이다. 다른 브람스 작품에 비하면 첼로 소나타의 선택폭은 매우 제한적이다. 여기에 프랑스 중견 첼리스트 프랑수아 살퀴가 도전장을 내밀었다. 살퀴는 폴 토르틀리에와 모리스 장드롱, 피에르 푸르니에라는 프랑스 첼로 악파 거장의 이름을 건 모든 상과 콩쿠르를 석권했다. 베토벤의 소나타를 함께 녹음했던 에리크 르 사주와, 브람스가 20여 년의 간극을 두고 쓴 실내악의 절경을 압도적인 조각으로 빚어낸다.


LBM029 브람스: 피아노 트리오 전곡 B Records

에리크 르 사주와 동료들은 브람스 실내악 제8집에서 피아노 트리오 전 세 곡을 묶었다. 각기 첼로 소나타와 바이올린 소나타를, 또 함께 피아노 4중주와 5중주를 녹음했던 프랑수아 살퀴와 피에르 푸셰느레가 브람스 실내악의 가장 중요한 관문이랄 수 있는 피아노 트리오로 힘을 합쳤다. 브람스의 트리오는 베토벤과 슈베르트의 뿌리를 잇는 동시에 그의 초기와 만년의 작품 세계를 연결하는 중요한 고리이기도 하다. 세 악기로 응축한 피아노 협주곡과 같은 이 곡들에서 이들 앙상블은 거대한 파고를 일으켜 듣는 이의 감동을 감당할 수 있는 가장 멀리까지 밀고 간다.


ALPHA580 밝혀진 기쁨 Alpha

믿고 듣는 바이올리니스트 코파친스카야가 버르토크의 영향을 받은 20/21세기 음악을 연주했다. 베레스는 버르토크와 코다이에게 배우고 리게티와 쿠르타크를 길러낸 헝가리 현대 음악의 가교이다. 그의 <무지카 콘체르탄테>는 듣는 이를 타협하지 않는 강렬한 긴장감으로 옭아맨다. 남미의 히나스테라는 버르토크풍 현악 사중주 2번을 <현을 위한 협주곡>으로 개작했다. 민속과 풍광이 만화경처럼 어우러진다. 달리의 초현실적인 그림 <밝혀진 기쁨>은 프란시스 콜의 동명 작품에서 사실극이 된다. 첼리스트 솔 가베타의 가세로 코파친스카야가 히말라야 등정과 같았다고 말한 이번 프로젝트가 완성된다.

그라모폰 에디터스 초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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