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 가운데는 에버하르트 슐렙푸스(Eberhard Schleppfuss)라는 인물도 있었다. 이름처럼 다리를 끄는 그는 검은 방토에 수도사 모자를 쓰고 다니며, 학생들과 마주치면 “모든 것을 바치는 종입니다!”(Ganz ergebener Diener)이라고 인사하곤 했다. 이는 악마 메피스토펠레스가 하던 인사말이었다.
슐렙푸스는 노골적으로 악마론을 언급하는 학자였다. 그는 악은 신의 창조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생길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말한다. 신이 자신의 창조를 완전하게 하기 위해 피조물에 신을 배반할 수 있는 자유의지를 부여했고, 이는 곧 죄악에 노출됨을 뜻한다는 말이었다.
슐렙푸스의 주요 테마 가운데 하나는 성(性)이었다. 그는 인간이 유혹과 성욕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존재라며 그것을 죄악시한다. 인간이 성으로부터 해방됨으로 근대로 들어섰다고 생각하면 그것을 죄악시하는 것도 마녀 사냥의 시대, 중세의 시각인 것이다. 슐렙푸스는 성을 악마로 상정하면서 여성 또한 악마화한다. 이는 아드리안을 여성(곧 사랑)과 떼어놓는 악마의 계획이 시작되었음을 뜻한다. 슐렙푸스의 장에 ‘13’이라는 수를 부여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아드리안과 세레누스는 빈프리트 회원들과 함께 튀링겐 숲을 여행한다. 바흐가 태어난 아이제나흐(Eisenach)와 루터와 탄호이저의 성(城) 바르트부르크(Wartburg)가 이들의 중요한 목적지였다. 신학도들의 소풍은 종종 역사와 문화 그리고 종교에 대한 토론으로 이어졌다. 세레누스는 신학도들 사이에서 왠지 손님처럼 느껴지는 아드리안을 발견했고, 결국 그의 예감대로 아드리안은 4학기를 채우기 전에 신학을 그만두기로 결정했다. 그가 라이프치히로 간 것은 1905년 겨울이었다.
내부 촬영이 금지된 바르트부르크의 가상 투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