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드리안은 대도시 뮌헨에 새로 자리를 잡고, 시의원 미망인 로데 부인 집에 하숙한다. 그의 방은 조용한 거리가 내려다보이는 아늑한 곳으로, 마이어베어의 초상이 걸려 있었다. 자코모 마이어베어(1791-1864)는 프랑스에서 주로 활동한 유대계 독일 작곡가였다. 그는 젊은 바그너를 재정적으로, 예술적으로 후원했지만, 바그너는 유대인인 그가 암암리에 자신의 출세를 방해했다고 생각하고 뒷날 적으로 여긴다. 젊은 아드리안 또한 마이어베어가 바라보는 가운데 마성이 깃들인 음악을 쓰기 시작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로데 집안은 남편이 죽은 뒤 쇠락했지만, 부인은 여전히 사교계의 일원으로 통속적인 소문의 창구 역할을 한다. 부인의 두 딸 이네스와 클라리사는 그런 어머니의 속물적인 모습과는 조금 거리를 취한다. 특히 동생 클라리사는 불운한 자신의 가정환경에 대한 반발로 일탈을 꾀하다가 뒷날 음독자살을 한다. 언니 이네스는 동생보다는 주어진 환경에 순응했지만, 그녀가 쓴 ‘광부’라는 제목의 시에서 보듯 스스로를 행복과 동떨어진 존재로 여겼다. 아드리안은 모녀의 사교 모임에서 존경받았고, 곧 그 일원이 되었다.
그 가운데 특이한 인물은 차펜슈퇴서 악단(Zapfenstoßer-Orchester)의 바이올리니스트 루돌프 슈베르트페거(Rudolf Schwerdtfeger)였다. 그는 지적인 허영심이 있고, 남에게 환심을 사고 싶어 해서 아드리안에게 접근했지만, 아드리안은 그를 썩 달가워하지 않는다. 아드리안의 냉랭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슈베르트페거는 그에게 끊임없이 다가왔다.
라이프치히의 친구 뤼디거 실트크납도 출판사가 뮌헨에 있다는 구실로 아드리안에게 왔다. 그는 곧 뮌헨의 여러 명사 집에 식객으로 드나들었고, 아드리안도 그를 따라 몇몇 집안과 알게 된다. 그 가운데 어머니가 프랑스계인 소설가 자네트 쇼이를(Jeannette Scheurl)이 있었다. 심리학과 음악을 소재로 하는 그녀의 소설은 아드리안의 흥미를 끌었고, 둘은 가깝게 지낸다. 이전까지 아드리안의 삶을 돌아볼 때 뮌헨의 보헤미안 생활은 훨씬 번잡하고 세속적이었다.
아홉 달이 지난 뒤 아드리안과 실트크납은 오버바이에른(Oberbayern)으로 가 그곳에서 겨울을 보낸다. 뮌헨의 지인들과 더욱 가까워진 시간이었다. 아드리안은 실트크납과 떠난 여행 중에 운명적인 장소에 도착한다. 발츠후트 인근의 ‘슈바이게슈틸’(침묵과 말없음쯤의 뜻이다) 농장은 아드리안의 부헬 고향집과 판에 박은 듯이 똑같았다. 농장 주변의 자연은 물론이고, 한때 수도원장이 살던 집의 고풍스러운 인테리어도 아드리안과 실트크납의 맘에 들었다. <사랑의 헛수고> 작곡이 답보 상태였고 뮌헨의 집에서 불안한 고독감과 불시방문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던 차에, 아드리안은 슈바이게슈틸 농장으로 옮기기로 맘을 정한다. 그는 세상으로부터 방해받지 않고 내면의 대화를 나눌 장소를 찾았다고 말하나, 세레누스는 알 수 없는 상대와 미지의 담판을 짓겠다는 친구에게서 엄습하는 두려움을 느낀다.
아드리안과 실트크납은 초여름 이탈리아로 여행을 떠난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뮌헨이 실제로 토마스 만이 가장 오랜 시간 동안(1891-1933) 머물며 활동했던 도시였으며, 다음 장에서 여행을 떠날 팔레스트리나 또한 그가 형 하인리히와 함께 여행했던 곳이라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