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라바조와 바로크의 시작
나는 카라바조의 두 가지 점에 주목한다. 먼저 그의 그림이 주는 극적인 느낌이다. 카라바조는 ‘활인화Tableau vivant’로 가장 많이 묘사되는 작가이다. 움직이는 그림이라는 뜻의 활인화란 회화의 내용을 실제로 재현하는 것이다. 원래 모델을 보고 그린 것이니 다시 그 모델이 되어 보는 활인화는 일종의 ‘환원’이자 ‘고증’이다. 그만큼 카라바조는 연극의 한 장면 같다. 무엇이 그의 그림을 이렇게 극적으로 만드는가? 그것은 바로, 빛이다. 카라바조는 자신의 그림에 한 줄기 빛을 드리우기 위해 배경을 어둡거나 아예 검게 만들었다. 데릭 자먼의 영화 <카라바조>는 온통 화면을 검게 칠하며 시작한다.
카라바조의 나르키소스가 얼굴을 비추는 거울 같은 수면도 상식과 달리 칠흑빛이다. 밝아서가 아니라 어두워야 빛이 더욱 돋보이는 사실을 이해한 것이다. 강조하려는 인물이나 사건에 초점을 맞추는 카라바조의 능력은 같은 바로크 시대 음악에서도 두드러진다. 이제 르네상스의 두꺼운 다성음악 대신 선명한 선율이 강조된다. 후기로 가면 그 선율을 더 돋보이게 하려고 레치타티보와 아리아, 또는 리피에노와 콘체르티노 같은 형식과 양식상의 장치들이 자리 잡는다. 각각을 어둠과 빛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확실히 따라 부를 수 있다.
두 번째로 주목하는 것은 카라바조의 삶이다. 그는 요즘으로 말하면 구제 불능의 전과자였다. 결투 끝에 살인을 저지른 끝에 도피 행각을 벌였고, 그 와중에도 걸핏하면 폭력 사건에 연루되었다. 나폴리로, 몰타로, 시칠리아로 도망 다니던 그는 결국, 로마로 돌아오던 중에 자신이 죽인 라누치오 톰마소니 집안의 복수로 객사했다.
카라바조의 삶이 거칠어 보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이해 못 할 정도는 아니었다. 앞서 본 벤베누토 첼리니도 결투 끝에 벌인 살인을 사면받기도 했고, 앞으로 만날 작곡가 알레산드로 스트라델라는 횡령에 남의 연인과 도망치다 살해되었다. 희대의 난봉꾼 돈 환과 카사노바가 명사이던 시절이다. 그러나 트리엔트 공의회로 결투가 파문에 처하는 죄악이 된 때라는 사실이 역설적이기도 하다.
석굴 암자에 드리우는 오묘한 빛이 부처의 자비로움을 자아내듯이, 판테온 돔 위에서 쏟아지는 햇살은 만신에게 바친 신전을 더할 나위 없이 거룩하게 한다. 판테온 근처 프랑스 생 루이 성당은 프랑스의 앙리 2세와 결혼한 카트린 드 메디치가 로마에 지은 교회이다. 카라바조가 성당을 위해 마테오 성인의 행적을 세 폭으로 그린 것이 그의 나이 채 서른도 되기 전이었다. 왼쪽부터 <마테오의 부름>, <마태오의 깨달음>, <마태오의 순교>가 걸려 있다.
카라바조의 출세작 <마태오의 부름>은 그의 그림 가운데 묘사가 가장 극적이다. 창문에서 비치기 시작한 빛은 마치 그 아래 그리스도가 내뿜는 후광과 같다. 그리스도가 손을 뻗어 가리키는 사람이 마태오일 것이다. 오랫동안 수염 난 가운데 노인이라고 생각되었지만, 점차 고개를 숙이고 돈을 세고 있는 젊은이가 세리(稅吏) 마태오일 것이라는 해석이 힘을 얻었다. 중세 성인전 『황금 전설』이 마태오의 덕목 가운데 첫째로 꼽은 것은 ‘신속한 순종’이다. 그는 그리스도의 부름을 듣고 좌우 재지 않고 바로 제자가 되었다. 하늘나라와 가장 멀 것 같았던 마태오가 그리스도의 최측근이 되는 순간을 카라바조보다 극적으로 그릴 수는 없을 것이다.
<골리앗의 머리를 든 다윗> 때도 그랬듯이 이번에도 오를란도 디 라소의 <마태 수난곡>을 떠올린다. <다윗 참회 시편>과 비슷한 시기인 1575년에 출판되었다. 뒷날 독일의 쉬츠와 바흐가 작곡할 <마태 수난곡>에 비하면 중요도가 크지 않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모름지기 처음 발을 떼기가 어려운 것이고 시작이 반인 법이다. 라소가 이런 시도를 처음 한 사람도 아니지만, 확실히 그의 매만짐은 놀랍다. 음악은 ‘최후의 만찬’으로부터 십자가에서 숨을 거두기까지 그리스도의 행적을 마태오 사도의 입으로 전한다. 복음사가는 테너, 예수는 바리톤이 맡는다. 그런데 선율이 없이 거의 낭송하는 단조로운 가락이다. 반면, 노래하는 쪽은 뜻밖에 주변 인물인 유다와 빌라도, 대사제 가야파이다. 심지어 이들은 독창이 아닌 중창이 부른다. 제자들과 십자가형을 요구하는 유대 군중, 형 집행 병사들은 합창이다. 「마태오 복음」 26장의 75개 절과 27장의 54절까지 총 102개 구절 가운데 노래, 곧 중창과 합창으로 부르는 부분은 아래와 같다.
“백성이 소동을 일으킬지 모르니 축제 기간만은 피하자.”
“이렇게 낭비를 하다니! 이것을 팔면 많은 돈을 받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줄 수 있을 텐데.”
“내가 당신들에게 예수를 넘겨주면 그 값으로 얼마를 주겠소?”
“주님, 저는 아니겠지요?”
“선생님, 저는 아니지요?”
“비록 모든 사람이 주님을 버릴지라도 저는 결코 주님을 버리지 않겠습니다.”
“저는 주님과 함께 죽는 한이 있더라도 결코 주님을 모른다고는 하지 않겠습니다.”
“내가 입맞추는 사람이 바로 그 사람이니 붙잡아라.”
“선생님, 안녕하십니까?”
“이 사람이 하느님의 성전을 헐었다가 사흘 만에 다시 세울 수 있다고 말하였습니다.”
“이 사람들이 그대에게 이렇게 불리한 증언을 하는데 할 말이 없는가?”
“내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이름으로 명령하니 분명히 대답하여라. 그대가 과연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인가?”
“이 사람이 이렇게 하느님을 모독했으니 이 이상 무슨 증거가 필요하겠소? 여러분은 방금 하느님을 모독하는 말을 듣지 않았소? 자, 어떻게 했으면 좋겠소?”
“사형에 처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야, 너를 때린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맞혀 보아라.”
“당신도 저 갈릴래아 사람 예수와 함께 다니던 사람이군요.”
“무슨 소린지 나는 모르겠소.”
“이 사람은 나자렛의 예수와 함께 다니던 사람이오.”
“나는 그 사람을 알지 못하오.”
“틀림없이 당신도 그들과 한 패요. 당신의 말씨만 들어도 알 수 있소.”
“나는 그 사람을 알지 못하오.”
“내가 죄없는 사람을 배반하여 그의 피를 흘리게 하였으니 나는 죄인입니다.”
“우리가 알 바 아니다. 그대가 알아서 처리하여라.”
“이것은 피 값이니 헌금궤에 넣어서는 안 되겠소.”
“네가 유다인의 왕인가?”
“사람들이 저렇게 여러 가지 죄목을 들어서 고발하고 있는데 그 말이 들리지 않느냐?”
“누구를 놓아주면 좋겠느냐? 바라빠라는 예수냐? 그리스도라는 예수냐?”
“당신은 그 무죄한 사람의 일에 관여하지 마십시오. 간밤에 저는 그 사람의 일로 꿈자리가 몹시 사나웠습니다.”
“이 두 사람 중에서 누구를 놓아달라는 말이냐?”
“바라빠요.”
“그리스도라는 예수는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
“십자가에 못박으시오!”
“도대체 그 사람의 잘못이 무엇이냐?”
“십자가에 못박으시오!”
“너희가 맡아서 처리하여라. 나는 이 사람의 피에 대해서는 책임이 없다.”
“그 사람의 피에 대한 책임은 우리와 우리 자손들이 지겠습니다.”
“유다인의 왕 만세!”
“성전을 헐고 사흘이면 다시 짓는다던 자야, 네 목숨이나 건져라. 네가 정말 하느님의 아들이거든, 어서 십자가에서 내려와 보아라.”
“남은 살리면서 자기는 못 살리는구나. 저 사람이 이스라엘의 왕이래. 십자가에서 한번 내려와 보시지. 그러면 우리가 믿고 말고. 저 사람이 하느님을 믿고 또 제가 하느님의 아들입네 했으니 하느님이 원하시면 어디 살려보시라지.”
“저 사람이 엘리야를 부르고 있다.”
“그만두시오. 엘리야가 와서 그를 구해 주나 봅시다.”
“이 사람이야말로 정말 하느님의 아들이었구나!”
바흐의 그 유명한 수난곡도 복음사가는 레치타티보로 부를 뿐이지만, 그리스도의 음성을 음악으로 듣고 싶던 청자는 라소가 그 역시 낭송으로만 처리했음을 듣고 허탈할 것이다. 라소는 두 중심인물에 선율을 주지 않고 오히려 주변부를 밝힘으로써 단조롭게 반복되는 마테오와 그리스도의 낭송에 익숙하게 만든다.
라소는 정말 고집스럽게 이 원칙을 고수한다. 중심인물에 조명을 비추는 카라바조가 할 작업과 반대이지만, 음악이 미사를 주도할지언정 복음보다 앞서지는 못했을 라소의 시대를 떠올리면 참으로 무릎을 칠 일이다. 라소는 르네상스의 마지막 거장이면서 이렇게 바로크 예술을 예고한다. 바흐에 이르면 음악이 복음을 전도하리니! 라소의 <마태 수난곡>을 담은 두 음반 모두 뒤에 이어서 <베드로의 눈물>의 한 구절을 더했다. 그가 언젠가 더욱 내밀한 속죄의 이야기를 쓰리라 정해졌음을 암시한다.
헬렌 랭던의 『카라바조: 생애Caravaggio: A life, 1998』는 악동 화가의 삶을 파헤친 역저이다(소설 『다빈치 코드』의 주인공으로 톰 행크스가 열연한 르네상스 역사가 이름이 랭던이라는 사실은 우연이 아니리라). 랭던은 카라바조가 그린 성화의 배경이 로마나 나폴리의 뒷골목이며, 개신교의 세력 확장으로 위협을 느끼던 가톨릭교회의 속마음을 드러냈다고 정확히 지적했다. 그러나 개신교보다 더 위협적인 것은 어쩌면 음악이었는지도 모른다.
보르게세 정원의 서쪽 끝에 자리한 핀초 언덕 테라스에서 포폴로 광장을 내려다본다. 포폴로는 국민, 인민이라는 뜻이다. 람세스 2세의 오벨리스크를 중앙에 두고 많은 사람이 오간다. 고대부터 이곳은 로마의 북쪽에서 오는 사람들이 처음 발을 딛는 곳이다. 크리스티나 여왕도, 마르틴 루터도, 어쩌면 전설의 탄호이저도 플라미니오 문을 통해 로마에 입성했을 것이다. 문에 들어서면 왼쪽에 산타 마리아 델 포폴로 교회가 있다. 1600년을 앞두고 교황은 대희년을 선포했다. 수많은 유럽의 기독교도가 속죄의 성지 순례를 위해 로마에 올 것이었다. 처음 도착한 그들을 맞을 산타 마리아 델 포폴로 성당에 그림이 필요했다. 성 루이 프랑스 교회의 성화로 명성을 얻은 카라바조가 이 중요한 작업을 맡았다.
성당 안 체라시 예배당에 묵직한 그림들이 걸려 있다. 중앙은 안니발레 카라치가 그린 <성모 승천>이고 좌우는 차례로 카라바조의 <십자가에 매달리는 성 베드로>와 <다마스쿠스로 가는 길에 개종한 성 바울로>이다. 교황의 측근이었던 체라시 주교는 당대 로마 제일의 두 화가에게 이 그림들을 위촉했다. 카라치도 뛰어났지만 이제 카라바조를 넘어설 사람은 없었다. 카라바조는 어둠에 빛을 끌어들이는 신기를 다시 보여준다.
베드로는 감히 그리스도와 같은 식으로 죽을 수 없다고 해서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렸다. <그리스도의 입관>에 나온 니고데모처럼 이번에도 베드로의 시선은 그림 밖을 향한다. 건너편 그림에서 다마스쿠스로 가는 길에 말에서 떨어진 로마인 사울은 깨달음을 얻고 이름을 바울로라 바꾼 뒤 기독교로 개종한다. 물론 카라바조는 첫 교황의 순교와, 『신약성서』의 절반을 채우는 서신을 쓴 바울로 성인이 어떻게 기독교인이 되었는지 보여주고자 했을 것이다. 그러나 내 생각에 베드로는 마치 말에서 떨어진 바울로 성인을 바라보는 듯하다. “여보게 괜찮은가?” 이는 사실과 다르다. 베드로와 바울로는 한날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히려 시간의 차원을 뚫는 측은지심(惻隱之心)이 더욱 계시적으로 보이게 한다.
베드로 성인은 이미 르네상스 시대부터 여러 음악에 직간접으로 등장하지만, 사도 바울로의 음악은 멀리 낭만주의 시대에나 만날 수 있다. 멘델스존의 오라토리오 <파울루스>가 다마스쿠스로 가는 길에 회심한 사울(로마인 바울로의 히브리 이름)을 그리며, 브람스는 <독일 레퀴엠>과 <네 개의 엄숙한 노래>에 코린트인들에게 보내는 사랑의 가르침을 썼다. 왜 그렇게 오래 기다려야 했을까? 이탈리아의 거장들은 왜 바울로의 삶과 가르침을 음악으로 쓰지 않았을까? 곰곰이 생각하던 나는 모든 종교음악 작곡가들이 바울로의 가르침을 따랐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교회음악은 전부 바울로에게 바친 것이다. 무슨 말인지 알아보러 콜로세움으로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