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2년 여름, 차이트블롬 내외는 이탈리아 팔레스트리나에 2년째 머물고 있는 아드리안과 실트크납을 방문한다. 이곳은 중세 폴리포니 음악을 집대성한 작곡가 조반니 피에르루이지 팔레스트리나(1526-1594)의 출생지였다. 그가 창작의 불모 상태에서 작곡한 <교황 마르첼리 미사>는 천사의 합창을 받아 적은 것이라는 설화가 전한다.
토마스 만이 존경한 작곡한 한스 피츠너(1869-1949)는 이 이야기를 소재로 오페라 <팔레스트리나>(1917)를 작곡한다. 토마스 만은 유명한 바흐 수난곡의 복음사가(Evangelist)이자, <팔레스트리나>의 초연에서 타이틀 롤을 부른 테너 카를 에르프(Karl Erb)를 대단이 높게 평가했고, 이는 뒤에 아드리안의 <묵시록>을 부르는 가수 에르베(Erbe)로 형상화된다.
아드리안 일행은 마나르디 집안의 저택에 머물렀다. 세레누스는 인문주의자로서 이탈리아의 아름다운 자연과 맑은 날씨에 한껏 고양되었으나, 두 예술가는 자신들의 작업과 관련 없는 외부 환경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특히 자연의 장관을 비꼬기까지 하는 실트크납의 태도는 세레누스를 언짢게 했다. 아드리안은 작곡 중인 <사랑의 헛수고>의 일부를 피아노로 들려주어 친구를 기쁘게 했다. 셰익스피어의 이 희극은 마치 아드리안을 위해 미리 마련된 것과 같은 내용이다. 그 간추린 내용은 다음과 같다.
나바르의 왕 페르디난드는 세 신하(비론, 롱거빌, 듀메인)와 함께 맹세를 한다. 3년 동안 금욕과 금식하며 학문에만 매진하기로. 이를 위해 궁전에 여인은 일체 발을 디딜 수 없다. 그런데 마침 프랑스 공주가 세 시녀(로잘린, 마리아, 캐서린)와 사절로 오자 소동이 벌어진다. 맹세에 따라 공주 일행을 궁전 밖 막사에서 묵게 하던 페르디난드와 신하들은 공주 일행의 미모에 한눈에 반하고 만다. 허나 공주 일행은 어처구니없는 맹세 때문에 자신들을 홀대하는 이들을 골탕 먹이기로 한다.
한편 왕의 손님인 허풍쟁이 아르마도는 형편없는 시골처녀에게 반해 하인에게 연서(戀書)를 전달하게 하는데, 그만 이것이 로잘린에게 보내는 비론의 편지와 수신인이 바뀌고 만다. 글을 모르는 시골처녀에게 편지를 읽어주던 왕의 스승 홀로페르네스는 비론이 금욕의 맹세를 깼음을 알고 왕에게 이를 고자질하려 한다. 그러나 이미 비론은 두 동료뿐만 아니라 왕 자신도 각자의 여인에게 빠져 있음을 안다. 이들은 스스로 자처한, 하지만 거부할 수 없는 바보짓에 한탄하며 은밀하게 사랑 고백할 계획을 세운다.
남자들은 러시아인으로 변장해 사랑을 속삭이지만, 미리 눈치 챈 여자들은 각자의 소지품을 바꾸고 변장해 엉뚱한 상대에게 고백을 얻는다. 스스로의 맹세를 깼다는 비난을 받지 않고 사랑을 얻으려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가고, 여자들은 남자들을 믿을 수 없다며 조롱한다. 이때 프랑스 왕이 서거했다는 전갈이 도착하자, 슬픔에 젖은 공주는 조건을 내건다. 앞으로 상복을 입을 1년 동안 왕이 숲속에 들어가 근신하고 사랑을 간직해 준다면 영원히 자신을 바치겠다고. 세 신하와 시녀들도 같은 맹세를 하며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극중 모사꾼으로 모든 계획을 이끌고 가는 비론은 실상 셰익스피어 자신이며 로잘린은 엘리자베스 여왕의 시녀로 작가가 짝사랑해 애를 태우게 한 인물이다. 또한 로잘린은 <로미오와 줄리엣> 가운데 로미오가 줄리엣을 만나기 직전까지 죽고 못 살던 짝사랑의 대상이기도 하다.
세레누스는 극중 홀로페르네스가 마치 예술가의 창작 과정을 묘사하는 듯 노래하는 부분에 매우 만족하지만, 인문주의를 조롱하는 부분에서는 눈살을 찌푸린다. 또한 극중에서 홀로페르네스와 아르마도는 유대와 기독교, 그리스의 위인들을 예찬하는 극중극 <아홉 위인Nine Worthies>을 웃음거리로 만든다. 인문주의자인 세레누스에게 기분 좋지 않을 부분이다.
이는 셰익스피어가 인간의 체험(사랑)을 경시하고 교양(학문)에 매진하는 책상물림들을 비판한 것이다. 그러나 작가와 작곡가 모두 결국 교양을 버리고 얻은 사랑 또한 믿지 못할 헛된 것이라는 자조를 섞고 있다. 아드리안에게는 자발적이고 자연스러운 사랑(본능)도 결국은 예술적인 유희의 수단일 뿐이었다.
그런 만큼 음악의 완성도는 매우 뛰어난, ‘예술을 위한 예술’의 모범이었다. 곧 현실과 유리된, 재미와 유희만 남은 음악이었던 셈이다. 그 점을 잘 아는 세레누스였기에 작품이 희극으로보다는 비애극으로 보였다. 반면 실트크납은 준비된 예찬자였다. 일행에게 술을 권하며 또 헛것을 보는 주인집 모녀는 악마의 잔치로 초대하는 끄나풀처럼 묘사된다.
두 예술가는 점점 고립되고 은둔하는 삶으로 침잠했고, 마나르디 집안에서 세레누스 차이트블롬과 그의 아내는 인간의 본능인 성욕(性慾)을 유일하게 느끼는 존재로 소외감을 갖게 된다. 세레누스는 아드리안이 여성(女性)과는 완전히 담을 쌓은 존재가 되었음을 알게 된다.
친구들의 팔레스트리나 방문은 실제로 토마스 만이 형 하인리히 만과 함께 1896년 이곳에 머물렀던 체험을 바탕으로 한다. 그는 이곳에서 <키 작은 프리데만 씨>를 썼고, <부덴브로크 일가>에 착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