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7월의 CD 리뷰
르네상스를 폭넓게 이해함에 따라 바로크 음악을 완성한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마저 독일 음악의 태두라기보다는 이탈리아 양식을 독일에 접목한 이식자라는 확신이 커간다. 이 음반 또한 칸타타라는 바흐의 전매 양식이 그 이전 이탈리아 마드리갈과 루터 성가가 결합한 결과임을 재확인해준다. 베네치아의 몬테베르디가 하인리히 샤이데만, 안드레아스 하머슈미트, 요한 로젠뮐러, 디트리히 북스테후데로 전해졌고, 거기에 비발디로 대표되는 베네치아 기악이 더해져 바흐의 칸타타가 될 것이다. 소프라노 독창을 반주하는 클레마티스 앙상블이 담담하지만 단호하게 이를 증명한다.
앙투안 포르크레는 마랭 마레에 이어 루이 14세의 베르사유 궁전에서 활동했던 비올 연주자이다. 둘의 연주를 모두 들었던 위베르 르 블랑은 마레를 천사에, 포르크레를 악마에 비유했다. 아들 음반의 해설을 거든 류트 거장 롤프 리슬레반트는 이들을 빛과 어둠이라 보았다. 앙드레 리슬레반트 여기에 왕에게 류트를 가르쳤던 로베르 드 비세의 곡을 더해 세 ‘모자이크’ 모음곡을 만들었다. <포르크레 언체인드>는 동전의 양면과 같은 이탈리아와 프랑스, 발현악기와 찰현악기,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탐구하는 유희이다. 포르크레의 ‘만돌린’에서 ‘환희의 송가’를 예견하는 놀라움이란!
디아파종 황금상
디종에서 태어나 어려서 이탈리아에 다녀왔고, 랑그도크와 프로방스를 돌며 다양한 삶을 엿본 장 필리프 라모는 극작가 몰리에르의 해학과 풍자를 음악으로 구현한 천재였다. 그의 막내 동생 클로드와 아들 클로드 프랑수아도 음악가가 되었고, 두 조카 장 프랑수아와 라자르도 마찬가지였다. 19세기 말 생상스가 발 벗고 나서기까지 오페라는 잊혔지만, 라모의 건반 음악은 많은 후배에게 영감을 주었고, 드뷔시는 라모의 창작 원천이 하모니에 있음을 간파했다. 프랑스와 미국 피가 섞인 쥐스탱 테일러가 라모 일가의 번뜩이는 악상부터 드뷔시의 매혹적인 헌정까지 넋을 잃게 한다.
쇼크 드 클라시카, 텔레라마 만점
페르골레시의 <스타바트 마테르>는 해가 갈수록 나폴리악파의 정수이자 바로크 음악의 돌파구처럼 인식되고 있다. 종교음악에 깃들인 관능미가 미켈란젤로의 <피에타>에 필적할 만큼 강렬하기 때문이다. 레 자르 플로리상에서 하프시코드와 성악 지도를 맡던 마리 판 린이 직접 루아얄 오페라 오케스트라를 이끌며 두 여성 성악가나 소프라노와 카운터테너가 나눠 맡던 이 곡을 당대처럼 두 남성이 소화하게 한다. 그녀는 비발디의 모테트와 <스타바트 마테르>, 협주곡을 함께 연주하며 40Hz 이상 차이 나던 나폴리와 베네치아의 연주 환경을 절충한다. 타협 없는 조율은 완벽주의자만의 덕목이다.
2021년은 독일 수도 베를린 젠다르멘마르크트 광장에 콘체르트하우스가 세워진 지 200주년이 되는 해이다. K. F. 싱켈이 세운 고전 양식 건물은 괴테의 <타우리스의 이피게니에> 프롤로그로 개관하고 3주 뒤 베버의 <마탄의 사수>를 초연했다. 엿새 뒤 피아노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콘체르트슈튀크>도 첫선 보였다. 제2차 세계대전으로 폐허가 된 극장을 1984년 재건했을 때 베버는 베토벤과 나란히 음악당에 헌액 되었다. 콘체르트하우스 악단과 에셴바흐가 연이어 상주 음악가로 위촉된 명인들과 ‘베버 프로그램’을 마련한 것은 리스트와 바그너를 예고한 선구자에게 지극히 합당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