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이 발발해 세레누스는 예비역 중사로 참전하게 된다. 독일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역사적인 자부심과 영웅심리, 미래에 대한 낙관적인 희망이 지배했다. 세레누스는 반이성적인 국가 권력이 국민을 파멸로 이끄는 사태에 자조적인 입장이다. 또한 그 자신도 국민의 한 사람으로써 막연한 동료의식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솔직히 인정한다. 그는 작별 인사를 위해 뮌헨의 친구들을 찾는다.
실트크납, 아드리안, 세레누스 세 사람은 마지막 저녁 식사를 한다. 아드리안은 고대 설화집 『로마인 이야기』(Gesta-Romanorum)를 소재로 작곡을 하고 있었다. 이 설화집은 매우 많은 문학 작품이 뿌리를 두고 있다. 셰익스피어는 『리어왕』, 『베니스의 상인』, 『페리클레스』를 여기서 착안했고, 레싱의 『현자 나탄』과 토마스 만의 『선택된 인간』 또한 여기에 기인한다.
아드리안은 <로마인 이야기>를 인형극으로 만들기 위해 고전주의 작가 하인리히 폰 클라이스트(Heinrich von Kleist, 1777-1811)가 쓴 논문 「인형극에 대하여Über das Marionettentheater」도 참고했다. 클라이스트는 괴테에 가려 빛을 보지 못하다가 20세기 들어 조명 받게 되었다. 일찍이 말러의 동료였던 후고 볼프(Hugo Wolf, 1860-1903)가 클라이스트의 희곡을 가지고 압도적인 교향시 <펜테질레아Penthesilea>를 썼고, 토마스 만이 높이 평가하는 한스 피츠너가 클라이스트의 희곡 『하일브론의 케트헨Das Käthchen von Heilbronn』의 부수 음악을 작곡한다.
아드리안은 마침 파리 러시아 발레단의 지휘자 피에르 몽퇴(Pierre Monteux)로부터 <사랑의 헛수고>와 <우주의 경이>를 직접 지휘해 주지 않겠느냐는 초청을 받았지만, 전쟁의 발발로 초대에 응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세레누스는 전쟁이 곧 끝날 것이라고 위로하지만 아드리안은 독일이 성급한 ‘돌파구’를 찾으려다 큰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돌파구’(Durchbruch)라는 말에 큰 의미를 부여한다. 돌파구는 테오도어 아도르노가 말러의 음악에서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 개념이기도 하다. 그는 말러가 돌파를 통해 틈을 만들고 그 간극을 새로운 에너지로 채워 넣는 작업을 반복했다고 강조했다. 아드리안은 돌파구를 나비가 고치를 뚫고 나오는 것에 비한다. 여기서 아드리안이 클라이스트의 인형극 소고를 읽던 이유가 밝혀진다. 그것은 화자가 무용수 C라는 사람에게 들은 인형극 이야기이다.
C는 나에게 정교하게 조종되는 인형의 아름다움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해준다. 특히 무용을 하려는 사람은 인형극의 원리를 알 필요가 있다는 것이 C의 주장이었다. 이런 정교한 동작을 위해서는 수만 개의 줄이 필요하지 않느냐는 내 질문에 C는 모든 것이 줄의 놀음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고 귀띔한다. 인형의 중심을 장악하면 팔다리의 움직임은 저절로 따라 온다는 것이다. 중심의 직선 운동이 팔다리의 곡선 운동으로 바뀐다는 것이 골자였다.
그러려면 조종하는 사람이 무용가이거나 적어도 무용에 일가견이 있어야 하지 않느냐는 내 질문에 C는 작동하는 메커니즘은 단순하지만 조종하는 사람의 혼이 줄을 통해 인형에 전해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답한다. 곧 조종하는 사람과 인형이 함께 춤을 춰야 한다는 것이다. C는 어떤 기술자가 자신의 요구대로 인형을 만들어줄 수만 있다면, 자신이 당대 모든 무용가를 능가하는 인형극을 만들 수 있다고 단언한다. C는 영국 기술자들이 다리 없는 장애인에게 만들어준 인공 다리로 그들이 세련되게 춤을 추었다는 얘기를 들려준다. 화자는 그들이라면 그런 인형을 만들어줄 수 있겠다며 그들에게 어떤 점을 요구할지 묻는다.
C는 특별히 요구할 것은 없다고 답한다. 왜냐하면 그가 원하는 것은 ‘혼’(魂)이 움직임의 ‘중심’(重心)에 있는 인형이기 때문이다. 중심이 ‘중력’(重力)에 작용할 때라야만 인형이 꾸밈없이 움직일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인간이 지혜의 열매를 먹은 뒤로 꾸밈없는 움직임은 불가능해졌다. C는 인형은 중력의 지배를 받지 않기 때문에 땅에 발을 디디고 쉬지 않아도 되지만, 인간은 멈추지 않으려면 쉴 새 없이 움직여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여전히 나는 인형이 사람보다 더 춤을 잘 출 수 있다는 말에 동의하지 못한다.
C는 우아함을 두고 인형과 겨룰 수 있는 것은 오직 신뿐이라고 못 박는다. 나는 앎이 우아함을 방해하는 예를 알기에, 한 젊은이가 스스로 조각상의 아름다움을 흉내 내려다가 본래 가지고 있던 순수한 우아함을 잃게 된 일화를 소개했다.
C가 들려주는 일화는 곰과 펜싱을 한 이야기이다. 그가 직접 곰과 겨루어 꼼짝없이 당하고 자존심을 구겼던 이야기이다. 있을 법하지 않은 이야기를 믿느냐는 C의 질문에 나는 다른 사람도 아닌 C의 이야기이니 당연히 믿는다고 말했다. C는 내가 자신의 말을 이해했다며 현실 세계에서는 인식이 떨어질수록 아름다움이 빛난다고 말한다. 그리고 오목거울에 비친 영상이 무한히 멀어졌다가 다시 나타나듯이, 인식도 무한히 늘어나면 우아함이 늘어난다고 얘기한다. 곧 의식이 아예 없거나(인형의 상태) 의식이 무한할 때(신의 상태) 우아함은 최대가 된다는 뜻이다. 그 중간에 있어서는 어떤 성찰적인 이성도 우아함에 이를 수 없다는 것이 C의 주장이다. 결국 인간이 그런 상태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다시 한 번 선악과를 따먹어야 하며, 그것은 ‘세계사의 마지막 장’에 있을 일이라는 것으로 이야기가 마무리 된다.
아드리안이 클라이스트의 인형극론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에 세레누스는 크게 기뻐한다. 그는 클라이스트가 언급한 ‘우아함’이야말로 인본주의의 근간이고,독일 민족이 ‘돌파구’를 통해 도달해야할 가치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드리안에게 ‘우아함’이란 그저 재미를 위한 수단일 뿐 결코 지고지순한 목표가 아니다. 아드리안은 맘속으로 신의 경지에 도전장을 내민 것이다. 또한 그가 앞으로 주변 인물들을 인형처럼 다루게 될 것을 암시하는 듯하다. 친구가 짓는 야릇하고 냉소적인 미소가 전장으로 가는 세레누스의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
아래는 본인이 만든 인형극 놀이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