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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준호 Nov 22. 2018

8a. 베토벤 강연

제8장: 크레치마르의 음악 강연 (상)


제8장은 『파우스트 박사Doktor Faustus』 전체 가운데 가장 핵심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앞으로 아드리안이 음악가가 되는 데 필요한 소양이 어디서부터 비롯되었는지 보여주는 장면이다. 특히 베토벤 만년 음악에 대한 토마스 만의 서술은 압도적이다.


아드리안과 세레누스가 숙부의 악기점 외에 좀 더 수준 높은 음악 교육을 받게 된 것은 카이저스아셔른의 오르가니스트였던 벤델 크레치마르를 통해서였다. 당시 20대 후반이던 크레치마르는 미국에서 역이민 온 음악가로 작곡에도 재능이 있었다. 특별한 것이 없는 카이저스아셔른의 문화 환경에서 크레치마르의 존재감은 작지 않았다. 그의 오르간 솜씨는 보통 이상이었고, 특히 음악 강연으로 소년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크레치마르는 시골에서 쉽게 접하기 힘든 기이한 음악까지 섭렵한 비범한 인물이었다. 다만 그의 주제가 보통 사람들의 수준을 넘어서는데다가, 심하게 더듬는 말씨 때문에 강연이 인기를 끌지는 못했다. 크레치마르는 사람들의 취향에 영합하지 않고 스스로의 과제에 몰두해 사람들의 관심을 유발시키려 했다. 세레누스와 아드리안 일행은 크레치마르의 뜻에 부합하는 모범적인 청중이었다.


세레누스는 베토벤의 두 가지 작품에 대한 강연을 통해 크레치마르로부터 받은 영향을 요약한다. 베토벤의 마지막 피아노 소나타 32번(Op 111)와 <장엄미사>(Missa Solemnis, Op 123)에 대한 것이다. 두 작품은 모두 베토벤이 최 만년에 쓴 걸작이지만 당대에는 거의 이해받지 못했고, 뒤에도 그 가치를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만년의 베토벤은 고전주의 소나타 양식의 한계에 이르러 많은 고민을 했고, 예술이 정신적(종교적) 가치를 상실해가는 시기에서 창작의 벽에 부딪혔다는 점에서 이 두 작품은 뒤에 작곡가 아드리안이 겪게 되는 창작 불모의 문제를 예고한다.


다시 말해 바로크 시대까지 음악이 종교에 봉사할 때는 감동이 좀더 쉽게 보장되었다. 교회의 이름으로 많은 것이 가능했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음악의 공간이 교회를 벗어나 콘서트홀과 살롱으로 확대되면서 자율성을 얻게 된 대신, 교회음악에 당연히 내재되어 있던 정신적인 깊이를 다른 곳에서 찾아야 했던 것이다. 베토벤은 홀로 황야에 선 작곡가였고, 스스로 그것을 알았기 때문에 진정 고독함을 느낀 거인이었다. 그는 아무도 강요하지 않은 고민을 자청할 수밖에 없었다.


크레치마르의 강연에 따르면 베토벤이 마지막 피아노 소나타를 일반적인 경우와 달리 세 악장이 아닌 두 악장으로 마무리한 것은, 제자 신틀러의 같은 질문에 대한 베토벤의 심드렁한 답변과 같이 “시간이 없어서”가 아니다. 사람들은 베토벤의 창작력이 한계에 이르렀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로 베토벤은 단순히 작품목록에 하나를 더 추가하는 것이 아니라, 보편적인 양식과 자기만의 개성을 화해시키는 원대한 고민을 하고 있었다

다성음악의 미래와 창작력의 고갈에 대해 고민하는 작곡가 팔레스트리나. 한스 피츠너의 오페라

크레치마르는 여기서 니체식의 다양한 대립쌍을 제시한다. 중세를 지배하던 다성음악(polyphony)과 이를 대체한 르네상스의 화성음악(homophony), 주관과 객관, 수직과 수평과 같은 이분법이 베토벤의 마지막 소나타를 통해 하나로 용해된다. 베토벤은 가장 내면적인 후기 음악들을 푸가와 같은 전통적인 양식에 접목함으로써 막다른 길에 접어든 창작에 새로운 세계를 열어주었다. 결국 크레치마르가 분석한 소나타 32번 2악장은 소나타 양식의 완성이자 종결이 된다. 

클라우디오 아라우의 베토벤 소나타 32번 2악장

<장엄미사>를 작곡하던 베토벤의 모습도 인상적이다. 루돌프 대공의 대주교 취임까지 완성하기로 했던 이 음악은 이내 그 기한을 훌쩍 넘기고 만다. 베토벤은 ‘크레도’(사도신경) 악장과 씨름하고 있었다. 저녁을 거른 그는 늦게까지 작곡에 매진했다. 두 하녀가 자연의 힘을 거스르지 못하고 잠들고 말았다. 자정이 넘어 차갑게 굳은 저녁밥을 본 베토벤은,


도대체 한 시간도 자지 않고 기다려 줄 수 없단 말인가?

라고 외치며 노발대발했다.

고갱이 그린 올리브산의 그리스도: 한 시간만 기다려 주겠니?

이튿날 동이 트기 무섭게 두 하녀는 괴팍한 주인을 버리고 집을 나갔다. 그는 다음 날 점심까지도 아무것도 먹지 못한 채 ‘크레도’와 씨름했다. 노래 부르고 울부짖고 발을 굴렀다. 문가에서 듣는 사람은 섬뜩하기까지 한 광경이었다. 문 앞에 나온 베토벤의 모습은 마치 대위법의 마귀들과 사생결단을 하고 나온 듯 무시무시했다. 그를 정신 차리게 하고 밥을 먹이는 데 애를 써야했다.

악마와 사생결단 하는 성 안토니우스. 마티아스 그뤼네발트의 이젠하임 재단화 가운데

‘베토벤과 푸가’라는 제목의 강연에서 크레치마르는 푸가라는 고답적인 형식에 대한 베토벤 평생의 고민을 면밀히 다룬다. 사람들은 베토벤이 다성음악의 가장 고양된 양식인 푸가를 쓸 능력이 없었다고 비아냥거렸다. 그러나 실제로 그는 일찍부터 푸가를 써왔으며 그것을 단지 작곡 기법으로만이 아니라, 작품의 내재적인 필요에 따른 것으로 승화시키고자 노력했고 <장엄미사>의 ‘글로리아’와 ‘크레도’를 통해 마침내 그 뜻을 이뤘다. 카이저스아셔른의 강당에서 그저 말로만 들었을 뿐인 <장엄미사>에 대한 이야기는 아드리안이 앞으로 가게 될 두 가지 진로를 요약한다. 곧 ‘종교’와 ‘음악’이다.

베토벤 장엄미사 전곡 가운데 ‘크레도’ (26:20)


<니케아-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

우리는 한 분이신 성부 하나님을 믿습니다. 그분은 전능하셔서, 하늘과 땅과, 이 세상의 보이고 보이지 않는 모든 것을 지으셨습니다.
우리는 한분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분은 모든 시간 이전에 성부에게서 나신, 하나님의 독생자이십니다.
그분은 하나님에게서 나신 참 하나님이시요, 빛에서 나신 빛이시요, 참 하나님에게서 나신 참 하나님이시며,
성부와 같은 분으로, 낳음과 지음 받은 분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분을 통해서 만물이 지음 받았습니다.
그분은 우리와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하늘로부터 내려오시어, 성령의 능력으로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태어나, 참 인간이 되셨습니다.
우리 때문에 본디오 빌라도 치하에서 십자가 형을 받아, 죽임을 당하고 묻히셨으나, 성서의 말씀대로 사흘만에 부활하셨습니다.
그분은 하늘에 올라 성부 오른편에 앉아 계십니다. 그분은 산 이와 죽은 이를 심판하러 영광 가운데 다시 오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의 나라는 끝이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이시며, 생명을 주시는 성령을 믿습니다. 성령은 성부로부터 나오시어, 성부와 성자와 더불어 예배와 영광을 받으시고,
예언자들을 통하여 말씀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하나이고, 거룩하며, 보편적이고, 사도적인 교회를 믿습니다. 우리는 죄를 용서하는 한 세례를 믿습니다.
우리는 죽은이들의 부활과, 오고 있는 세계에서 살게 될 것을 믿습니다.
아멘.


베이스와 테너의 선창으로 ‘한 분이신 하느님을 저는 믿나이다’(Credo in unum Deum)를 시작한다. 열띤 합창은 ‘창조되지 않고 나시어 성부와 한 본체로서 만물을 창조하셨음을 믿나이다’(Genitum, not factum, consubstantialem Patri: per quem omnia facta sunt)를 강조하며, ‘성자께서 저희 인간을 위하여, 저희 구원을 위하여 하늘에서 내려오셨음을 믿나이다’(Qui propter nos homines, et propter nostram salutem descendit de coelis)에서 또 한 번 음의 그림을 펼친다.


그러고는 전곡 가운데 가장 신비로운 음악이 플루트의 선율에 이끌려 등장한다. 팔레스트리나를 연상케 하는 도리아 선법의 ‘성령으로 인하여 동정 마리아에게서 육신을 취하시어’(Et incarnatus est de Spiritu Sancto ex Maria Virgine)가 그것이다. 멀리 바그너의 무대신성축전극 <파르지팔>의 느낌을 내다보게 하는 이 음악은 네 독창에 의해 지속되고, 마침내 테너의 당당한 선언이 뒤따른다. ‘사람이 되셨음을 믿나이다’(ET HOMO FACTUS EST). 그리스도 이전과 이후의 역사를 가름하듯이 팔레스트리나를 뚫고 베토벤이 등장하는 순간이다.

고야가 고발한 나폴레옹 군대의 학살: 1808년 5월 3일

가슴 벅참을 추스를 새도 없이 수난의 고통이 시작된다. 그러나 베토벤의 십자가형은 르네상스 화가들이 그린 것과 같은 범접할 수 없는 성화가 아니라, 실제로 핍박 받는 고야의 그림 속 민중과 같은 모습이다.

그뤼네발트가 맥각병 환자를 모델로 그린 그리스도

때문에 ‘사흗날에 부활하시어 하늘에 올라 성부 오른편에 앉는 것’(Et resurrexit tertia die, secundum Scripturas. Et ascendit in coelum: sedet ad desteram Patris)은 성자 한 분이 아니라 들라크루아의 자유의 여신이 이끄는 자유를 얻은 모든 사람들인 것이다.

"십자가의"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화가 드라크루아가 그린 민중을 이끄는 자유

남성 합창이 ‘아 카펠라’로 외치는 ‘부활’의 감격은 노래라기보다는 탄성이다. 베토벤이 ‘크레도’에서 가장 공을 들이는 부분은 ‘내세의 삶을 기다리나이다. 아멘’(Et vitam venturi saeculi. Amen)이라는 마지막 문구이다. 다시 한 번 푸가의 긴밀한 연결고리가 영생에 대한 신앙을 장렬하게 기도하는 가운데, ‘아멘’의 제창이 하늘을 향해 퍼져 나간다. 이생에서는 이루지 못한 소박한 꿈들에 대한 마지막 바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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