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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준호 Dec 11. 2018

28-29. 로데 부인의 살롱

제28장: 뮌헨의 사교 모임  


아드리안은 종종 슈바이게슈틸의 집을 벗어나 뮌헨으로 나들이를 갔다. 로데 부인의 살롱에는 많은 도락가들이 모여들었다. 그들 가운데에서 비올라 다모레를 연주하는 세레누스는 인기가 있었다. 종종 예술에 대한 토론이 벌어지기도 하고 사적인 음악회가 열리기도 했다.


브라이자허 박사(Dr. Chaim Breisacher)는 당대 뮌헨 보수 지식인의 전형으로 묘사된다. 그는 예술의 진보를 부정하는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가령 원시 미술의 평면 화법에 원근법이 도입된 것이나, 음악이 단성에서 다성으로 바뀐 것도 진보와는 거리가 멀다는 것이 그의 의견이었다. 그는 선동적인 성향의 지식인이었고, 어쩌면 뒤에 올 나치의 모습을 예고하는 사람이기도 했다. 세레누스는 아드리안이 이 사람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을지 궁금했으나 서로 얘기를 나누지는 않았다.

아드리안은 쇼팽의 이 야상곡이 바그너에 비할 만하다고 얘기한다

제29장: 이네스와 클라리사 로데


로데 부인에게는 이네스와 클라리사(Ines & Clarissa Rodde)라는 두 딸이 있었다. 클라리사는 배우 지망생이었지만 그리 앞길이 탄탄하지 못했다. 언니 이네스는 영혼의 보호가 보장된 시민 가정의 삶에서 피난처를 찾고자 하는, 소극적인 여인이었다. 그런 이네스에게 접근하는 남자가 있었으니, 뮌헨 공과대학에서 미학과 르네상스 예술을 강의하는 헬무트 인스티토리스(Dr. Helmut Institoris)였다. 부유한 집안 태생인 그는 전적으로 가장에게 순종할 아내감을 찾고 있었다.


이네스의 가녀리고 비애감 어린 자태는 사실 인스티토리스의 전공인 르네상스풍은 아니었다. 그러나 풍만하고 자유분방한 여인이었다면 고분고분한 내조를 원하던 그에게 맞지 않았을 것이다. 적당히 쇠락한 집안인데다가 예술적인 감수성을 가진 이네스가 그에게는 오히려 현모양처감이었다.


그러나 이네스의 쪽에서 보자면 얘기가 달랐다. 인스티토리스는 그녀가 원하던 유형이 아니었다. 그것은 세계관의 충돌이었다. 인스티토리스는 르네상스적인 사람이었고, 이네스는 염세적인 도덕주의자로, 원래 한 사람 안에 함께 있어야 할 두 자질을 반으로 갈라놓은 듯했다. 이런 모순된 생각이 교묘하고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이룬 상태에서 타협을 찾은 것이 두 사람의 관계였다.


인스티토리스와 차펜슈퇴서 악단의 바이올리니스트 슈베르트페거가 타고난 천재성과 후천적인 노력의 성과 가운데 어느 쪽에 더 우위를 두느냐를 놓고 논쟁을 벌일 때 이네스가 후자의 편을 듦으로써 그런 간극이 드러나기도 한다.


두 자매는 인스티토리스라는 구혼자를 두고 중립적이고 사려 깊은 세레누스에게 조언을 구한다. 세레누스는 특히 당사자 이네스에게는 결혼 당사자로서 두 사람의 이상과 현실에 대해 객관적인 의견을 내놓는다. 그러나 그는 얘기가 거듭될수록 이네스가 사랑하는 쪽은 오히려 슈베르트페거라는 것을 알게 된다.

세 사람의 엇갈린 사랑이 앙상블로 그려지는 <피델리오>의 콰르텟

세레누스는 이네스가 슈베르트페거를 사랑하게 된 시점이 인스티토리스의 구혼을 받은 직후라고 짐작했다. 이네스가 인스티토리스로 인해 여성성이 깨어났지만 그에게는 남성적인 매력을 느끼지 못한 채, 오히려 그전까지 느슨한 감정만을 가지고 있던 슈베르트페거에게 사랑을 느낀 것이다. 강의실 안에서 예술을 논하는 인스티토리스보다는 스스로 예술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바이올리니스트의 모습이 이네스에게는 더욱 매력적이었다.


세레누스는 이런 사실을 슈베르트페거에게도 알려주고 싶었지만 현실적인 구혼자가 있는 이상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슈베르트페거는 그녀의 맘을 받아들이지도 못하고, 모른 척 하지도 못한 채 어정쩡한 태도를 취했다. 세레누스는 그들의 이야기를 아드리안에게 털어놓았다. 짐짓 놀라며 하는 다음과 같은 아드리안의 말은 뒤에 닥칠 비극을 예고한다.

그 친구로서는 그냥 웃어넘길 일은 아니군. 한데 두고 보면 알겠지만, 그 문제에서 깨끗이 벗어나게 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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