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드리안과 세레누스 두 친구는 1910년 고향 부헬에서 조우한다. 아드리안의 누이 우어줄라의 결혼식이 끝난 뒤 두 사람은 대화를 나눈다. 아드리안은 결혼이라는 제도가 죄악의 원천인 성욕을 기독교의 이름으로 정당화한다는 궤변을 늘어놓는다. 세레누스는 아드리안의 생각이 천지창조 이래 조물주의 뜻인 생식(生殖)을 통한 인간의 창조 행위를 부정하고, 무위와 불모, 허무주의와 같은 악마의 성격에 기대고 있다고 지적한다. 아드리안은 어디까지나 신학도적인 의견이었다며 꼬리를 내린다.
그는 신랑신부에게 ‘한 몸’(ein Fleisch)이 되라고 한 목사의 설교를 지적하며, 인간은 쾌락을 추구하게 마련이기에 한 몸이란 애초에 불가능한 것이고 욕망의 대상이 있을 때 사랑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한 몸 되기를 원하는 결혼생활은 사랑마저 쫓아버릴 거라는 대목에서 세레누스는 아드리안에게 아쉬웠던 인본주의적인 생각을 엿보고 기뻐한다. 이번에도 아드리안은 인본주의자라기보다는 심리학자의 관점이라며 발뺌한다. 마성(魔性)과 인성(人性)에 한발씩을 딛고 있는 주인공의 모습이다.
세레누스의 결혼 발표에 아드리안은 자기 일처럼 반기며, 두 사람은 진행 중인 셰익스피어 원작 오페라 <사랑의 헛수고>에 대해 얘기한다. 아드리안은 오페라를 영어로, 그리고 삭제 없이 희곡 전체를 작곡하고자 하는 욕심을 보인다. 세레누스는 그런 친구에게서 세상의 절반을 음악에 포함시키고자 했던 ‘바이셀’의 예를 떠올리고, 그로부터 대화의 주제는 아드리안의 새로운 구상(곧 12음 기법에 해당)에 대한 것으로 넘어간다.
아드리안은 “옛것의 재현과, 고대의 것을 혁명적인 것과 결합할 수 있는 독창적인 스승”의 필요성을 이야기한다. 또 예술 창작을 통제하는, 양식 붕괴 시대(조성체계)가 오히려 새 구속력(12음 기법)이 대두될 기회라는 속내를 비춘다. 세레누스는 창작 불모 시대를 걱정하면서도 일면 반기는 듯한 아드리안의 태도를 읽고 섬뜩함을 느낀다.
아드리안은 ‘예술의 자율성’이라는 것이 결국은 완전한 자유방임이 아닌, 그것이 기댈 시스템이 전재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런 시스템을 만드는 것은 다시금 ‘예술가의 주관’이라고 강조한다. 세레누스는 친구가 소나타 양식에서 벗어남으로 해서 새로운 발걸음을 디뎠던 베토벤을 염두에 두고 있음을 눈치 챈다. 아드리안이 이런 이야기를 시작한 것은, 그가 이미 구상을 마친 12음 기법을 친구에게 소개하기 위한 의도였다. 반복되지 않는 12개의 음을 나열하고, 그것을 반대 방향으로, 또 음정을 바꾸어서, 다시 그것을 반대 방향으로 나열하는 식으로 해서 악곡을 수학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시스템이었다.
아드리안은 이 체계가 ‘선율과 화성의 차이 없음’을 입증하는 것이라 자부했다. 아르놀트 쇤베르크(1874-1951)도 1920년대 초에 12음 기법을 고안하고는 친구인 요제프 루퍼(Josef Rufer)에게 “독일 음악이 향후 100년 동안 헤게모니를 확보할 수 있는 체계”라고 자랑했다. 세레누스는 12음 기법이 뒤러의 그림에 나오는 마방진과 같은 것임을 지적한다.
이와 비교해 지휘자 에르네스트 앙세르메가 실제로 쇤베르크의 라이벌인 이고르 스트라빈스키에게 들려준 12음 기법 이론도 매우 흥미롭다.
자네가 여덟 음절로 된 ‘Morituri te salutant’(‘죽음으로 경의를’이라는 뜻으로, 로마 시대 검투사가 경기에 임하기 전에 외친 구호)라는 경기를 만든 사람이라고 생각해 보게. 그리고 각 여덟 음절마다 선수를 배치하는 거야. 자네는 음절의 순서를 뒤집을 수도 있고, 다른 방법으로 바꿀 수도 있네. 그리고 마지막에 모든 음절이 동시에 소리 나도록 소리치는 거야.
세레누스는 이런 판에 박은 음표 놀이가 어떻게 작곡가의 영감을 담은 창작이 될 수 있는지 회의를 품고, 또 그것이 청중에게 들렸을 때 과연 변별력이 있을지 묻는다. 아드리안은 변별력 있는 음악이 되지는 못할지언정 최소한 체계 있는 음악이라는 인상은 줄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런 체계는 미리 정해진 마성(魔性)에 끌리는 듯하다는 세레누스의 지적에 아드리안은 그것은 오히려 별자리와 같이 숙명적이라고 주장한다. 세레누스는 마방진 놀음과 같은 새로운 체계를 이성과 마성의 조화라고 생각하는 아드리안에게 더 이상 가까워질 수 없는 거리감을 느끼며 대화를 중단한다. 아드리안은 부모와 이별하고 새로운 일터인 뮌헨으로 떠난다. 어머니는 또 한 번 아들의 머리를 가슴에 끌어안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