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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준호 May 20. 2019

스위스에 온 러시아의 눈 아가씨

림스키코르사코프와 안데르센의 만남

한국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나라 스위스(라틴어로 헬베티아이다). 초콜릿과 하이디의 나라. 동화 같은 스위스에서 역사상 많은 위인이 중요한 시기를 보냈다. 그들이 알프스에서 받은 값진 영향과 도움을 살펴보기 위해 2017년 연말연시 열흘 동안의 꿈속으로 돌아간다. 몽트뢰야말로 이번 스위스 여행의 하이라이트이다.


‘쇼는 계속되어야 한다The show must go on’는 모토를 가장 강렬하게 보여주는 것은 파월과 프레스버거의 영화 <분홍신>이다.

파리 몽마르트르에서 소개했던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아직 얘기하지 않았다. 몬테카를로 오페라에서 안데르센 원작 발레 <분홍신>의 공연을 앞둔 주인공 비키는 정신 분열 끝에 투신으로 삶을 마감한다. 극장 안에 비극적인 소식이 전해지고, 발레단장 레르몬토프가 관객들에게 말한다.

“우리는 다시는 그녀를 볼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공연은 그녀가 있었을 때와 똑같이 무대에 올리겠습니다.”

실제 댜길레프의 무용수였던 레오니드 마신이 영화에서 신기료 장수로 등장해 발레를 이끈다. 비키가 있어야 할 자리는 ‘라임라이트’만이 비춘다. 쇼는 계속되어야 한다. 그 이유는 비키나 조르주 돈, 프레디 머큐리와 같은 사람들이 모두 ‘요정의 입맞춤’을 받은 ‘선택된 사람chosen one’이었기 때문이다. ‘라임라이트’는 채플린의 걸작 제목이기도 하다.


스트라빈스키는 스승 림스키코르사코프보다 그가 가장 경계했던 라이벌 차이콥스키를 더욱 존경한다고 강조한다. 스승의 사후 그 일파가 자신이 아닌 글라주노프를 후계자로 높여 세운 것에 대한 노골적인 불만인 것이다. 자신에 대한 홀대로 스승에게 받은 영향을 지우려 한 것은 배은망덕인가, 아니면 지극히 인간적인 복수심의 발로인가?


이런 심리를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 앞서 살펴본 <요정의 입맞춤>이다. 차이콥스키의 서거 35주기라는 다소 뜬금없는 시점에, 스위스 호반을 배경으로 한 안데르센의 동화에 곡을 붙인 것이다. 차이콥스키가 바이올린 협주곡 등을 쓴 바로 그곳에서, 더욱이 음악은 온통 열네 곡의 차이콥스키 소품을 재구성한 것이었다. 그는 존경하는 선배와 자신 모두 요정의 입맞춤으로 연결된, 운명 같은 사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인생이 얄궂다. 스트라빈스키가 그토록 발버둥 쳤지만, <요정의 입맞춤>은 어쩌면 그가 림스키코르사코프로부터 그리 멀리 벗어나지 못했음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니콜라이 림스키코르사코프는 1882년 <눈 아가씨>라는 오페라를 발표한다. 러시아말로는 ‘스네구로츠카Snegurochka’라고 부르는 동화 캐릭터이다. 이 이야기는 원래 아파나시예프의 민담집에 들어 있는데, 당대 최고의 극작가 알렉산데르 오스트롭스키가 희곡으로 발표했다. 1873년 연극을 초연할 때 그 부수음악을 쓴 사람이 바로 차이콥스키였다.

차이콥스키 극부수음악 가운데 '곡예사의 춤'

림스키코르사코프는 9년 뒤에 같은 소재로 차이콥스키에게 도전장을 낸 셈이다. 그는 오스트롭스키의 희곡을 거의 그대로 오페라 대본으로 삼았다. 몇 달 뒤면 장남이 태어날 베이스 가수 표도르 스트라빈스키는 친구의 야심작에서 눈 아가씨의 아버지 역할을 맡았다. 데드 마로즈, 곧 서리 할아버지는 러시아 민담의 산타클로스쯤에 해당한다. 눈 아가씨는 서리 할아버지와 봄의 요정의 딸이다. 서리에 약간의 훈풍을 더하면 눈이 되는가 보다.

눈 아가씨와 그의 아버지인 서리 할아버지

<눈 아가씨>의 줄거리는 앞서 본 안데르센의 「눈의 여왕」이나 「얼음 처녀」와는 완전히 다르다. 순수한 눈 아가씨는 아직 진실한 사랑의 의미를 모른다. 부모인 서리 할아버지와 봄의 요정은 그녀가 태양신 야릴로의 흑심에 넘어가지 않도록 숲에 숨겨두고 키운다. 나이찬 딸을 영영 숨길 수 없자 부모는 믿을 만한 사람에게 눈 아가씨를 맡기기로 한다. 보빌이라는 사람이 적임자로 낙점을 받는다. 여기까지가 서막이다.

옛 소련의 애니메이션은 상당한 수준이다. 소리와 영상을 리마스터링 했으면 좋겠다

인간 세상에 들어온 눈 아가씨는 마냥 신기하고 즐겁기만 하다. 눈 아가씨와 양치기 렐, 인간 처녀 쿠파바와 젊고 부유한 상인 미스기르의 사각관계는 셰익스피어 《한 여름밤의 꿈》의 네 남녀처럼 얽히고설킨다. 렐을 좋아하던 눈 아가씨는 갑자기 나 몰라라 하고, 쿠파바의 약혼자 미스기르는 눈 아가씨를 보자 맘이 바뀐다. 모두가 눈 아가씨가 아직 사랑의 참뜻을 모르기 때문에 빚어진 일이다.

파리 오페라의 무대가 영상물로 발매되기를

제2막은 황제의 궁전. <루슬란과 류드밀라>의 첫 장면처럼 후슬리를 연주하는 악사들이 등장한다. 황제는 여름 냉해가 15년 동안이나 계속되어 걱정이다. 황제는 백성들이 사랑의 열정을 잃은 탓에 태양신 야릴로가 화를 내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때 미스기르가 연인을 져버린 파렴치한으로 잡혀온다. 미스기르는 눈 아가씨를 본 사람은 누구나 반하지 않을 수 없을 거라고 억울해한다. 황제 역시 눈 아가씨를 보고는 그 말을 인정한다. 황제는 눈 아가씨야말로 태양신의 화를 누그러뜨릴 적임자라 생각한다. 양치기 렐도 태양의 힘을 빌면 눈 아가씨의 마음에 사랑이 깃들 것이라 하므로, 미스기르가 자신이 그 일을 해보겠다고 나선다.

아이다 가리풀리나 데카 데뷔 음반에서 가장 중요한 곡이다

제3막에서 선남선녀들의 즐거운 잔치가 열린다. 양치기 렐은 아름다운 쿠파바를 배필로 고른다. 렐이 다른 사람에게 가버려 낙담하는 눈 아가씨 앞에 미스기르가 나타나 구애한다. 정작 눈 아가씨는 미스기르에 아랑곳없이 쿠파바와 짝을 맺은 렐을 야속해한다. 렐은 눈 아가씨도 때가 되었으니 진정한 사랑을 찾으라고 충고한다. 눈 아가씨는 어머니 봄의 요정에게 사랑을 가르쳐 달라고 애원한다.


마지막 4막은 태양신 야릴로의 골짜기이다. 봄의 요정은 꽃의 요정을 불러 사랑의 의미를 갈망하는 눈 아가씨를 달래게 한다. 어머니는 딸에게 태양을 조심하라고 이른다. 그때 미스기르가 나타나 달콤한 말을 하자 눈 아가씨도 그에게 안긴다. 마침내 뜻을 이룬 미스기르가 그녀와 함께 황제에게 달려간다. 떠오르는 태양에게 기도하던 황제에게 눈 아가씨가 자신도 미스기르를 사랑한다고 말한다. 그 순간 두 눈에 태양을 본 눈 아가씨는 녹아서 사라진다. 미스기르가 절망해 호수에 몸을 던진다. 황제는 이 모든 소동이 봄의 요정이 서리 할아버지와 15년을 보내는 바람에 벌어진 일이라며 앞으로 냉해가 없을 것이라 말한다. 산 위에 태양신 야릴로가 곡식단을 가지고 나타나니 백성들이 모두 찬양한다.

눈 아가씨를 재해석한 스트라빈스키: 봄의 제전_마사 그레이엄 댄스 컴퍼니

오스트롭스키의 《눈 아가씨》는 이렇게 계절의 순환과 풍요제에 얽힌 러시아 민담을 그리고 있다. 바로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이 이 안에 들어 있는 것이다. 마지막 곡식단을 든 야릴로가 누구인가? ‘간택된 처녀’를 바쳐야 할 태양신이 아니던가.

크리스티안 예르비의 아버지 네메 예르비의 림스키 모음곡집

다 잊힌 오페라를 가져다가 너무 큰 의미를 부여하는 것 아닌가 싶은 분은 림스키코르사코프가 모음곡으로 만든 <눈 아가씨>를 들어보시라. 가장 유명한 것은 ‘곡예사들의 춤’(9:32)이다.


네메 예르비가 지휘한 음반의 표지는 레핀 그림의 좌우를 바꿔놓았다. 폭소하는 대장 부리바와 그 뒤의 표도르 스트라빈스키가 반대편에 가 있다. 오래전 KBS가 주말 프로그램을 소개하는 자체 광고에서 배경으로 즐겨 썼던 음악이 ‘곡예사들의 춤’이나 글린카의 ‘루슬란과 류드밀라 서곡’이었다. 눈 아가씨가 부르는 첫 아리아 ‘덤불 아래 자라는 딸기’는 아이다 가리풀리나의 데뷔 음반에 실려 있다.

로젠블랏 리사이틀의 아이다

그녀는 2017년 파리 오페라에서 타이틀롤을 맡았다.

오솔길로 사라진 아가씨

그러는 사이 발길은 몽트뢰 시내를 지나 시골로 향하고 있다. 멀리 시용 성을 바라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길롱이라는 산간 마을로 올라가는 ‘푸니’를 탔다. 나폴리 민요 ‘푸니쿠니 푸니쿨라’에서 온, 산악 궤도차를 부르는 말이다. 한 시간에 두어 번 다닐까 하는 무인차이다. 작은 객차에 탄 시골 사람 가운데 젊은 아가씨가 있다. 마침 그녀가 가는 오솔길이, 딱히 정한 곳 없는 내 마음에 들어 보였다. 잘 가꿔진 정원이 있는 저택 쪽이다. 조금 거리를 두고 모른 채 따라갔는데 아마 내가 무서웠나 보다. 뒤를 힐끗 돌아보더니 눈 아가씨처럼 총총 사라진다. 어차피 더 따라갈 마음도 없었다. 모퉁이를 돌자 눈앞에 내가 원하던 광경이 나타났으니!

눈 아래 보인 시용 성과 코딱지 섬

저 멀리 레망 호수의 끄트머리에 고성이 우뚝하다. 이 호수에 놀러 왔던 시인 바이런이 보고 ‘시용의 죄수’라는 유명한 소네트를 썼던 곳이다. 안데르센의 <얼음 처녀>에서 루디와 바베테가 이 성에 구경 왔을 때 대모의 조카가 바베테에게 건넨 책이 바로 바이런의  시집이다. 성에서 저 멀리 배인 듯 아닌 듯 작은 섬이 보인다. 눈을 씻고 봐도 다른 섬은 없으니 저곳이 안데르센이 말한 세 아카시아 나무가 설 만한 그곳일 터이다. 지금은 큰 고목 하나만 보인다. 결혼식 전날 루디가 떠내려가는 배를 잡으러 물로 뛰어들었던 섬, 바베테가 밤새 목놓아 두려움과 슬픔에 울부짖었던 섬이다.

섬 이름은 일 드 페(Île de Peilz): 동영상 배경음악은 마땅히 <요정의 입맞춤>이어야 하거늘, 내가 드론도 사야 하나?

차이콥스키의 ‘폭풍우 속의 자장가’로 시작해서 ‘그리움을 아는 이만이’로 끝을 맺는 스트라빈스키의 발레 <요정의 입맞춤>은 바로 이곳에서 빚어진 안데르센의 동화에서 탄생했다. 그러나 이 음악은, 어쩐지 늘 암울한 시대의 전조가 되었다. 1928년 파리 초연 무렵 세계 경제에는 이미 대공황의 그림자가 드리운다. 여러분은 아직 우르스 비트머의 소설 《어머니의 여인》을 기억하시는가? 바젤에서 지휘자 에트빈을 돕던 클라라 몰리나리의 아버지가 이때 주가 폭락의 충격으로 급사했다. 이듬해 여름 발레 뤼스의 단장 세르게이 댜길레프도 베네치아에서 유명을 달리했다. 스트라빈스키는 댜길레프와 직전에 사소한 일로 다툰 뒤로 화해에 이르지 못했기에 더욱 아쉬웠다.

1937년 조지 발란신이 아메리칸 발레단과 <요정의 입맞춤>을 재연했을 때 미국은 조지 거슈윈을 잃었고, 비행선 힌덴부르크 폭발 사고를 겪었다. 그러나 이 정도는 야욕을 키워가는 히틀러의 위협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스트라빈스키 또한, 같은 해에 월트 디즈니가 만든 첫 장편 만화영화 <백설공주>가 앞으로 펼칠 새로운 시대와 그로 말미암아 구시대 예술이 맞게 될 황혼에 대해 아는 바가 없었으리라. 오늘날 디즈니 만화영화 <겨울왕국>을 모르는 사람은 없지만 <요정의 입맞춤>을 아는 사람은 드물지 않은가. 발란신이 1950년 11월에 뉴욕에서 <요정의 입맞춤>을 재연했을 때 ‘병사 이야기’는 극동의 한 작은 나라에서 진행 중이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세상이 언제 한 순간이나마 평온했던 적이 있었을까?

같은 스위스 그랜드 호텔인데, 홍제동에 있던 것(현 힐튼)과는 사뭇 다르다

아쉬운 발걸음을 뒤로하고 몽트뢰 역 앞의 스위스 그랜드 호텔을 돌아본다. 아르누보 양식의 실내가 눈에 익다. 어둑어둑한 로잔으로 돌아와 저녁을 먹은 뒤 바젤로 돌아오니 이내 밤이 깊었다. 내일 다시 거처를 옮겨야 한다.

파리 공연 전막. 새들의 합창(4:10)을 부르는 어린이 합창 맨 뒷줄 어린이는 눈 아가씨 복장이다. 아이 귀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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