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드리안은 ‘종교시대’(중세)와 ‘문화시대’(르네상스)라는 크레치마르의 구분에 깊은 인상을 받는다. 크레치마르는 예술이 세속화되어 예배로부터 분리된 것이 피상적인 에피소드와 같다고 말했지만, 아드리안은 거기서 더 나아간다. 예술이 교회로부터 해방되어 자율적이 되면서 오히려 과도한 짐을 짊어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는 예술이 다시 짐을 벗고 겸손하게 제자리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어느 자리로 가야하는가는 아직 알 수 없는, 그리고 예술가 토마스 만이 『파우스트 박사』에서 던진 영원한 수수께끼이다.
‘음악과 시각’이라는 제목의 또 다른 강연은 소리가 구현하는 이미지에 대한 수준 높은 것이었다. 크레치마르는 이른바 ‘톤 페인팅’(tone-painting)에 해당하는 음악들에 대해 분석했다. 그러면서 그는 음악이 청각에 호소하긴 하지만 그 본질은 감각을 넘어선 정신세계에서 작동하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청각에 의존하게 마련이며 음악이 가장 강력하게 감각에 호소할 수 있는 방법은 오케스트라이다. 오케스트라는 비단 청각에 그치지 않고 모든 감각을 동원해 아편과 같은 역할을 한다. 그런데 한 악기가 예외적으로 음악의 본질이랄 수 있는 정신적인 깊이를 지향한다. 바로 피아노이다. 무릇 음악의 본질에 도달할 수 있는 매개인 피아노를 배우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 크레치마르 강연의 요지이다.
‘음악의 기본 요소’에 대한 크레치마르의 강연은 어릴 적 아드리안의 아버지에게 들었던 ‘원소의 탐구’와 연결되어 ‘요한 파우스트 박사’라는 전설의 연금술사를 떠오르게 한다. 크레치마르는 야심찬 바그너(Richard Wagner)가 음악을 신화와 결합시켜 사물과 음악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도구를 창조했음을 이야기한다. 아울러 바그너를 흠모했던 브루크너(Anton Bruckner)가 바그너에게서 신화와 도구를 제외한 순수 음악 요소만을 추출하고자 했다는 예를 든다. 새로운 창조와 환원에 대한 요약은 거의 파우스트의 주 종목인 연금술과 같은 경지로 들린다.
끝으로 크레치마르는 전통으로부터 자유로운 새로운 예술의 가능성을 목사이자 음악가였던 바이셀(Johann Conrad Beissel, 1691-1768)의 예를 들어 강의한다. 독일에서 미국으로 건너가 재세례파를 창시한 바이셀은 실존인물로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1685-1750)와 비슷한 연배이다. 그는 음악을 몰랐지만 자신의 신도를 이끄는 데 음악이 가장 효과적이라는 생각 아래 독학으로 공부해 직접 작곡법을 고안했다. 바이셀은 3화음을 중심으로 그 안에 있는 음은 ‘주인’으로 밖에 있는 음은 ‘하인’으로 나누었다. 리듬 또한 규칙을 통일한 소절에서 벗어나 유동적이고 자유롭게 가사를 붙였다.
바이셀의 독특한 작곡은 재세례파 밖으로는 영향을 미치지 못했지만, 실제로 음악당에서 들리는 소리는 독특한 감동을 불러왔다고 크레치마르는 전한다. 그는 자신의 아버지가 이들의 노래를 듣기 위해 5킬로미터를 말로 달려가기도 했고, 유럽의 어느 오페라 극장에서 들은 것보다 영혼에 호소하는 감동적인 예술이라 말했다고 술회했다.
정상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이라면 시대의 흐름과 무관하게 고지식하고 맹목적인 법칙을 가지고 개인적인 완성에 도달한 바이셀을 어처구니없게 생각했겠지만, 크레치마르는 음악사의 발전 단계를 거슬러 홀로 선 그를 매우 높이 평가했다. 이는 어린 아드리안에게도 깊은 영향을 미쳤고, 뒷날 그가 음렬음악(Serial Music)을 고안하는 데 단초가 된다. 결국 크레치마르의 교육은 아드리안의 음악이 마성을 띠게 하는 어두운 힘이었던 셈이다. 그의 강연을 듣고 돌아오는 길에 소년들은 의견을 나눈다. 세레누스는 음악에 대해 심드렁하고 삐딱한 아드리안의 태도가 마음에 걸린다. 그가 음악을 ‘사랑’해서가 아니라 그저 ‘재미’ 때문에 관심을 두고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