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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준호 Mar 06. 2023

오 달콤한 밤...

마키아벨리의 『만드라골라La Mandragola』와 베르들로의 칸초네

필리프 베르들로(Philippe Verdelot, 1480/85-1530/40)는 파리 인근 센에마른에서 태어났지만, 일찍이 이탈리아로 건너와 생애 대부분을 그곳에서 보냈다. 알려진 행적 가운데 1523년부터 1525년까지 피렌체 산 조반니 세례당의 음악감독을 역임했고, 더불어 1527년까지는 피렌체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두오모)의 감독을 겸했다.

이 구역의 음악을 책임진 베르들로

이 시기 피렌체는 레오 10세에 이어 두 번째 메디치 가문 태생의 교황인 클레멘스 7세의 영향력 아래 있었다. 그러나 강력한 지도력을 보였던 위대한 자 로렌초가 1492년 세상을 떠난 뒤로 사반세기 동안 피렌체는 내분과 외세의 침략을 오갔다. 클레멘스 7세 또한 황제 카를 5세에게 로마를 약탈당하는 치욕을 경험하기도 했다. 메디치 가문이 쫓겨나고 복귀하는 과정에서 공화정과 군주제의 장단점을 직접 목격한 니콜로 마키아벨리(1469-1527)는 1513년에 『군주론』을, 1518년에는 희극 『만드라골라La Mandragola』를 썼다. 특히 1524년에 출판된 『만드라골라』는 1526년 사육제 기간에 상연되어 큰 인기를 끌었다. 5막으로 구성된 코미디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파리에서 온 상인 칼리마코Callimaco는 늙은 법관 니차Nicia의 젊은 아내 루크레치아Lucrezia를 사모한다. 중매인 리구리오Ligurio는 칼리마코와 공모해 니차를 골탕 먹일 계략을 세운다. 곧 칼리마코는 의사로 변장해 사내아이를 원하는 니차 부부를 진료하고 루크레치아에게 정력 증강제인 ‘만드라골라’를 처방한다. 그러면서 이 약초는 너무 효능이 강해 그것을 먹은 여인과 관계한 첫 남자는 죽고 만다고 속인다. 해결책은 루크레치아가 약을 먹고 앞뒤 사정을 모르는 바보와 동침하게 하자는 것이다. 물론 이때 바보 역은 미리 변장한 칼리마코가 맡을 것이다. 독실한 신자인 루크레치아를 설득하기 위해 타락한 사제 티모테오가 동원된다. 마침내 꿈에 그리던 루크레치아와 합방한 칼리마코는 그녀가 결혼 서약을 어긴 것도 신의 뜻이므로 자신을 연인으로 받아들이라 충고한다. 루크레치아도 늙은 남편보다 젊은 연인을 택하기로 한다.
곤드레 만드레 아님!

‘만드라골라’라는 약초는 『구약성서』의 ‘창세기’나 ‘아가’에도 등장하는 오래된 처방이다. 야곱이 레아와 라합 자매를 오갈 때 나오는 합환채(合歡菜)라는 풀이 그것이며 영어로는 ‘맨드레이크mandrake’라고 한다. 마키아벨리는 이 마성의 약초를 쓸 여성에게 가장 두드러지는 이름을 붙였다. ‘루크레치아’는 이탈리아를 상징한다. 그녀는 남편(군주)에게 휘둘리며 성직자(교회)의 검은 속내까지 더해 낯선 사람(외세)에게 정조를 시험받는 신세이다. 또한 루크레치아는 고대와 당대의 여러 사람을 대변한다.

마법사 멀린에게 접근하는 요부 모르가나

리비우스의 『로마사』에 등장하는 고대 로마의 루크레치아는 정숙한 여인의 대명사이다. 콜라티누스의 아내인 그녀는 흑심을 품은 왕의 아들 타르퀴니우스에게 겁탈당한다. 루크레치아는 아버지와 남편에게 복수를 당부하며 목숨을 끊는다. 콜라티누스의 친구 브루투스가 앞장서 타르퀴니우스를 죽이고 공화정을 수립한다. 고대의 루크레치아 못지않게 위대한 자 로렌초의 어머니 루크레치아 토르나부오니 또한 현모양처로 꼽을 여인이다. 로렌초는 어머니의 이름을 자기 딸에게 물려줬다. 그 루크레치아의 외손주가 메디치 공국의 수장이 된 코시모 1세이다.

오른쪽에서 두 번째 여인이 루크레치아 토르나부오니, 로렌초의 모친이다. 상세 설명은 생략

마키아벨리 당대의 루크레치아 보르자(1480-1519)는 반대로 정숙과는 거리가 먼 여인이었다. 교황 알레산데르 6세의 딸인 그녀는 결혼만 세 번을 했는데, 첫 번째 혼인은 무효로 끝났고 두 번째 남편은 살해되었다. 둘 다 아버지와 오빠가 꾸민 정략결혼의 결과였다. 첫 번째 결혼 중에 루크레치아는 페로토라는 시종과 사랑에 빠졌고, 세 번째 페라라 알폰소 1세의 아내였을 때도 피에트로 벰보와 뜨거운 사이였을 정도로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 이 혼란한 여인의 삶은 빅토르 위고가 희곡으로 썼고, 그것을 원작으로 가에타노 도니체티가 오페라를 지어 무대에 올렸다.

바티칸 보르자 처소의 핀투르키오 벽화. 중앙에 무릎 꿇은 사람 뒤의 여인이 확실한 루크레치아 보르자이다. 성녀 카타리나의 모델.

마키아벨리에 앞서 루크레치아에 관심을 가진 선배는 산드로 보티첼리였다. 위대한 자 로렌초의 친구였던 보티첼리였지만, 그 또한 메디치 가문이 피렌체를 지배하는 방식에 염증을 느낀 사람 가운데 하나였다. 그는 엄격한 금욕을 요구한 사보나롤라에 동조해 자신의 그림을 직접 불태우기도 했다. 1500년 무렵에 그린 <루크레치아의 비극>이 남아 있는 것은 다행이다. 아니 이 그림은 오히려 사보나롤라를 적극 옹호하려고 그린 것이다.

보스턴 이사벨라 스튜어드 가드너 미술관으로 실려간 보티첼리의 걸작 <루크레치아의 비극>

그림은 세 장면을 동시에 보여준다. 맨 왼쪽은 타르퀴니우스에게 겁박당하는 루크레치아의 모습이며, 반대쪽은 남편과 동료들 앞에서 죽는 루크레치아이다. 중앙에는 자결한 그녀가 누운 가운데 복수를 맹세하는 브루투스가 서 있다. 그 뒤로 높이 솟은 기둥 위에 다윗이 골리앗의 머리를 밟고 선 조각이 보인다. 루크레치아의 복수와 다윗은 아무 상관이 없다. 그가 상징하는 것은 독재를 몰아내고 공화정을 수립하려는 의지이다. 벽에 그린 고사도 로마의 전사 호라티우스 코클레스나 홀로페르네스를 죽인 유디트와 같이 폭정에 맞선 공화정의 상징들이다. 보티첼리가 대변하고자 한 바를 읽을 수 있다.

『만드라골라』를 상연했던 로자 루첼라이. 지금은 가성비 떨어지는 오디오 가게이다

마키아벨리는 민의가 성숙하지 않은 마당에 공화정이라고 절대적인 대안이 될 수 없음을 잘 알았다. 그는 위대한 자 로렌초의 손자 로렌초 2세에게 『군주론』을 헌정했다. 군주가 되려면 제대로 되라는 것이다.

『군주론』의 후속작 『만드라골라』는 신랄한 현실비판을 코미디의 형식으로 가린 작품이다. 그렇더라도 피렌체 사육제 관객이 마키아벨리의 진의를 알아채기란 어렵지 않았을 터이다. 마키아벨리는 극의 시작, 그리고 막과 막 사이에 ‘칸초네’를 넣어 장면 전환의 효과를 이끌었다. 작곡가가 역할을 한 부분이 여기이다.

베르들로가 지은 『만드라골라』의 칸초네는 고대 비극의 코러스 전통을 계승한 것이다. 특히 아리스토텔레스가 제시한 삼일치, 곧 행위와 시간, 장소를 최대한 통일시키는 장치로서 칸초네가 삽입된다. 제4막과 제5막 사이 하룻밤이 지났음을 다음과 같은 노래로 환기하는 것이다.    

이것은 정말 귀중한 음원이다

O dolce notte

오 달콤한 밤, 오 신성한 시간

야상의 고요한 때

열렬한 연인을 기다리네

그대 안에는 많은 즐거움이 결합되어 있어

그것으로 그대만이 영혼에 축복을 주네

그대는 가져다 주네

여러 연인에게, 그대의 친구에게

긴 시련에 대한 정당한 보상을

당신, 행복한 시간이여

모든 얼어붙은 가슴을

사랑으로 불타오르게 하소서

     

이것으로 르네상스 세속가요 마드리갈이 완성되었다. 베르들로의 칸초네는 장차 메디치 궁전의 결혼식을 위한 막간극(Intermedio)으로 발전할 것이다. 그것이 오페라가 될, 아니 이미 오페라임은 말할 것도 없다. 그는 『만드라골라』를 위해 총 세 개의 칸초네를 작곡했는데, 나머지 둘은 다음과 같다.

기가 막히다

[제1막이 끝난 뒤]

Chi non fa prova Amore

사랑을, 그 큰 힘을

경험 못한 사람이

진정 헛되이 경험하기를 바란다네

하늘의 가장 높은 힘이 무엇인지.

알지도 못하지, 사람이 살면서 동시에 죽는 이치를

사람이 어떻게 악을 쫓고 선을 피하는지를

사람이 어떻게 자기 자신을

남보다 덜 사랑하는지, 그것도 종종

두려움과 희망이 마음을 얼리고 녹이는지

또한 알지 못해, 사람이나 신이나 똑같이

그대가 무장한 무기를 두려워한다는 걸


이것은 감동이네

[제3막이 끝난 뒤]

Sì suave è l'inghanno

속임수는 얼마나 달콤한가

상상했던 멋진 결론에 도달하면

고통은 사라지고

맛보았던 모든 쓴맛이 달게 느껴지네

오 고귀하고 진귀한 치료제여

길 잃은 영혼에게 바른길을 보여주는구나

너의 거대한 힘으로

한 사람이 축복받고 부자 되게 하는구나, 사랑이여

몰아내는구나, 축복받은 조언일 뿐인 네가

마법의 돌과 독약과 주문들을


‘오 달콤한 밤’을 기악 합주로 녹음한 값진 앨범. 막 어제 작곡된 듯하다.

1935년 시카고의 뉴버리 도서관에서 헨리 8세가 피렌체로부터 선물 받은 마드리갈 악보집이 발견되었다. 음악학자 H. 콜린 슬림(Colin Slim, 1929-2019)은 오랜 연구의 성과를 『마드리갈과 모테트의 선물 A Gift of Madrigals and Motets, 1972』로 펴냈다. 셰익스피어가 태어나기 이미 40년 전에 피렌체에서 공연된 르네상스 연극이 런던에 곧바로 이식된 과정을 엿볼 수 있다. 그것을 음반으로 듣는 데 다시 35년이 걸렸으니, 데이비드 스키너가 2007년에 발표한 <필리프 베르들로: 튜더 왕을 위한 마드리갈>이 그것이다.

이 분야의 장인들이 낸 또 다른 음반이다

스키너 음반은 다 빈치가 그린 <흰 담비를 든 부인, 1496>을 표지로 썼지만, 2016년 둘스 메무아르가 낸 마드리갈집은 베르들로의 초상화를 실었다. 두 사람 중 누가 베르들로인가? 둘 다이며, 사실 한 사람이 더 있다. 조르조네는 <인간의 세 시기>라는 그림에 르네상스 음악가의 일생을 담아냈다. 마치 베르들로가 마키아벨리의 연극에서 보여준 시간을 압축하는 작업을 강조하는 것처럼 보인다.     

피렌체 피티 궁전의 조르조 원화. 늙은 베르들로는 여유가 생겨 카메라도 쳐다본다. 아니면 치매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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