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레치마르는 아드리안의 집안과 줄곧 가까이 지내왔다. 아드리안은 신학도일 때도 방학 때마다 몇 차례 그를 찾았고, 그의 부모도 종종 부헬의 농장에 아들의 음악 선생을 초대했다. 다만 어머니 엘스베트 레버퀸은 말을 더듬는 크레치마르를 다소 불편해 했다.
크레치마르는 신학을 버리고 음악가의 길을 가기로 한 아드리안을 강력하게 옹호하며 자신의 판단이 옳음을 강조했다. 어머니는 아들의 머리를 가슴에 끌어안았다. 이성(머리)을 감성(가슴)으로 감싼 것이다.
아드리안은 스승과 편지를 주고받으며 음악가, 그 중에서도 작곡가의 길을 꿈꾼다. 그 가운데 바그너의 <뉘른베르크의 마이스터징거> 가운데 제3막의 전주곡에 대한 내용은 각별하다.
그 곡은 세상의 무의미함에 대해 온갖 희비가 엇갈리는 인간사의 무의미함에 대해 우직하고도 아주 인상적으로 묻고 있습니다. 이 수수께끼의 답을 알 수 없다는 현명한 체념과 비통한 심정을 표현하면서 얼마 동안 첼로 소리가 퍼져 나갑니다. 그러다가 적절하게 선택된 특정한 지점에 이르러, 어깨가 들먹일 정도로 깊은 호흡을 표현하면서 관악기들이 합창 송가에 합류합니다. 장엄한 감동과 화려한 화음을 동반하면서, 금관악기들의 온갖 위엄과 절제된 힘에 이끌려서 말입니다. 그리하여 이 낭랑한 선율의 주제는 거의 정점에 다다르게 됩니다. 그러나 경제성의 원리를 고려하여 처음에는 아직 그 정점을 피합니다. 정점을 앞두고 피해 가며, 정점을 아끼고 유예하고 가라앉히지만, 그래도 너무나 아름답습니다. (중략) 처음에는 교묘하게 정점을 피해 가기 때문에 듣는 이의 감정을 요동치게 하고 ‘아!’하는 탄성까지 자아내는 효과가 그만큼 더 크지요. 그러다가 드디어 거침없는 베이스 튜바의 화음이 다른 악기들의 막강한 지지를 받으며 중단 없이 상승해서 정점에 도달하는 영광을 안게 됩니다. 그러고 나서는 완성된 것을 당당하고 만족스럽게 뒤돌아보면서 결말을 향해 노래 부릅니다.
<뉘른베르크의 마이스터징거>의 주인공인 한스 작스의 체념과 달관을 그린 전주곡을 언어로 묘사한 토마스 만의 감각은 놀랍다. 아드리안은 이렇게 천재적으로 옛것을 새것으로 만든 솜씨에 감탄한다. 점점 음악에 끌리는 아드리안에게 크레츠마르는 어서 선택을 하라고 부추긴다. 아드리안은 1905년 겨울 라이프치히로 갔다.
세레누스 차이트블롬은 포병으로 군에 입대했다. 그는 아드리안이 신학을 버리고 음악을 택한 것이 옳은 결정이라고 생각했다. 라이프치히에서 크레치마르 선생과 조우한 아드리안은 친구와 계속 편지로 근황을 주고받는다. 아드리안은 정식 교육이 아닌 독학으로 대위법과 화성법을 배우기 시작한다. 그의 교본은 일찍이 독학으로 배웠던 하이든과 같이 요한 요제프 푹스(Johann Joseph Fux, 1660-1741)의 『파르나수스로 오르는 계단Gradus ad Parnasum』과 카를 필리프 에마누엘 바흐의 음악들이다. 그는 화성법보다는 대위법에 더 끌린다고 고백한다. 곧 음악사를 거스르는 취향을 보여주는 것이다. 다만 그 둘이 불가분의 관계라는 점을 알기 때문에 어느 쪽에 치우치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아드리안은 ‘악마’와의 만남에 대해서도 친구에게 고백한다. 슐렙푸스를 닮은 짐꾼에게 이끌려 아우어바흐의 술집을 찾았던 것, 급기야 사창가에 발을 디뎌 에스메랄다라는 매춘부를 만나게 된다. 그녀의 이름은 곧 아드리안의 아버지가 들려주었던 자연과학 이야기 속의 나비(헤테라 에스메랄다)와 같다. 아드리안은 성급히 몸을 돌려 빠져나왔다.
아드리안의 편지는 세레누스에게 의미심장했다. 그 자신은 고대의 자유분방한 성(性)을 몸소 체험하고자 평범한 여인과 교제하며 금단의 열매를 맛보았다. 그는 아드리안과 같이 오만함과 순수한 금욕으로 무장한 친구는 그런 경험을 좀처럼 받아들이기 힘들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반대로 그와 같이 드높은 정신은 도리어 정반대의 동물적인 충동과 맞닿아 있었다. 세레누스는 아드리안의 흥미가 다시금 그 매춘부를 찾아가게 하리라 짐작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에스메랄다’는 빅토르 위고의 소설 『파리의 노트르담』에 등장하는 집시 여주인공이기도 하다. 그녀의 치명적인 아름다움이 상징하는 것은 중세의 어두운 마성이다. 토마스 만이 위고의 소설로부터 뭔가 가져오려한 이미지가 있다면 바로 그것이다.
프란츠 슈미트(Franz Schmidt, 1874-1939)는 쇤베르크와 한 해에 태어난(당연히 홀스트, 아이브스와도 같다) 오스트리아 작곡가이다. 그는 말러의 작풍을 이어받은 작곡가인데, 만년에 나치에 협력했다는 오해로 사후 잊혔다가 점차 복권되고 있다. 베를린 필하모닉의 새 유대계 지휘자 키릴 페트렌코가 취임에 즈음해 그의 곡을 연주한 것만 보아도 슈미트의 부상을 알 수 있다.
슈미트의 네 편의 교향곡과 오페라 <노트르담>, 오라토리오 <일곱 개의 봉인을 한 책Das Buch mit sieben Siegeln>은 토마스 만의 소설과 깊은 연관을 찾아볼 수 있다. <노트르담>의 ‘간주곡’만은 오랜 세월 사랑을 받았던 음악이다.
세레누스는 군 복무 중에 아드리안과 떨어져 지냈다. 그 뒤로는 1908년부터 1909년 사이 고전교육 답사를 하는 중에, 그리고 다시 1913년까지 아드리안이 뮌헨에 거주하는 동안 떨어진다. 그 뒤로는 1930년 아드리안이 정신을 놓을 때까지 줄곧 곁에서 그와 그의 예술을 지켜보았다.
라이프치히의 크레츠마르 문하에서 아드리안은 마침내 자신의 목소리를 담은 작품을 내놓기 시작한다. 그는 드뷔시나 라벨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는 평을 들은 교향시 <바다의 불빛>(Meerleuchten)을 작곡했다. 그러나 아드리안에게 이 작품은 그저 피아노를 치기 전에 손을 푸는 것 정도의 범작이었다. 그는 본격적인 작곡 이전에 그저 재미삼아 패러디를 해 본 것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