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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준호 Sep 07. 2021

십자가의 길

국경 없는 음악대

국경 없는 음악대

해마다 수난절이면 교황이 콜로세움 앞 광장에서 ‘십자가의 길Via crucis’ 미사를 집전한다. 그리스도의 사형선고부터 무덤에 묻힐 때까지의 고행을 열네 개 기도로 재현한다. 교회 안에 글을 모르는 백성을 위해 그림이나 부조를 두르고 속죄의 기도를 올리게 한 전통을 옥외로 옮긴 것이다.

<십자가의 길> 가운데 가장 유명한 음악은 프란츠 리스트가 썼다. 젊어서는 쇼팽과 함께 유럽을 호령하는 피아니스트로, 장년에는 괴테의 도시 바이마르의 음악감독으로 이름 높던 리스트는 40대 말에 접어든 1859년 로마에 온다. 연인 카롤리네 자인 비트겐슈타인 공비의 오랜 이혼 소송에 지친 그는 성직에 투신한다. 로마에서 10년을 보내며 그는 종교적인 작품을 쏟아내고 지휘한다. 오라토리오 <그리스도>와 <십자가의 길>이 대표적이다. 

이 곡에 평생 몰두한 라인베르트 데 레우의 음반

<십자가의 길>은 원래 합창과 독창, 오르간을 위한 것이나, 건반 독주만으로 연주하기도 한다. 그 가운데 여섯 번째 곡은 한스 레오 하슬러의 코랄 ‘아, 피와 상처로 가득하신 머리O Haupt voll Blut und Wunden’을 썼다. 바흐도 이 코랄을 <마태 수난곡>에 여러 차례 넣었다. 리스트의 차례는 아래와 같다.     


서주: 왕의 휘장이 앞장 서니 (베난티우스 포르투나투스의 시)

제1처 사형 선고. (마태오 복음 27:24)

제2처 십자가를 짐. “아, 십자가여!”

제3처 기력이 떨어져 넘어짐. (<슬픔의 성모> 가운데)

제4처 성모를 만남. (오르간 독주)

제5처 시몬이 대신 십자가를 짐. (오르간 독주)

제6처 베로니카, 수건으로 얼굴을 닦아줌. (파울 게르하르트의 시)

제7처 기력이 다해 두 번째 넘어짐. (제3처와 같음)

제8처 예루살렘 부인들을 위로함. (루가 복음 23:28)

제9처 세 번째 넘어짐. (제3처와 같음)

제10처 옷이 벗겨짐. (오르간 독주)

제11처 십자가에 못박힘. “십자가에 못박으시오!”

제12처 십자가 위에서 운명. (요한 리스트의 시)

제13처 제자들이 시신을 십자가에서 내림. (오르간 독주)

제14처 무덤에 안장. (왕의 휘장이 앞장 서니)     


합창과 독창, 독주라는 독특한 구성 외에 또 한 가지, 라틴어와 독일어를 섞어 썼다는 점이 특이하다. 오를란도나 모차르트가 작곡할 때 언어를 가리지 않았듯이 리스트도 유럽인이었다. 헝가리에서 태어났고, 로마에 오기까지 유럽 끝에서 끝까지 국경을 몰랐던 그이다. 이는 그리스도와 그의 제자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로마인이기 전에 유대인이었다. 예수는 어린 시절을 이집트에서 보냈다. 최소 세 개 언어를 말했을 것이다. 베드로는 히브리 어부였지만, 생애 후반을 로마에서 보냈다. 바울로는 오늘날 터키의 타르수스에서 태어났으며 개심한 뒤로 로마제국 일대에 포교했다. 그는 각 지방 말과 풍습에 통달했다. 에티오피아까지 선교한 마태오의 말이 모든 의문을 설명해 준다. 어떻게 말은 물론 에티오피아 방언까지 속속들이 아느냐는 물음에 마태오는 ‘성령’ 덕이라고 간단히 답했다.

성령의 힘일 뿐인데 왜 이러나?

심지어 리스트의 음악은 국경뿐만 아니라 시간도 초월한다. 낭만주의 시대에 선 리스트가 끊임없이 중세를 돌아보고 미래를 향해 손짓한다. 중세와 현대가 공존하는 음악에서 카라바조의 베드로와 바오로 사이 차원을 넘어선 대화가 떠오른다. 베드로가 거꾸로 십자가에 매달린 같은 날 바오로도 로마에 화재를 일으켰다는 죄목으로 네로 황제에 의해 참수형 당했다. 베드로의 머리에 주마등처럼 이런 생각이 스쳤을까?

“자네 그날 말에서 떨어져 오늘 이런 일을 당하는군! 그러나 하늘에서 함께 보상받으세. 내게 천국의 열쇠가 있다네.”
4차원의 대화

앞서 사도 바울로가 많은 복음서를 남겼지만, 구약이나 공관복음에 비하면 음악으로 작곡되는 일이 적다고 했다. 그러나 바울로는 서신 곳곳에 음악을 언급했다. 그는 그리스도의 말씀을 이웃과 세상에 전하라며 찬양은 물론이고 손에 손잡고 춤추기까지 권했다. 아폴론과 디오니소스의 나라 그리스 에페소스인들에게 보낸 구절을 보자.

“성시와 찬송가와 영가를 모두 같이 부르십시오. 그리고 진정한 마음으로 노래 불러 주님을 찬양하십시오.” (5:19)

마치 리스트에게 들려주는 설교 같다.


크리스티나 플루하르가 이끄는 아르페자타 앙상블은 바울로의 가르침을 더욱 적극적으로 이해했다. 이들의 앨범 <십자가의 길>은 지중해 음악 모음집이다. 열여덟 개 트랙은 3부로 나뉜다.

      

1. 마리아 – 환영

하인리히 이그나츠 프란츠 폰 비버: 로사리오 소나타 - ‘수태고지’의 전주곡

작가 미상: 나폴리풍 아기 예수를 위한 자장가

외부 링크만 허용하네, 들어보세요

코르시카 속요: 마리아

타르퀴니오 메룰라: 자장가풍의 칸초네타 ‘이제 잘 시간이야’

하인리히 이그나츠 프란츠 폰 비버: 로사리오 소나타 - ‘아리아’

     

2. 그리스도의 죽음

조반니 레그렌치: 오페라 <천지분할> 발췌

코르시카 성가: ‘달콤한 피’

베네데토 페라리: ‘이 찌르는 가시’

루이지 로시: 오라토리오 <회개하는 죄인> 가운데 죽음의 청원

조반니 펠리체 산체스: <스타바트 마테르>

소프라노 누리아 리알의 노래

마우리치오 카차티 & 조반니 안토니오 판돌피 메알리: 파사칼리아

코르시카 민요: 라폴리아풍의 ‘예수의 비탄’  

   

3. 천국의 인사

타르퀴니오 메룰라: 치아코나

클라우디오 몬테베르디: ‘라우다테 도미눔’

로렌초 알레그리: 카나리오

춤의 향연

작가 미상: 천국과 지옥의 치아코나

엔초 그라냐니엘로: ‘이런 창조’     


선곡된 작곡가들은 바로 카라바조가 활동했던 17세기의 인물들이다. 거기에 코르시카 중창단 바르바라 푸르투나의 민요가 자연히 춤을 부른다. ‘천국과 지옥의 치아코나’에서 카운터테너 필리프 자루스키는 두 기악 주자와 대화한다.     

천국과 지옥의 치아코나, 안 보면 후회!

이 천국은 얼마나 좋은가

낙원의 들판에 사는 우리

하느님의 얼굴도 뵙고

이 천국은 얼마나 좋은가

이 천국은 얼마나 좋은가

     

이 지옥은 얼마나 끔찍한가

영원한 불길에 타는 우리

하느님은 뵐 길이 없고

이 지옥은 얼마나 끔찍한가

이 지옥은 얼마나 끔찍한가

     

얼음, 바람, 더위 걱정 없는 이곳

날씨는 언제나 온화하네

비바람, 번개도 없으니

언제나 평화로운 천국

언제나 평화로운 천국

     

불과 얼음이 무섭네

서리와 폭풍우, 폭염까지

끔찍한 날씨라네

비참한 곳에 모인 우리

비참한 곳에 모인 우리

     

바라는 건 여기 다 있네

싫어하는 건 하나도 없지

뮤즈여, 할 말은 많아요

하지만 노래를 그쳐야 하니까 안 할래요

하지만 노래를 그쳐야 하니까 안 할래요

     

혐오스러운 것은 여기 다 있네

좋아하는 건 없어, 어떤 즐거움도

사악한 죄악에 둘려 있으니

벗어날 길은 없네, 아주, 전혀, 결단코!

벗어날 길은 없네, 아주, 전혀, 결단코!

     

이 천국은 얼마나 좋은가

낙원의 들판에 사는 우리

하느님의 얼굴도 뵙고

이 천국은 얼마나 좋은가

이 천국은 얼마나 좋은가

     

사도 바울로가 생각했던 민중 속의 신앙을 이보다 잘 재현할 수는 없을 것이다. 콜로세움 밖이 아니라 안에서 공연된다면 더욱 뜻깊을 프로그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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