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이 단기에 끝나리라는 생각은 오판이었고, 독일은 점차 수세에 몰린다. 교착 상태에 접어들면서 희망도 엷어갔다. 장티푸스에 걸린 세레누스는 고향으로 돌아왔고 걱정스레 헤어졌던 아드리안과 조우했다. 세레누스는 부재중에 아드리안에게 두 여성 숭배자가 생긴 것을 알게 되었다. 피아노 선생 나케다이와 소시지 공장을 운영하는 유대인 로젠슈틸이었다. 둘 모두 아드리안의 음악에 대한 맹목적인 숭배자였고 궁핍한 전시(戰時)에 그를 위해 많은 식료품을 가져왔기에 아드리안의 형편은 풍족했고, 세레누스는 이들 틈바구니에서 질투심을 느낄 정도였다.
아드리안이 작곡한 <로마인 이야기>의 여러 작품 가운데 가장 뛰어난 부분은 ‘교황 그레고리우스의 탄생’을 그린 제5악장이었다. 이 기막힌 이야기는 뒷날 토마스 만이 『선택된 인간』(Der Erwählte, 1951)이라는 장편 소설로 다시 엮는다. 『파우스트 박사』에 그 내용을 미리 요약한 것이다. 이는 마치 또다른 장편『요셉과 그의 형제들』(Joseph und seine Brüder, 1933-43)을 쓰는 것으로 괴테가 한 다음과 같은 말을 실현한 것과도 같다. “창세기의 요셉 이야기는 참으로 아름답지만 너무 짧은 것이 아쉽다. 기회가 되면 좀 길게 써봤으면 한다.”
『선택된 인간』의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오랜 옛날 플랑드르 지방에 그리말트 왕과 바두헤나 왕비가 다스리는 나라가 있었다. 이들은 느지막이 쌍둥이 남매 지빌라와 빌리기스를 둔다. 왕비가 죽자 왕도 자식들을 남겨 놓고 세상을 떠난다. 어린 나이에 서로 의지하게 된 지빌라와 빌리기스는 세상에 비할 수 없이 아름다운, 서로 닮은 모습에 이끌리고 이내 근친상간을 저지르게 된다. 이에 태어난 아이는 ‘17일’만에 출생의 비밀이 적힌 서판(書板)과 함께 작은 통에 놓인 채 바다에 버려진다. 서판 내용은 다음과 같다.
“아이는 고귀한 태생이지만 혈육 간인 부모 사이에서 났습니다. 고모가 바로 어머니이며 아버지가 외삼촌입니다. 이를 숨기기 위해 아이를 바다에 띄워보내니….”
한 어부가 아이를 건지고, 그를 자식으로 키운다. 수도원장은 아이가 자신의 서판을 읽을 수 있을 때까지 그것을 보관하기로 하고, 아이에게 ‘그리고루스’라는 이름을 지어준다. 그리고루스는 수도원에서 학문을 익히며 고귀하게 자란다. ‘17세’가 되던 해 형제와 크게 싸우다 자신이 어부의 자식이 아니라는 출생의 비밀을 안 그리고루스는 수도원을 떠나 기사(騎士)가 되어 대륙으로 건너간다.
그가 도착한 곳은 아름다운 여왕이 이웃으로부터 강압적인 구혼을 받아 곤궁에 처한 도시였다. 그리고루스는 이 나라에 평화를 되찾아 주고, 여왕과 결혼한다. 그녀는 바로 그리고루스의 모친 지빌라였다. 그들은 첫째 딸을 낳고, 둘째를 임신할 때까지 ‘3년’ 동안 행복하게 살았다. 그러나 그리고루스는 늘 출생에 대한 불안을 떨칠 수 없었다. 어느 날 그가 숨겨둔 서판을 지빌라가 보게 된다. 아내가 어머니임을 안 그리고루스는 이 이중의 근친상간에 대한 속죄를 위해 고행을 떠난다. 지빌라 또한 돌이킬 수 없는 죄를 뉘우치기 위해 병자를 위한 구휼소를 세워 헌신한다.
방랑을 떠난 지 ‘3일’ 째 되는 날, 그리고루스는 한 어부의 안내로 호수 가운데 험한 바위섬에서 지내게 된다. 그는 바위 위에서 족쇄를 찬 채로 태양과 비바람, 눈 속에서 누더기를 걸친 채 견뎠다. 그는 작은 구멍에서 스미어 나오는 흰 액체를 마심으로써 가까스로 허기를 달래고 연명할 수 있었다. 그는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인 고독 속에서 하느님이 자신의 속죄를 받아들이고 죄를 씻는 날 은총을 받을 것이라는 희망을 가졌다.
‘17년’ 동안 참회한 그리고루스. 교황 자리가 비어 있는 상태에서 두 귀족인 프로브스와 리베리우스의 꿈에 한 마리의 양이 나타나 하늘의 계시를 전한다. 그들은 그리고루스를 교황으로 모시기 위해 그를 찾아 떠난다. 어부의 안내로 바위에 도착한 그들은 ‘17년’ 동안 자란 털과 수염이 비바람에 저항하며 딱딱해진, 한 고슴도치 인간을 만나게 된다. 그러나 프로브스와 리베리우스는 그와 대화를 나누며 자신들이 받은 계시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되고, 이내 참회자를 바위섬에서 데리고 나온다. 찌들고 거칠어졌던 그리고루스는 호수를 건너는 동안 신기하게도 40세에 가까운 훌륭한 남자의 모습으로 다시 회복된다.
그리고루스를 떠나보낸 지빌라는 그 동안 둘째 딸을 낳은 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힘쓰며 속죄한다. 그러던 중에 위대한 교황이 출현했다는 소식을 듣고 참회의 고백을 위해 그곳으로 간다. 아들과 어머니인 줄 모르고 한 때 남편과 아내로 지냈던 두 사람은 20여 년만에 눈물로 재회하고, 사랑과 고뇌, 참회와 은총에 대해 감사하며, 다 같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평화롭게 살아간다. 어머니가 죽은 뒤 거의 한 세대를 더 산 교황은 만민의 목자로서 더욱 명성을 떨쳤으며, 온 세계를 감복시켰다.
구원을 바라지 않는 회개와 그 보상에 대한 이 아름다운 이야기에 아드리안은 놀랍도록 훌륭한 음악을 붙였다. 더욱이 음악은 아드리안의 계획대로 인형극과 맞물려 더욱 큰 감동을 불러왔다. 초연 뒤에 아드리안의 서재에서는 친구들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아드리안은 예술이 최고의 수준을 유지하고 누구나 그것의 주인이 될 수 있는 새로운 시대의 과제에 대해 열변을 토한다.
그는 “음악 자체가 구원을 필요로 하는데 오랫동안 음악이 구원의 수단으로 간주되어 왔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그는 음악이 종교의 대체물이라는 지위까지 오른 결과, 이른바 교양 있는 청중과 더불어 고독한 지경에 봉착한 상태를 자조한다. 왜냐하면 그런 청중은 결국 사라질 것이고 음악이 보통 사람과 만나지 못하면 끝에 가서는 고사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예술 환경의 전면적인 변화가 필요하며 예술 자체가 다른 공동체에 봉사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른다. “고뇌가 없는 예술, 정신적으로 건전하고, 화려하지 않고, 비감하지 않고, 친근감을 주며 보통 사람들과 허물없이 만날 수 있는 예술”이 정답이다. 이는 곧 바그너의 악극 <뉘른베르크의 마이스터징거>가 고민하는 주제이기도 하다.
일동은 아드리안의 거시적인 안목에 감탄하고 동의했다. 그러나 세레누스는 아드리안과 같이 오만하고 고독한 존재가 공동체를 이야기했다는 것에 일단 감동하면서도, 그가 이야기하고 있는 예술이 자칫 전체주의적(바이셀의 음악이나 나치 시대의 음악과 같이)인 의도를 지닌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을 버리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