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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준호 Dec 10. 2018

27. 봄의 향연으로 논란의 중심에 서다

제27장: 클롭슈토크의 「봄의 향연」


세레누스의 대본에 따른 셰익스피어 원작의 오페라 <사랑의 헛수고>는 아드리안에게 큰 만족을 가져왔다. 스승 크레치마르의 주선으로 아드리안의 원고를 필사한 차펜슈퇴서 악단의 바순 연주자는 곡을 베끼는 내내 그 탁월함에 반하게 되었음을 토로한다. 다만 종종 대담하고 도전적인 작풍 때문에 청중이 받아들이기 힘들까 우려된다는 견해를 보인다. 어쩌면 아드리안이 정확히 의도한 바이다.


그는 뤼베크에 있는 크레치마르에게 악보를 보냈고, 작품은 1915년에 초연되었다. 독일어로 번역해 무대에 올렸음에도 불구하고 공연 중에 청중의 삼분의 이가 나가버리고 말았다. 세레누스를 이 불상사를 클로드 드뷔시(1862-1918)의 오페라 <펠레아스와 멜리장드Pelléas et Mélisande>의 초연(1902)에 비교했다.

베를린 필하모닉이 콘체르탄테 형식으로 공연한 <펠레아스와 멜리장드>

비평가들의 반응도 청중과 다르지 않았다. 다만 이머탈이라는 노교수만이 시간이 명성을 가져다줄 작품이라고 평했다. 그는 이 오페라를 “미래지향적이고 심오한 음악성을 지녔으며, 작곡가는 아마도 ‘풍자가’이면서 ‘신성한 영혼을 가진 사람’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세레누스는 지극히 감동적인 표현이라고 생각했다.


이미 지나간 작품의 평가에 아랑곳하지 않고 아드리안은 독일어와 영어로 된 시들을 작곡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윌리엄 블레이크, 존 키츠와 같은 영국 낭만주의 시인이 언급되었고, 독일 시인 가운데는 프리드리히 고틀리프 클롭슈토크(Friedrich Gottlieb Klopstock, 1724-1803)에 붙인 곡이 탁월했다. 클롭슈토크의 시 제목은 「봄의 향연Die Frühlingsfeyer」이었다. 아드리안은 이 시를 바리톤과 오르간, 현악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도록 작곡했다. 역시 찬반의 격론을 불러오면서 아드리안의 이름을 부각케 한 걸작이었다.


이 장에서 언급되는 아드리안의 음악들은 초연 배경과 제목만 보아도 스트라빈스키를 떠오르게 한다. 스트라빈니스키의 <봄의 제전>의 독일어 제목은 ‘Die Frühlingsweihe’이다. 클롭슈토크의 시는 아래와 같다.


온 세상의 대양 속에

뛰어들지 않으리, 떠다니지 않으리

맨 처음 창조된 자들, 빛의 아들들의 환호하는 합창단들이

숭배하는 곳, 깊이 숭배하고 황홀경에 사라지는 곳으로는!

겨우 두레박에 맺힌 물방울과 같은

지구에서나 숭배하고 떠다니리!

할렐루야! 할렐루야! 두레박의 물방울도

전능하신 분의 손에서 흘러나왔네!

전능하신 분의 손에서

더 큰 행성이 솟아나와

빛의 강물로 좔좔 흘러 일곱 자매 성단이 되었을 때

그때 물방울 너도 전능하신 분의 손에서 나왔도다   

그때 빛의 강이 하나 흘러 우리 태양이 되고

파도가 바위에서 쏟아져 내려

구름 아래로 내려와 오리온자리를 감쌌을 때

그때 물방울 너도 전능하신 분의 손에서 나왔도다

수천 수백만은 누구인가

그 물방울에서 살고 또 살았던?

그리고 나는 누구인가?

창조자여 할렐루야! 솟구친 행성보다

빛으로 보여 흐르는 일곱 자매 성단보다 더 많구나!

그러나 너, 봄의 작은 벌레야

내 곁에서 놀고 있는 황녹색 벌레야

너는 살아 있지만 아마도

아, 불사(不死)는 아니로다

숭배하기 위해 태어났습니다

그런데 울다니? 용서하세요

유한한 이 몸의 눈물을

아 그대, 장차 오실 분이여

제 모든 의혹을 밝혀주세요

아 어두운 죽음의 골짜기를 뚫고 오시는 분

그때는 저도 알 겁니다

저 황금빛 벌레가 영혼을 가지고 있는지 아닌지

그대가 교양 있는 먼지라면

5월의 아들이여, 그러면

다시 날아다니는 먼지가 되어라

아니면 영원한 분이 원하는 무엇으로!

쏟아라, 새로이, 그대 내 눈이여

기쁨의 눈물을!

그대 내 하프여

주님을 찬양하라!

다시 휘감겨 있도다, 종려수로

내 하프가 휘감겨 있도다, 내 노래 주님께 바치는 것!

여기 내 서 있고, 나를 둘러싼

모든 것, 전능 아니며 기적 아는 것 없도다

깊이 경외하며 피조물들을 바라봅니다

당신, 이름 없는 분, 당신께서

창조하셨기 때문입니다.

내게 불어와 내 달아오른 얼굴을

서늘하게 식혀주는 산들바람

그대들, 경이로운 산들바람을

보내주신 분, 영원자 주님이시로다

하지만 이제 바람이 잠잠해진다, 숨결보다 약하게

아침해 무더워지고

구름이 피어 오른다

뚜렷하도다, 오고 계신 영원자!

이제 바람이 인다, 쏴쏴, 소용돌이 친다

숲이 허리를 굽히고 물결이 높아지지 않는가

뚜렷하나이다, 인간들에게 드러내는 당신의 모습

진실로 당신이오이다, 뚜렷하신 영원자시여!

숲이 기울고 강물이 도망치며, 그리고 나는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리지 않는가?

주님, 주님, 하느님, 자비롭고 관대하신 분이시여

가까이 계신 분이시여,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

노하셨습니까, 주님

그래서 어둠의 옷 입으셨나이까?

이 어둠은 지상의 축복이나이다

아버지시여, 당신께선 노하신 것이 아니오이다

그 어둠은 청량제를 쏟아붓기 위함이오이다

힘을 돋워 주는 곡식 줄기 위로

마음을 즐겁게 해주는 포도송이 위로

아버지시여, 당신께선 노하신 것이 아니오이다

당신의 면전 만물이 숨죽이고 있나이다, 가까이 계신 분이시여

사방이 쥐죽은 듯 고요하나이다

금빛으로 덮인 작은 벌레도 귀를 기울이니

그 벌레도 어쩌면 영혼을 타고난 것입니까? 불멸입니까?

아, 주님, 당신을 한없이 찬양합니다

당신의 모습이 갈수록 장려합니다

당신을 둘러싼 어두움 점점 더해 가고

더 많은 축복으로 채워집니다

그대들은 가까이 계신 분의 증인을 보는가, 저 경련하는 햇살을?

그대들은 여호와의 천둥소리를 듣고 있는가?

그대들은 그 소리 듣고 있는가? 듣고 있는가?

저 충격적인 주님의 천둥소리를

주님, 주님, 하느님이시여

자비롭고 관대하신 분이시여

경모 받자옵고 찬미 받으소서

당신의 영광된 이름

하며 저 뇌우의 바람은? 천둥을 몰고 오지 않는가

쏴쏴, 요란한 파도 일구듯 숲을 휩쓸지 않는가

그러다간 이제 바람이 그친다. 천천히

검은 구름이 걷힌다

그대들은 가까이 계신 분의 새 증인을 보는가, 저 쏟아지는 햇살을?

그대들은 저 위 구름 속에서 주님의 천둥소리를 듣는가?

그는 외친다: 야훼! 야훼!

하자 동댕이쳤던 숲에서 김이 솟아오른다

허나 우리의 오두막은 건재하다

아버지께서 명령하셨노라

그의 파괴자에게

우리의 오두막 앞은 지나쳐 가기만 하라고

아 벌써 주룩주룩, 은총의 비 내리는 소리

하늘과 땅에 그 소리 가득하지 않은가

이제 그리도 목말라 하던 대지가 생기를 얻고

하늘이 그 무거운 축복의 짐을 벗도다

보라 이제 야훼께서는 뇌우 속에 오시는 것 아니로다

조용하며 여리게 바스락거리며

야훼 오시도다

하며 그의 발아래 평화의 무지개 뜨도다


클롭슈토크의 장시는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 언급됨과 동시에 베토벤의 <전원 교향곡>을 비롯한 전원 예찬들의 모범이 된다고 할 수 있다. 영원한 존재에 대한 무한한 경배와 감사의 노래에 아드리안이 작곡하고 있다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세레누스는 아직 그가 악마와 계약을 맺은 사실을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이 곡을 접했다. 그러나 그 사실을 안 뒤에 돌아보면 이것이 속죄의 제물임을 짐작할 수 있다. 곧 아드리안이 악마에게 말했던, 용서를 바라지 않는 가장 겸손한 속죄였던 것이다.

전원에 도착했을 때 든 상쾌한 기분 - 시냇가의 정경 - 시골 사람들의 즐거운 모임 - 천둥, 폭풍우 - 목동들의 노래, 폭풍 뒤의 즐겁고 감사하는 마음'이라는 부제의 전원 교향곡

‘두레박에 맺힌 물방울’과 같은 지구에 대한 언급에서 시작하는 우주와 해저에 대한 아드리안의 관심은 자연과학에 무지한 세레누스에게 이질감을 준다. 이 또한 아드리안이 인간의 영역이 아닌 조물주의 영역에 관심을 뻗치고 있음을 내비친다. 세레누스는 아드리안이 아무리 현학적인 지식을 늘어놓더라도 신의 영역에는 미치지 못함을 지적했지만 아드리안은 세레누스의 인본주의적인 세계관을 비웃는다. 1913년부터 1914년 사이에 아드리안은 이내 천문학에 대한 관심을 녹인 환상 교향곡 <우주의 경이Die Wunder des Alls>를 발표한다. 이 또한 반예술적이고 허무주의적이라는 비판을 샀다.


쇤베르크와 동갑나기 영국 작곡가 구스타프 홀스트는 1914년부터 1916년 사이에 점성술에 기초한 관현악곡 <행성The Planets>을 썼다.

행성 가운데 가장 핵심적인 주피터의 코랄

파울 힌데미트는 1957년에 천문학자 요하네스 케플러의 일생을 다룬 오페라 <우주의 조화Die Harmonie der Welt>를 내놓았다.

린츠 국립극장이 상연한 <우주의 조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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