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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준호 Jun 05. 2023

변함없는 가치 (1)

2023 잘츠부르크 부활절 음악제의 <탄호이저>

체크인하는데 호텔 직원이 묻는다. 잘츠부르크는 처음이냐고. 1993년에 오고 30년 만이라고 했더니, 흠칫 놀라는 듯하더니 “그때와 똑같다”라고 재치 있게 답한다. 정작 그는 채 서른 살도 안 되어 보인다. 유럽에 숱하게 드나들었지만, 정작 많은 사람이 동경하는 잘츠부르크는 오랫동안 찾지 않았다. 여러 이유 가운데 너나 할 것 없이 우르르 몰려다니는 ‘무리’에 섞이고 싶지 않은 맘도 하나였다.

2023년 잘츠부르크 부활절 축제 <탄호이저> 예고편. 영상은 바이에른 국립 오페라 공연.

그런 고집을 돌려 나를 잘츠부르크로 다시 부른 것은 지난봄 부활절 축제에 막을 올린 바그너의 오페라 <탄호이저>였다. 청소년기에 바그너 작품 가운데 제일 처음 들었고, 듣자마자 온몸이 굳은 듯 한동안 헤어나지 못했다. 그뿐만 아니라 그때까지 음악 감상의 조류를 크게 돌려놓은 것이 <탄호이저>였다. 교향악에서 무대음악으로, 고전에서 현대로! <탄호이저>는 잘츠부르크를 다시 갈 적당한 핑곗거리였다.

내가 처음 전곡으로 접한 <탄호이저>. 1989년 바이로이트 실황. 당시는 소리만 들었다.

이번 공연을 지휘한 안드리스 넬손스 또한 나와 같은 경험을 털어놓는다. 그는 1978년 라트비아에서 태어났다. 당시는 소련 치하였지만 거슬러 올라가면 중세 독일 기사단이 정착한 땅이기도 하다. 그의 아버지는 르네상스 음악 연주 단체를 창단한 합창 지휘자였다. 아버지의 단원 사이를 기어 다니던 넬손스는 다섯 살 때 처음 <탄호이저>를 관람했다. 소년은 레코드로 음악을 완전히 알고 극장에 갔지만, 탄호이저가 죽는 장면에서는 울음을 터트리지 않을 수 없었다. 이것이 그가 어릴 적 겪은 가장 큰 음악 경험이었다. 

아기 넬손스가 처음 들은 것으로 기억하는 볼프강 자발리슈의 음반. 1962년 바이로이트 실황.

그밖에 이번 공연은 인기 절정의 테너 요나스 카우프만이 탄호이저 역할에 데뷔하는 것으로 세간의 관심을 모았지만, 사실 그보다 나의 관심을 끈 것은 로메오 카스텔루치의 연출이기도 했다. 먼저 어떤 이야기인가 살펴보자.     

1막: 바르트부르크의 기사 탄호이저는 비너스 여신과 환락의 동굴에 머무느라 신성한 의무 따위는 까맣게 잊는다. 어느 날 문득 각성한 그는 사랑의 여신을 떠나 연인 엘리자베트 공주와 동료 기사들이 기다리는 성으로 돌아온다. 
서곡 ⓒ Monica Rittershaus
2막: 애타게 그를 기다리던 공주와 절친한 친구 볼프람이 탄호이저를 반갑게 맞이한다. 그러나 행복도 잠시, 탄호이저는 신성한 노래 경연에서 다시 육체의 쾌락을 찬양하는 노래를 불러 좌중의 분노를 산다. 결국 쫓겨난 그는 로마 교황에게 용서받을 때까지 돌아올 수 없다. 
쫓겨나는 기사 ⓒ Monica Rittershaus
3막: 탄호이저 없는 바르트부르크는 의미 없다. 엘리자베트는 자신이 희생할 터이니 탄호이저를 용서해 달라고 성모께 기도한다. 몰래 그녀를 연모하는 볼프람 앞에 탄호이저가 돌아온다. 교황은 속죄를 청하는 그에게 지팡이에서 싹이 나야 용서받을 수 있다고 답했다. 절망한 그는 차라리 비너스에게 돌아가겠다고 털어놓는다. 그때 엘리자베트의 장례 행렬과 함께 탄호이저가 구원받았다는 합창이 들린다. 그는 그녀의 시신 위에 쓰러진다.      
저녁별의 노래 ⓒ Monica Rittershaus

21세기를 사는 지금 혹자는 거부감이 들 것이다. “어디서 여성을 공동체의 전리품 삼는 케케묵은 이야기를 다시 끌어내는가?” 하고 말이다. 분명 <탄호이저>는 순결한 여성을 이상화하고 그녀의 희생을 통해 구원을 꾀한다는 전근대적인 설정을 뼈대로 한다. 그러나 그런 고리타분함에도 이 작품을 거부할 수 없는 것은 바그너의 음악 때문이다. 탐미적인 관현악과 무아지경의 화성은 언어를 초월하고 진부한 주제마저 잊게 한다. 어쩌면 그것이 앞서 말한 주제 위에 존재하는 주제이다.

 

연출자 카스텔루치는 철학적 안목으로 작품을 다루는 데 정평이 나 있다. 그는 ‘메타 연극’, 곧 연극에 대한 연극으로 이름을 알렸다. 덕분에 과대망상 연출자들이 오페라를 해괴하게 망치는 데에 지친 극장들이 앞다퉈 그를 초대한다. 함부르크의 바흐 <마태 수난곡>, 잘츠부르크의 모차르트 <돈 조반니>, 엑상프로방스의 모차르트 <레퀴엠>과 말러 교향곡 2번 ‘부활’이 그 결과물이다. 카스텔루치는 극장과 작품의 존재 이유에 질문을 던지고 답한다. 어떻게?

비너스 동굴의 탄호이저 ⓒ Monica Rittershaus

1막에서 비너스의 쾌락에 도취했던 탄호이저는 갑자기 외친다. “지나쳐! 그만!” 끝없는 허영에 지친 그가 멈춘 지점에서 비너스가 연인 엘리자베트로 변한다. 아름다움을 또 다른 아름다움으로 대체할 수밖에 없는 것이 인간의 숙명이자 한계이다. 우리를 둘러싼 끝없는 상품의 행렬도 결국 그와 같다. 유행이 멈춘다면 SNS도 유튜브도 더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카스텔루치는 벽에 난 구멍을 통해 여체 일부를 관찰하며 상의 탈의한 궁사들이 그곳에 일제 사격을 반복하게 한다. 더는 쏠 자리가 없을 때까지 사격은 이어진다. 탄호이저가 경험한 관능의 끝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2막 신성한 노래 경연에서 비너스를 동경하는 탄호이저. 함부르크의 <마태 수난곡>에서 카스텔루치는 유사 십자가형을 재현했다. 몸무게가 각기 다른 사람을 철봉에 오래 매달리게 해서 팔에 가해진 무게와 고통을 측정한다. 또 실제라면 빠져나갔을 혈액량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어 수난의 고통을 간접 체험시켰다.


https://youtu.be/4lst2N5uFss (함부르크의 "오소서, 달콤한 십자가여")


잘츠부르크의 카스텔루치는 영혼이 빠져나간 몸뚱이처럼 마네킹 조각을 무대에 늘어놓았다. 탄호이저는 그저 잠시 탈선한 것일까? 바그너는 만족을 모르는 인간 욕망의 민낯을 보여주었다. 카스텔루치는 탄호이저를 타르를 뒤집어쓴 맞수와 싸움 붙인다. 그를 환경오염에 고통받는 인류쯤으로 보았다면 틀렸다. 타르 인간은 곧 탄호이저 이면이다. 원정을 떠난 기사의 가장 큰 적은 유혹에 굴복하는 자기 자신이지 않은가!     

<엑스칼리버>의 아서왕과 <파르지팔>의 암포르타스가 그랬듯... ⓒ Monica Rittershaus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나를 맞은 호텔 직원 말대로 30년 동안 잘츠부르크는 변하지 않았을까? 곱씹어볼 말이다. 작고 한적하지만, 외지인이 끊이지 않는 곳. 소수의 클래식 음악 애호가가 모차르트와 잘츠부르크 축제를 보러, 그보다 많은 대중이 <사운드 오브 뮤직> 속 동화 같은 풍경에 젖고자 잘츠부르크에 온다. 얼핏 변하지 않는 것은 그 두 가지이다.


잘츠부르크 축제는 1920년에 시작한 이래 매년 여름 전 세계 클래식 애호가의 이목을 집중케 했다. 초기부터 빈 필하모닉이 축제에 상주했다. 잘츠부르크 태생의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이 빈 국립 오페라(빈 필하모닉이 반주하는)의 음악감독이 되면서 빈 필하모닉과 축제는 더욱 밀착했다. 그런데 1964년 카라얀이 빈 국립 오페라와 반목하면서 그와 잘츠부르크 축제도 인연을 잃었다. 마치 탄호이저가 떠난 바르트부르크성을 연상케 한다.

1967년 바그너의 <발퀴레>와 베토벤의 <장엄미사>로 잘츠부르크에 돌아온 카라얀

대신 카라얀은 1967년 부활절 축제를 창설해 자신의 악단 베를린 필하모닉과 잘츠부르크에 돌아왔다. 그리고 여름 축제의 주축인 모차르트와 슈트라우스의 작품 대신 바그너의 오페라를 무대에 올렸다. 경쟁하되 침범하지는 않은 것이다. 오늘날에도 여름 축제와 부활절 축제는 다른 조직이 운영한다. 베를린 필하모닉은 그때부터 2012년까지 잘츠부르크의 부활절을 책임졌다. 그러나 2010년부터 불거진 운영진의 공금 횡령과 수사, 자살 기도로 부활제의 이미지는 퇴색했다. 급기야 사이먼 래틀이 베를린 필과 함께 바덴바덴 부활절 축제로 옮긴 뒤 2013년부터 작년까지는 크리스티안 틸레만이 이끄는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가 잘츠부르크를 지켰다.


올해 축제에는 안드리스 넬손스가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를 데리고 왔다. 넬손스와 틸레만은 맞수이다. 넬손스가 틸레만에게 잔소리 듣고 여름의 바이로이트 바그너 축제를 떠났다는 후문도 들린다. 공동체 내의 이런 알력 다툼이 고스란히 <탄호이저> 2막의 내용이다. 

화살은 어디로...

누구나 시대를 떠받칠 탄호이저와 같은 재목이 되고 싶어 한다. 카라얀, 넬손스, 카우프만, 카스텔루치가 모두 그런 사람들이다. 그러나 바그너 <탄호이저>의 질문은 좀 더 본질적이다. 사랑과 욕망의 결정체인 인간, 나아가 공동체가 어떻게 그것을 긍정적인 에너지로 바꿀 수 있느냐가 오래된 전설을 지배하는 핵심 주제이다. 잘츠부르크가 놓지 말아야 할 가치는 그런 문제 해결을 위한 사명감이다. 구성원의 갈등은 피할 수 없지만, 원만한 해결이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탄호이저>처럼 오래된 고전을 늘 새것처럼 거듭나게 해야 한다.      

영원과 멸종을 주제로 만든 엑상프로방스의 모차르트 <레퀴엠>

3막에서 카스텔루치는 탄호이저와 엘리자베트의 사랑을 시간을 초월하게 만든다. 어차피 지팡이에서 싹이 나진 않을 테니 두 사람은 이생에서는 결합할 수 없다. 그것은 지평선 너머에서나 가능할 일이다. 카스텔루치는 두 뼛가루 더미 아래에 탄호이저와 엘리자베트를 맡은 두 가수의 이름, ‘요나스’와 ‘마를리스’를 적었다. 가수들은 가루를 서로 섞는다. 무대 전면에 쓴 “수백만 년이 흘러간다”라는 문구 앞 허공에 화살이 멈춰 있다. 거꾸로 이 화살은 두 사람이 언젠가 하나 될 때까지 수백만 년을 날아갈 것이다. 잘츠부르크는 이렇게 변치 않고 날아가야 한다. 

합장 ⓒ Monica Rittershaus

오후 4시에 시작한 공연이 9시가 넘어 끝났다.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 높이 솟은 소금성(Hohensalzburg)을 올려다본다. 볼프람은 ‘변함없는 가치’의 주제가라 할 만한 ‘저녁별의 노래’를 고즈넉이 부르고 있다.

이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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