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베에서 만난 안데르센과 스트라빈스키
2018년 1월 2일 아침 일찍 바젤에서 다시 로잔으로 가는 기차에 올랐다. 앞서 H를 배웅하기 위해 서둘러 로잔을 떠났지만, 레망 호숫가는 이번 여행 가운데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스트라빈스키가 이곳에서 여러 작품을 구상하고 작곡했을 뿐만 아니라 삶의 풍파를 피해 이곳에 온 많은 예술가들과 어울리기도 했다. 전철로 30분 거리인 로잔에서 몽트뢰까지 호숫가에 다닥다닥 붙어 있는 작은 마을, 퓔리, 브베, 클라렝스가 그곳이다.
《나사의 회전》을 쓴 헨리 제임스는 매사추세츠의 작은 도시 콩코드(Concord)를 “미국에서 가장 큰 시골”이라고 불렀다. 지도 위에 겨우 보일 정도이지만, 그곳에서 랠프 왈도 에머슨, 올콧 부녀, 헨리 데이비드 소로, 너새니얼 호손에 이르는 선구자들이 미국 선험 철학과 문학의 초석을 다졌다.
그 못지않게 브베와 클라렝스를 다녀갔거나 이곳에서 살았던 예술가는 끝을 헤아릴 수 없다. 후자만 놓고 보면 찰리 채플린과 클라라 하스킬,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이고리 스트라빈스키가 대표적이다. 나는 ‘선험’이라는 어려운 개념을 여러 음악 감상실에서 설명했다. 영어로는 트랜셴덴털(transcendental)이다. 영어사전에서 이 단어를 찾으면 선험이라는 뜻과 함께 ‘초월’이라는 뜻이 함께 나온다. 리스트의 <초절기교 연습곡Transcendental Études>은 아마도 일본의 번역을 따른 것이리라. 그냥 <초월 기교 연습곡>이면 될 것을!
초월은 ‘뛰어넘는다’는 것이고 선험은 ‘경험에 앞선다’는 것이다. 결국 천재를 규정하는 말이다. 19세기 미국은 천재를 필요로 했다. 유럽에 비해 낙후된 현실을 점프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미국에 앞서 독일의 사정이 그랬다. 이탈리아와 프랑스에 비해 뒤진 나라를 ‘레몬 꽃 피는 이상향’으로 이끌 선도자가 필요했던 것이다. 괴테와 모차르트, 베토벤이 바로 때맞춰 등장한 독일의 천재였다.
콩코드의 랠프 왈도 에머슨은 친구 브론슨 올콧의 딸 루이자 메이 올콧에게 선물을 주었다. 괴테가 쓴 예술가 성장소설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였다. 이 책에 그들에게 필요한 모든 것이 들어 있었다. 루이자 메이 올콧은 자전 소설 《작은 아씨들》에 그 부분을 녹여낸다. 뉴욕에서 가정교사를 하던 주인공 조세핀 마치는 독일에서 온 베어 교수를 만난다. 어느 날 그가 부르던 괴테 시에 붙인 ‘레몬 꽃 피는 나라를 아시나요Kennst du das Land’를 듣고부터, 자신도 그런 글을 쓸 수 있다면 (당장 죽어도 좋으련마는) 하는 꿈을 꾸게 된다.
여자 형제가 없는 나는 어릴 때 《작은 아씨들》을 자주 읽곤 했다. 흑백시대부터 내 또래 배우들이 나오는 버전까지 영화화된 것도 여러 차례이다. 책과 여러 영화가 얼버무려져서 마치 내가 겪은 일처럼 생생한 장면이 많다. 그 가운데 준 앨리슨과 로사노 브라치가 각각 조와 베어 교수로 나오는 영화를 좋아한다. 브라치가 이국 억양으로 노래를 불러주는 장면은 그야말로 초월적이다. 이탈리아 사람인 그가 피아노를 치고 독일말로 부른 노래를 곧바로 영어로 번역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부분은 원작과 다르다. 올콧은 ‘레몬 꽃 피는 나라를 아시나요’를 이야기했지만, 영화에서 부른 노래는 ‘그리움을 아는 이만이Nur wer die Sehnsucht kennt’이다. 괴테 소설에서 미뇽이라는 여주인공인 부르는 네 노래 가운데 두 곡이다. 왜 영화는 원작과 다른 노래를 가져왔을까? 아마도 차이콥스키의 노래가 영화 개봉 당시 미국 사람들에게 매우 유명했기 때문일 것이다.
미뇽의 시들은 슈베르트부터 후고 볼프에 이르기까지 독일 가곡 작곡가라면 누구나 곡을 붙였을 만큼 유명하다. 러시아의 차이콥스키도 그랬다. 차이콥스키의 ‘그리움을 아는 이라면’은 영어로 번역되어 많은 가수들이 노래했다. 콘트랄토 마리안 앤더슨, 베이스 에치오 핀차로부터 재즈 가수인 프랭크 시내트라와 새러 본까지 쟁쟁한 이름이 이 노래를 취입했다. 나는 나탄 밀스타인이 바이올린으로 반주한 에치오 핀차의 노래를 매우 좋아한다. 핀차는 마지막 “어지러워라, 타오르는 불길이 송두리째 나를 삼키네”라는 핵심구절(아래 3:24)을 직접 노래하지 않고 밀스타인에게 연주하도록 한다. 이 오데사 태생의 거장이 바로 발란신과 반 클리프 앤 아펠의 만남을 주선한 것이다.
도대체 브베에 와서 무슨 얘기를 하는 것이냐고? 바로 이 차이콥스키의 노래 ‘그리움을 아는 이만이’가 스트라빈스키의 발레 <요정의 입맞춤Le baiser de la fée>의 클라이맥스에 사용되는 것이다. <요정의 입맞춤>은 1928년 차이콥스키의 서거 35주기(사실 특별히 기릴 만한 숫자는 아니다)를 기리기 위해서 무용가이자 예술 후원자인 이다 루빈스타인이 스트라빈스키에게 위촉한 발레이다. 스트라빈스키는 여기에 차이콥스키의 여러 피아노 곡과 가곡을 인용했다.
이번에도 원작은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이다. ‘눈의 여왕’이라는 제목으로 유명한 동화도 있지만 그 이야기와는 좀 다른 버전이다. 먼저 널리 알려진 「눈의 여왕」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착한 소년 카이는 악마가 만든 거울의 파편이 눈과 가슴에 박혀 마음이 비뚤어진다. 카이는 눈의 여왕의 아름다움에 이끌려 그의 그림자 안에 살게 된다. 착한 게르다는 사라진 친구 카이를 찾아 험난한 모험을 계속한다. 낯선 나라와 도둑 소굴, 라플란드를 거쳐 눈의 여왕 나라에 도착한 게르다. 그곳에서 카이를 만난 게르다는 기쁨의 눈물을 흘리고 그 눈물이 카이의 가슴에 박힌 악마의 파편을 쓸어낸다. 카이도 게르다의 노래를 듣고 눈물을 흘려 눈에 박힌 파편도 떨어진다. 집에 돌아온 소년과 소녀는 어느덧 성년이 되었지만 마음은 어린이처럼 순수했다. 계절도 어느덧 여름이었다.
안데르센의 상상력이 봄 여름 가을 겨울을 관통하는 북유럽 신화와 결합해 그의 동화 가운데 가장 장대한 서사시를 이룬다. 이 이야기를 뼈대로 한 것은 디즈니 만화영화 <겨울왕국Frozen>이었다. 안데르센이 눈의 여왕의 모델로 삼은 사람은 앞서 파리에서도 언급했듯이 자신의 마음을 받아주지 않은 소프라노 제니 린트였다.
그녀의 이름은 목소리와 더불어 잊혔지만 아마도 <겨울왕국>의 주인공 엘사가 부르는 밀리언 히트송 ‘렛 잇 고’와 더불어 화려하게 부활한 것이 아닐까?
안데르센의 또 다른 이야기 「얼음 처녀」를 살펴보자. 이 또한 「눈의 여왕」만큼이나, 안데르센 동화치고는 호흡이 길다. 스위스 그린델발트가 배경인 「얼음 처녀」에는 조반니 세간티니 그림이 딱 어울린다.
루디는 어려서 부모를 잃고 할아버지와 염소를 키우는 소년이다. 루디의 아빠는 우편배달을 하다가 사고로 돌아가셨다. 루디는 아기 때 엄마와 차가운 눈구덩이에 빠졌는데, 혼자 살아남았다. 그 뒤로 웃음을 잃었다. 아빠를 돕던 개 아욜라가 유일한 친구이다.
만년설 빙하 속 수정 궁전에는 얼음 처녀가 산다. 처녀는 사람들이 루디를 자신에게서 빼앗아 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루디가 구덩이에 빠졌을 때 입을 맞췄기 때문에 그가 멀리 가지는 못할 것이라 말한다. 해님의 딸들은 얼음 처녀에게 결코 그러지 못할 것이라고 항변한다. 그녀들은 얼음 처녀가 루디에게 남긴 입맞춤을 지우려고 아침마다 루디에게 와서 입을 맞췄다.
여덟 살이 된 루디는 좀 더 나은 교육을 받기 위해 할아버지를 떠나게 되었다. 루디는 아이거 봉이 있는 그린델발트를 떠나 마터호른이 우뚝 솟은 발레(Valais)로 갔다. 사냥꾼인 아저씨가 루디의 새 보호자였다. 아저씨는 유능한 사냥꾼이고 길 안내자였지만, 뜻밖의 산사태까지 이길 수는 없었다. 루디는 소년 가장이 되었다. 스무 살이 된 루디는 발레 제일의 사냥꾼이었다.
온 마을 처녀가 늠름하고 잘생긴 루디를 흠모했지만, 정작 루디는 좋아하는 방앗간 집 딸 바베테에게 말도 걸어보지 못했다. 마침내 용기를 낸 그는 바베테를 찾아갔지만 그녀와 아버지는 인터라켄에서 열린 사냥 대회를 구경하러 가고 없었다. 루디는 사냥대회에 나갔고 우승을 했다. 바베테도 방앗간 주인도 루디를 한눈에 좋아했다. 그러나 아버지는 딸을 무일푼의 젊은이에게 줄 수 없다고 했다. 루디가 불가능하다고 했던 골짜기의 독수리 새끼를 잡아온다면 모를까라는 그의 말에 루디는 그리 하겠다고 다짐했다.
친구들과 목숨을 건 모험 끝에 독수리를 잡은 루디는 마침내 바베테와 약혼을 허락받는다. 모두가 바베테의 대모가 사는 몽트뢰로 인사를 갔다. 루디와 바베테는 바이런이 시에서 읊었던 시용성(城)도 구경했고, 거기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작은 섬을 바라보았다. 세 그루의 아카시아 나무가 있는 작은 섬이었다. 몽트뢰에서 만난 대모의 조카는 바베테에게 바이런의 시집을 건네 루디의 질투를 샀다. 바베테는 자신을 향한 루디의 순정을 보고 기뻐했지만 그만 도를 지나쳐 루디를 화나게 했다.
화가 난 루디는 돌아오는 길에 산중에서 아름다운 처녀를 만난다. 그녀가 주는 포도주를 마시자 더욱 그녀에게 끌린다. 그녀는 루디에게 약혼반지를 자신에게 주면 입을 맞춰주겠다고 답한다. 루디가 그녀와 보낸 잠깐의 황홀경에서 깨어났을 때 주위엔 차가운 얼음밖에 아무것도 없었고, 약혼반지도 사라졌다.
루디도 바베테도 서로에게 서운하게 한 것을 후회했다. 화해는 어렵지 않았고 둘은 다시 행복한 결혼식 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결혼식은 바베테의 대모가 있는 몽트뢰에서 열기로 했다.
결혼식 전날 밤, 얼음 처녀가 보낸 환영이 바베테의 꿈속으로 들어온다. 꿈에서 루디의 아내가 된 바베테는 어느 날 대모의 조카를 따라 집을 나선다. 루디에게 죄책감을 느낄 때 조카는 사라지고 없다. 바베테는 절벽 위에 보이는 루디에게 손을 내밀었지만, 그것은 루디가 산양을 잡으려고 만든 허수아비였다. 바베테는 고통스러워하며 계곡으로 몸을 던졌다. 그 순간 꿈에서 깨어났다.
그날 저녁 바베테는 레망 호숫가에 있는 작은 섬에 가보고 싶었다. 아카시아 나무 세 그루가 서 있을 만한 작은 섬이었다. 루디가 배를 저어 함께 도착했다. 두 사람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노을을 보았다.
그러는 사이 두 사람이 타고 온 배가 떠내려갔다. 루디가 헤엄쳐 배로 향하는 던 중 물속에서 둥근 물체를 발견했다. 루디는 그것이 약혼반지라고 생각하고 손을 뻗었다. 얼음 처녀가 루디의 발에 입을 맞췄다. 바베테는 루디를 밤새 두려움에 떨며 루디를 기다렸다. 바베테는 얼음 처녀 발아래 루디가 누워 있는 것을 보았다.
안데르센의 <눈의 여왕>과 <얼음 처녀>는 다른 동화이다.
마침 2019년 4월부터 7월까지 서울역사박물관에서 한-덴마크 수교 60주년 기념 <안데르센, 코펜하겐 1819> 전시회가 열린다.
그건 그렇고 <얼음처녀> 이야기는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