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네스 로데와 헬무트 인스티토리스는 1915년, 곧 제1차 세계대전 발발 이듬해에 결혼했다. 두 사람의 애정은 처음 만났을 때보다 전혀 깊어지지 않았지만 전쟁이라는 외부 요소가 결정을 부추긴 데에다가 동생 클라리사마저 집을 떠나 연극 무대에 데뷔한 것이 촉매가 되었다. 이네스는 기질적으로 동생도 없이 어머니와 한집에 사는 것이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로데 부인도 과년한 딸을 명망 있는 학자에게 시집보낸 것에 흡족했다.
딸을 시집보내기 위해 의도적으로 만든 사교 모임에서 로데 부인은 젊은 슈베르트페거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시시덕거리는 행동을 한다. 이네스에게 말할 수 없는 불쾌감과 거부감, 수치심을 느끼고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딸을 시집보낸 로데 부인은 뮌헨의 집을 처분하고 아드리안이 묵고 있는 슈바이게슈필 저택의 맞은 편 작은 집을 새 거처로 삼았다. 부인은 전쟁 통에 도시보다 물자가 풍족했던 시골로 친구들을 초대해 스스로 만족감을 느꼈다. 이네스와 인스티토리스 사이에는 첫 딸에 이어 쌍둥이 딸 자매가 태어났다.
모든 것이 문제없는 듯이 보였지만, 사실은 진심어린 사랑과 믿음의 결합이 아닌 건성으로 연명하는 가족이었다. 이네스는 교양 있는 중산층에 안주하기에는 분열적이고 충동적인 성격이 잠재된 여인이었다. 세레누스는 세 딸이 아버지를 닮은 이유는 아이들을 잉태할 때 어머니가 큰 정성을 기울이지 않은 탓이라고 생각했다. 그 정도로 이네스의 속마음은 남편에게 무심했다.
이네스의 내재된 불만족이 커갈수록 슈베르트페거를 향한 그녀의 마음도 커만 갔다. 문제는 어정쩡한 슈베르트페거였다. 그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다가 이네스의 욕망을 점점 키우게 된다. 이네스는 모범적인 아내와 엄마의 역할을 해내면서 슈베르트페거와의 불륜을 위장했다. 그러나 아슬아슬한 이중생활은 그녀를 불안하게 했고, 외모를 상하게 했다.
이네스와 슈베르트페거는 자신들의 관계에 안주하면서 비밀을 철저히 지키려는 맘도 옅어졌고, 오히려 자신들의 대담한 행운을 남들이 알아주기를 바라는 상황이기까지 했다. 세레누스는 헬무트 인스티토리스 또한 사실을 알고도 묵과했다고 생각했다.
1916년 어느 날 세레누스는 이네스와 단둘이 얘기할 기회가 생긴다. 이네스는 무던하고 유혹과는 거리가 먼 세레누스에게 맘속에만 담아 둔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세레누스는 들어주는 역할에 제격이었다. 이네스는 세레누스에게 자신을 경멸하고 외면할 것인가 하고 물었고, 세레누스는 정색하며 이네스가 겪고 있을 죄책감과 압박감을 잘 알고 있다고 답한다. 이네스는 사랑의 달콤한 쾌감이 두려움과 죄책감을 능가하기 때문에 견디는 것이며 온 마음을 바쳐 이 감정을 간직하고 싶다고 말한다.
이네스는 ‘정신적 가치’와 ‘감각적 욕망’이 결합해 우울함과 만족감을 오가고 있었다. 세레누스는 그녀의 상대가 객관적으로 그 정도의 위험을 감수할 만한 상대가 아닐 수 있다는 의문을 조심스레 던졌지만, 이네스의 사랑은 객관적인 잣대가 중요하지 않은 주관적인 것이었다. 그녀는 언젠가 그가 자신을 떠날 것이며 그때가 되면 그도 자신도 그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말했다.
세레누스에게 이 이야기를 들은 아드리안은 언젠가와 같이 “그 친구는 이 문제에서 깨끗하게 벗어날 걸세”라는 알 듯 모를 듯한 말을 했다.
톨스토이는 <크로이처 소나타>에서 아내의 외도를 질투해 그녀를 살해한 남편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소설에서 아내는 애인이 연주하는 베토벤의 소나타를 듣고 격정에 빠진다. 레오시 야나체크 또한 같은 배경을 가지고 현악 사중주를 쓴다. <크로이처 소나타>는 사랑의 당사자에게는 열정에 불 붙이는 촉매가 되고, 오쟁이진 남편에게는 분노의 도화선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