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레누스의 앞선 예감이 현실이 된다. 아드리안은 사기꾼 짐꾼에게 이끌려갔던 사창가를 다시 찾는다. 아드리안은 이미 다른 곳으로 가고 없는 에스메랄다에 집착했다. 그는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오페라 <살로메Salome>가 오스트리아 초연되던 1906년 5월에, 헝가리 말로 포초니라고 불리는 프레스부르크(현재 슬로바키아의 수도 브라티슬라바)에서 에스메랄다를 찾아냈다. 그러나 그녀는 병들어 있었다.
아드리안은 마성의 충동에 끌려 찾은 그녀를 마다하지 않았고, 그런 집착은 순수함과 애틋함으로 비쳤다. 그녀는 그런 아드리안을 위해 아낌없이 몸을 베풀었다. 그녀와의 만남의 결과 아드리안의 작품에는 낙인과 같은 특징이 더해진다. 그는 ‘h-e-a-e-es’ 음렬을 즐겨 사용했고 이는 곧 헤테라 에스메랄다(Hetaera Esmeralda)를 뜻했다.
결국 그는 성병에 걸렸고 라이프치히로 돌아와 치료받아야 했다. 그가 찾은 의사는 차례로 한 사람은 급사했고 한 사람은 불온한 일로 연행되었다. 둘 모두 악마의 끄나풀과 같은 기이한 모습이었다. 기이한 체험에도 불구하고 아드리안의 증세는 대단치 않아 자연 치유되었다.
세레누스와 떨어져 있던 사이에 아드리안에게는 새로운 친구가 생겼다. 뤼디거 실트크납(Rüdiger Schildknapp)이라는 이름의 문필가는 특히 영문학에 관심이 많아 번역을 주일거리로 삼았다. 실트크납이 번역가라는 사실은 그가 창작력이 떨어지는 작가임을 암시하기도 한다. 마침 아드리안은 셰익스피어의 희극 『사랑의 헛소동Love’s Labour’s Lost』을 오페라로 만들고 싶어 해 실트크납에게 대본을 의뢰했지만 그는 아드리안이 아직 적당한 돈을 지급할 능력이 될까 못 미더워서인지 사양했고, 일은 대신 세레누스가 맡게 되었다.
세레누스는 친구가 음악을 언어로 표현하는 데 큰 관심을 가지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가 여러 가지 시에 붙인 짧은 노래들은 그 당시 젊은 작곡가들의 경우 흔히 그렇듯이 구스타프 말러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였다. 뒷날 작곡할 <묵시록>을 예감케 하는 음악들이었다.
아드리안은 ‘음악과 언어가 원래 하나’라는 베토벤의 생각에 전적으로 동의했다. 베토벤은 악상이 떠오를 때 그것을 음표가 아닌 단어로 메모하는 습관이 있었고, 그의 <합창 교향곡>은 말과 음악이 하나로 결합된 결정체였다. 단 아드리안이 지금 하고자 하는 작업은 영어로 된 희곡을 번역하지 않고 그대로 작곡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는 그럼으로써 청중과 소통을 거부하려는 생각이다. 그는 이런 식으로 폴 베를렌과 윌리엄 블레이크 같은 외국 시인의 작품에 계속 관심을 두었다.
세레누스가 친구의 이야기를 쓰는 동안 독일은 전쟁의 소용돌이를 향해 치닫고 있었다. 그는 이런 종말적인 상황에서 승리도 패전도 두려운 이중적인 생각에 사로잡힌다.
이야기는 다시 예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드리안은 한창 오페라에 매달려 있으면서 친구에게 자신의 예술관을 피력한다. 그는 “예술이 사기이고 속임수이며 사람들은 그저 그런 것이 있겠거니 하고 바랄 뿐”이라고 지적하며 그나마 작금의 예술은 “가상과 유희가 되기마저 거부하고 인식의 산물이 되고 말았다”고 말한다. 세레누스는 예술가인 아드리안의 이런 냉소적인 발언이 심히 걱정된다.
아드리안은 오페라에 대한 준비로 가곡 작곡을 계속했다. 크레치마르는 뤼베크의 수석 지휘자로 가기에 앞서 마인츠의 쇼트 출판사에 아드리안을 소개해 <브렌타노 시에 붙인 열세 개의 가곡집>을 출판하도록 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