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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준호 Dec 07. 2018

25-26. 메피스토펠레스와 만나다

제25장: ‘그’와의 만남


세레누스는 아드리안이 팔레스트리나에 머물 무렵 오선지에 쓴 무시무시한 원고에 대해 얘기한다. 그것은 아드리안과 한 방문자의 대화를 적은 것이다.


아드리안이, 키에르케고르가 쓴 모차르트의 <돈 조반니>에 대한 글을 읽던 중, 한기가 느껴지는 방안에 ‘그’가 찾아 왔다. 어쩌면 오랫동안 고대하던 일이었다. 그는 오래 알던 사이처럼 아드리안에게 말을 놓았다. 아드리안은 예고 없이 찾아온 불청객에게 용건을 따져 묻는다. 추위를 이기지 못한 아드리안은 코트를 꺼내 입고 자리에 앉았다. 옛 신학교 시절 쿰프 교수의 말투를 한 그는 아드리안에 대해서라면 뭐든지 안다는 듯이 말했다. 아드리안은 그를 ‘악마’로 지목한다. 그는 뒤러의 <멜랑콜리아> 그림에 들어 있는 모래시계를 언급하며 이미 모래가 흘러내리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곧 계약이 성립되었음을 뜻한다.

스트라빈스키의 <요정의 입맞춤>. 얼음처녀의 입맞춤을 받은 소년이 그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끝내 그녀를 따라간다는 이야기이다. 발레를 편곡한 <디베르티멘토>

악마는 매춘부 헤테라 에스메랄다도 자신이 보냈던 것이며, 아드리안이 앓았던 매독도 완치된 것이 아니라 잠복중이라고 떠벌인다. 그는 예술가란 무릇 고통을 안고 살게 마련이며, 그로 얻을 희열은 마치 인어가 고통을 딛고 다리를 얻는 것과 같다고 비유한다. 그는 음악이 스스로 가상을 만들어 내는 것이 더 이상 가능하지 않은 세상을 조롱하며, 마성이 주는 예술의 착상이야말로 진정한 즐거움이라고 자랑한다.


아드리안은 악마가 고통과 창작에 대해 얘기하는 것에 코웃음을 친다. 그는 예술가들이 유희의 자유를 다시 발견하게 되리라는 낙관을 얘기한다. 그러나 악마가 보기엔 그건 겨우 패러디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며 유혹을 멈추지 않는다. 악마는 아드리안과 같이 오만하고 고도의 지적인 탐구를 바라마지 않는 존재가 반드시 자신의 제안을 받아들일 것이라고 확신한다. 아드리안은 만일 악마와 계약할 경우 자신이 받게 될 벌에 대해, 그리고 참회를 통한 구원의 가능성에 대해 생각한다. 아드리안은 자신의 죄에 대해 어떤 구원의 희망도 가지지 않는 참회야말로 진정한 참회이며 그것을 통해 구원에 가장 가까이 갈 수 있다고 주장한다. 악마는 그런 순수하지 못한 계산이야말로 자신이 아드리안을 좋아하는 이유라며 더욱 반긴다.


대화가 계속될수록 악마의 제안은 거부할 수 없는 실제 상황이 되고, 악마는 최후의 조건을 제시한다. 곧 자신이 아드리안이 원하는 예술가로서의 능력을 제공하는 대신 아드리안은 사람들과의 인연, ‘사랑’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는 한 아드리안은 스스로 원한, 가장 오만하고 지적인 존재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아드리안이 원하는 모든 것을 누리고 모래시계가 정한 시간이 되면 그의 존재는 송두리째 악마의 것이 된다.

얼음처녀의 입맞춤을 받는 주인공 루디 (슈베르트페거는 아니다)

소름끼치는 통보를 받은 아드리안 앞에 혼자 마을에 갔다 온 실트크납이 별 일 없었다는 듯이 음산하게 말을 건넨다. 그 또한 어둠이 보낸 끄나풀인 셈이다.


제26장: 슈바이게슈틸 농장


세레누스가 아드리안의 전기를 쓴 지 1년여가 지나 앞 장들을 쓰는 동안 1944년 4월이 되었다. 이야기가 전개되는 시점은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22개월 전인 1912년 가을이다. 세레누스는 두 시간에 하나를 더해, 곧 독자가 작품을 읽는 시간까지 세 지점의 관계에 대해 생각한다. 아드리안과 실트크납은 팔레스트리나에서 뮌헨으로 돌아왔고, 홀로 슈바빙의 기젤라 호텔에 임시 거처를 정한다.

파이퍼링의 실제 모델인 뮌헨 교외의 폴링. 현재와 1900년 무렵의 모습. 시간이 멈춘 듯 보인다.

아드리안은 호텔을 나와 예전에 실트크납과 방문했던 인근 파이퍼링의 슈바이게슈틸 집안에 새 처소를 마련한다. 예전에 바로크 수도원으로 쓰던 집이었고 아드리안이 주로 기거할 방 또한 예전에 수도원장의 방이었다. 이 또한 과거로 회귀하고자 하는 아드리안에게 적합한 장소였다. 아드리안의 고향집 부헬 농장과 판박이인 슈바이게슈틸 집에는 ‘카슈페를’이라는 개가 있었고, 아드리안은 그를 향해 짖는 개를 고향집 개의 이름인 ‘주조’라고 부르며 달랬다.


냉정하고 과묵하며 오만한 동시에 수줍어하는 아드리안은 사람을 끄는 묘한 힘이 있었고, 머지않아 뮌헨의 친구들이 그를 찾아 시골을 방문했다. 차펜슈퇴서 오케스트라의 악장 루디 슈베르트페거가 가장 열심이었다. 그는 여전히 냉담한 아드리안에게 일방적인 친근함을 표했다. 1913년 부활절 무렵 세레누스도 인근 프라이징의 김나지움에 부임해 오고 아드리안이 파국을 맞이할 때까지 줄곧 곁에서 지켜보게 된다.

알렉세이 라트만스키가 안무한 <요정의 입맞춤> 피날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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