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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준호 May 04. 2023

해무리

2023년 5월 음반리뷰

ALPHA911 상드린 피오가 부르는 독일, 프랑스 가곡집 

어디 가?

소프라노와 반주자는 ‘친밀한 여행’이라는 음반 제목 아래 슈베르트, 리스트, 볼프, 클라라 슈만, 릴리 불랑제, 뒤파르크, 드뷔시의 가곡을 망라했다. 앞장선 피오에게 팔을 뻗은 카두슈의 사진은 마치 에우리디케를 되돌리려는 오르페오처럼 보인다. 그도 그럴 것이 여행의 최종 행선지는 ‘죽음’이기 때문이다. 치명적인 여정은 어둡거나 절망적이지만은 않다. 두 사람은 시인 파블로 네루다의 가르침에 따라 여행을 즐기기로 맘먹었기 때문이다. 프루스트처럼 기차역에서 스치는 향수의 냄새를 추억하며, 보들레르처럼 사랑의 본질을 통해 불멸에 이르는 길을 탐색한다.

연주: 상드린 피오 (소프라노), 다비드 카두슈 (피아노)

Alpha 그라모폰 에디터스 초이스

ALPHA913 무궁동 - 바로크에서 현대까지의 건반음악

물건임!

알파 데뷔 앨범(The Bells)에서 시대를 초월한 종소리를 탐구했던 로마뉴크는 같은 방식으로 이번에는 ‘무궁동’이라는 주제를 파고든다. 피아노뿐만 아니라 하프시코드와 포르테피아노, 버지널, 신시사이저가 총동원됨은 물론이다. ‘그침 없는 움직임’은 자연계에서 존재하지 않는 신의 영역이다. 로마뉴크는 수록곡들이 뿜어내는 반복적이고 지속적인 파장이 연주자와 청중 모두를 압도하는 집단 최면을 불러오는 모습에서 무궁동을 보았다. 유명한 슈베르트의 ‘즉흥곡’과 바흐의 ‘토카타’에서 미니멀리즘의 존 애덤스나 필립 글래스, 즉흥연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음파가 무궁동을 만든다.

연주: 앤소니 로마뉴크 (피아노)

Alpha  

원래 무궁동은 페르페투움 모빌레이다

CVS065 비발디: 12개의 파리 협주곡 

플레프니아크는 폴란드 이름이다

필사가보다 빨리 작곡한 비발디였던지라, 많은 판본의 작품이 일일이 어떤 계기로 작곡되었는지 알 수 없다. 파리 도서관 소장 협주곡집 가운데 열 곡은 1715년 독일 귀족 폰 우펜바흐가 의뢰한 것이다. 비발디는 여기에 프랑스 취향의 두 곡(처음과 마지막 트랙)을 더해 1723년 베네치아 주재 프랑스 대사 뱅상 랑게에게 헌정했다. 1739년 드 브로스가 이 곡들을 파리로 가져갔다. 최근 연구는 이 곡이 신성로마제국 카를 6세와 프란츠 슈테판 3세의 후원에 대한 보답일 가능성을 제기한다. 어느 쪽이거나 ‘왕의 오페라 악단’의 연주는 연구 성과 못지않게 황홀하게 귀를 사로잡는다.

연주: 스테판 플레프니아크 (바이올린, 지휘), 오케스트르 드 로페라 루아얄

Chateau de Versailles 

비발디는 외계인?

CVS086 륄리: <프시케> 전곡 

카노바의 작품 <큐피드의 입맞춤으로 살아나는 프시케>는 루브르와 에르미타시에 있다

작곡가 륄리와 극작가 몰리에르는 루이 14세의 양팔과 같았지만, 몰리에르가 샤르팡티에와 가까워지면서 서로 반목한다. 륄리는 피에르 페랭에게 오페라의 전권을 넘겨받아 몰리에르에게 복수한다. 이전에 몰리에르에게 간주곡을 써줬던 <프시케>를, 토마 코르네유의 대본으로 전막 오페라로 만든 것이다. 비너스는 인간이면서 자신의 아름다움에 도전하는 프시케를 벌주려고 아들 큐피드를 보내지만, 큐피드 또한 그녀에게 반한다. 우여곡절 끝에 사랑의 보답으로 프시케가 불멸을 얻는 해피엔딩. 역사적 해석으로나 영감 넘치는 드라마로나 이보다 나은 앨범을 기대하긴 힘들다. 

연주: 크리스토프 루세 (지휘), 르 탈랑 리리크

Chateau de Versailles BBC뮤직매거진 초이스 

영상도 나왔으면...

LBM041 브람스: 네 손을 위한 피아노 작품집

끝이라니 아쉽네

코로나 기간 동안 모험적으로 감행된 에리크 르 사주의 브람스 실내악 전곡집 마지막 앨범. 피아노 두오집은 슈만의 <유령 변주곡> 주제(바이올린 협주곡의 2악장에도 쓸)에 붙인 브람스의 변주곡으로 시작해, 이사도라 덩컨풍의 춤사위가 될 16개 왈츠와 두 사중창집 <사랑의 노래 왈츠>, <새로운 사랑의 왈츠>로 첫 장을 마무리한다. 두 번째 장은 온전히 원곡이 피아노 두오인 <헝가리 춤곡>에 할애했다. 다니엘 바렌보임의 요청으로 벨기에의 크리스 멘이 제작한 피아노는 음량과 깊이, 울림 등 모든 면에서 교향악적인 동시에 내면적인 브람스의 음악을 전하는 데 부족함이 없다.

연주: 에리크 르 사주; 테오 푸셰네레 (피아노)

B Records

대단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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