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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준호 Jun 28. 2022

논 피니토, 미완성의 완성

미켈란젤로 가곡에 이르기까지

언제 끝나나? 
제가 완성하면요!

미켈란젤로 영화 <고뇌와 환희>에서 계속해 반복되는 장면이다. 교황은 시스티나 천장화가 빨리 완성되기를 기다리는데, 미켈란젤로는 좀처럼 마무리하지 않는다. 메디치 가문의 양자로 신플라톤주의 철학을 접한 그로서는 이데아에 도달할 수 없음을 잘 아는 것이다. 그러니 도대체 끝을 낼 수가 없다.


밀라노의 마지막 방문지 스포르체스코 성으로 향한다. 스포르차 가문이 수 백 년을 통치하며 밀라노의 전성기를 일궜던 본거지이다. 내부에 개별 박물관이 여럿 있을 정도로 규모가 거대하다. 그러나 제일 중요한 것은 성 한 편, 소박한 독립 장소에 홀로 전시된 미켈란젤로의 마지막 작품 <론다니니의 피에타Rondanini Pietà>이다. 그가 자신의 무덤에 가져가기 위해 죽기 전까지 매진했지만 완성하지 못한 이른바 ‘논 피니토non finito’로 알려진 작품이다. 만년의 미켈란젤로는 점점 작품을 미완성인 채로 두곤 했다. 어떤 예술적인 완성도 자연의 창작에 비할 바가 되지 못한다는 겸손한 생각에 이르면 오히려 작품이 생성되어 가는 과정이 더욱 장엄하게 비칠 것이다.

"바티칸에서는 어머니가 안아주셨으니 이번에는 소자가 업어드릴게요"

미켈란젤로는 화가와 조각가, 건축가일 뿐만 아니라 여러 편의 소네트를 남긴 시인이기도 하다. 그의 시에 곡을 붙인 작곡가로 후고 볼프, 벤저민 브리튼,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가 유명하다. 먼저 볼프의 첫 번째 시를 보자.

1) Wohl denk' ich oft an mein vergang'nes Leben
가끔씩 지난날을 생각하네
당신을 사랑하기 전에는 어땠는지
사람들에게 주목받지 못했지
나날이 내게는 헛되고 무상했어
노래와 글 말고는 살 낙이 없었지
사람들이 나를 떠났구나 하고 생각했네
이제 칭찬도 질책도 들으니
모두가 내 이름을 알게 되었네

그리스도로 자신의 얼굴을 새기려다 만 미켈란젤로가 실제로 볼프의 바리톤처럼 외쳤을 것만 같다. 젊은 시절의 미켈란젤로는 벤저민 브리튼이 그렸다. 평생의 동반자였던 테너 피터 피어스를 위해 쓴 <일곱 개의 미켈란젤로 소네트Seven Sonnets of Michelangelo>는 모두 사랑을 주제로 한 것이다. 독일어 번역을 쓴 볼프와 달리 브리튼은 미켈란젤로의 이탈리아어를 그대로 썼다. 

6) Sonnet XXXII
사랑이 순결하고 하늘 같이 극진하다면
두 연인이 똑같이 행복하다면
슬픈 운명을 두 사람이 함께 나눈다면
영혼이 하나라면 한 사람이 두 마음을 다스릴 텐데
두 몸에 하나의 영혼이 영원히 담겨
하나의 날개로 하늘에 오른다면
사랑의 화살 한방으로
두 개의 심장을 불태우고 꿰뚫는다면
서로 사랑하고 자기 자신은 잊는다면
하나의 기쁨과 하나의 즐거움으로
두 사람이 하나의 목표를 향하는 보답 있으리
천이 천 개인들, 백 조각을
하나의 사랑으로 묶고 지속시키지 못한다면
화 한번 났을 때 푸는 일인들 가능할까?

브리튼과 피어스의 레닌그라드 공연은 소련의 친구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를 자극했다. 그는 아브람 에프로스의 러시아어 번역 가사에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의 운문에 붙인 모음곡> 열한 수를 내놓았다. 이번에는 베이스를 위한 노래이다. 쇼스타코비치가 죽기 1년 전에 이 곡을 초연한 예브게니 네스테렌코는 작곡가 타계 1년 뒤에 훌륭한 영상으로 관현악 반주 판을 노래했다.

위대한 자 로렌초의 아들, 네무르 공작 줄리아노의 묘
(35:02)가 밤

아홉 번째 곡 ‘밤'은 피렌체 메디치 가문의 무덤을 위한 여인상에 붙인 것이다. 먼저 미켈란젤로 당대의 시인 조반니 스트로치(Giovanni Strozzi, 1517-1570)가 여인상을 보고 감탄하여 이렇게 말한다.

지금은 밤, 그대 앞에
천사의 창조물이 고요히 잠자네
돌로 만들었지만 숨결이 있어
일으켜 세우면 그녀는 말하기 시작하리
잠든 아리아드네를 형상화한 '밤'

거기에 대한 미켈란젤로의 답이 일품이다.

내게는 잠이 소중하여
차라리 돌이고 싶네
주위는 온통 부끄러움과 죄악뿐이니
휴식이란 느낄 수도 볼 수도 없네
조용, 내 친구여, 왜 나를 깨웠는가?

이것이 바로 ‘논 피니토’, 미완성의 완성을 꿈꾸는 예술 아닌가. 미켈란젤로는 도대체 테너, 바리톤, 베이스 중 어떤 목소리였을까? 설마 카운터테너는 아니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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