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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준호 Apr 11. 2022

죽은 땅으로부터 라일락을 키워내고

2022년 4월 음반 리뷰

ALPHA786 힙노스 - 중세, 르네상스, 20세기의 레퀴엠 Alpha 

텔레라마 만점 

그리스 신화 속 ‘잠’의 신 힙노스는 ‘밤’의 여신 닉스의 아들이며, ‘죽음’의 신 타나토스와 쌍둥이요, ‘꿈’의 신 모르페우스의 아버지이다. 이는 곧 망각과 침묵, 최면의 영역이며, 그곳에서 치유와 인내, 소통, 위로의 길로 통한다. 시몽 피에르 바스티옹은 르네상스와 20세기의 종교 음악을 넘나드는 선곡으로 헬레니즘의 신화와 헤브라이즘의 신앙을 결합한다. 바스티옹은 르네상스 다성음악도 장식음을 폭넓게 사용했으리라는 확신을 가지고 새롭게 편곡했다. 그 결과 놀랍게도 500년의 시차를 둔 음악들의 차이는 구별할 수 없을 정도이며, 시간의 간극 없는 명상과 기도의 장이 열린다.

연주: 시몽 피에르 바스티옹 (지휘), 라 탕페트 앙상블, 마테오 파스토리노 (베이스 클라리넷), 아드리앙 마비르 (코넷)

얀 가바레크와 힐리어드 앙상블의 <오피치움>과 <므네모시네>를 더듬는 앨범

CVS028 그레트리: <사자왕 리샤르> 전곡 (CD+DVD) Chateau de Versailles 

『오페라』 다이아몬드 

‘프랑스의 페르골레시’라 불린 앙드레 그레트리(1741-1813)가 1784년 발표한 대표작. 일명 ‘구출 오페라’의 효시 가운데 하나로 모차르트의 <후궁탈출>과 경쟁하고 베토벤의 <피델리오>를 예고한다. 십자군 원정에서 돌아오던 영국 왕 리샤르는 적에게 감금되었다. 왕의 음유시인 블롱델은 맹인으로 위장하고 떠돈 끝에 왕의 연인 마르그리트 백작부인을 만난다. 성 안팎에서 노래하던 왕과 블롱델은 목소리와 가락으로 서로를 인지한다. 블롱델에게 왕의 감금 소식을 들은 백작부인은 수하를 보내 그를 구출한다. 에르베 니케와 그의 사단이 춤과 음악을 결합한 정통 ‘오페라 코미크’를 맛깔나게 재현했다.

연주: 레이나우드 반 메켈런 (리샤르), 엔구에런드 드 휘스 (블롱델), 마리 페르보스트 (백작부인), 에르베 니케 (지휘) 르 콩세르 스피리튀엘, 르 발레 드 로페라 루아얄

<표트르 대제>에 이어 또 하나의 그레트리 걸작을 영상으로 만난다

AVI8553043 모차르트: 피아노와 목관을 위한 작품집 AVI  

2020년 베토벤 작품집으로 찬사 받은 피아니스트 마르쿠스 베커와 마알로트 목관 오중주단이 모차르트로 돌아왔다. 수록곡 가운데 모차르트가 쓴 원곡은 K452의 오중주뿐이고, 나머지는 클라리네티스트 울프 귀도 셰퍼의 편곡이다. 모차르트가 빈 초기 피아노 협주곡을 실내악 편성으로 연주해도 좋다고 얘기한 데에서 착안한 편곡은 빈 전성기의 G장조 협주곡에 완벽하게 들어맞는다. 목관만으로 편곡한 <극장 지배인> 서곡과 교향곡 26번은 모차르트 당대에 유행했던 하르모니무지크(목관합주)과 맞닿아 있다. 의도와 결과가 일치하는 최선의 모차르트이다.

연주: 마르쿠스 베커 (피아노), 마알로트 목관 오중주단

모차르트의 뜻대로

ALPHA764 생상스: 첼로 협주곡 1번, 교향곡 1번, 바카날 Alpha 

BBC뮤직매거진 초이스 

브람스 연배지만, 드뷔시보다 오래 산 생상스(1835-1921)는 프랑스 낭만주의의 버팀목이었다. 바렌보임을 등에 업고 알파에 데뷔했던 시라노시안은 두 번째 앨범에서 첼로 협주곡의 보석 가운데 하나인 생상스로부터 협연의 긴장감과 어우러짐을 만끽하게 한다. 17세에 쓴 첫 교향곡은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32번 2악장의 첫머리로 시작하는 점에서 슈만 교향곡 2번이 모델임을 짐작할 수 있다. 베를리오즈 이후 프랑스 교향악의 갈 길을 놓고 선배 구노, 동료 비제와 경쟁했던 관현악 장인 생상스의 귀한 결실이다. 오페라 <삼손과 델릴라> 가운데 ‘바카날’은 지휘자와 악단이 반주 역할 이상임을 확인해 준다.

연주: 아스트리그 시라노시안 (첼로), 나빌 셰하타 (지휘), 남 베스트팔렌 필하모닉

오마주 로스트로포비치: 아르메니아 민속 음악과 바흐의 만남

CCS41222 20세기 네덜란드 비올라 작품집 Channel Classics  

일가(一家)로 구성된 ‘젬초프 비올라 사중주단’의 일원인 다나 젬초프는 이 악기에 누구보다 정통한 면모를 보여준다. 앨범의 중심은 20세기 네덜란드를 대표하는 작곡가 헨크 바딩스의 협주곡과 소나타이다. 미분음을 도입한 실험적인 곡이지만, 고전 형식을 차용해 버르토크나 힌데미트에서 그리 멀지 않게 들린다. 독일에서 주로 활동한 얀 쾨치어의 ‘콘체르티노’는 슈트라우스와 말러의 후기 낭만주의에 닿아 있으며, 아르너 베르크먼의 ‘파반’은 고전 무용의 현대적 변용이다. ‘무언가’나 프랑크의 바이올린 소나타를 연상케 하는 헨리에테 보스먼스의 아리에타가 귀한 앨범을 마무리한다.

연주: 다나 젬초프 (비올라), 안나 페도로바 (피아노), 시즈오 구와하라 (지휘), 피온 오케스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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