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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준호 Jul 25. 2023

One Brief Shining Moment

짧지만 빛나는 순간, 카멜롯이라 불렀던

편모슬하 발달장애우 포레스트 검프는 우직한 성품 탓(덕)에 특출한 삶을 산다. 뜀박질이라면 지지 않던 그가 미식축구에서 우승해 백악관에서 케네디 대통령을 접견할 때 뒤로 음악이 흐른다. 알아차리는 사람이 없을지라도, 굳이 넣었다면 꼭 필요한 음악이어야 한다. 뮤지컬 <카멜롯>의 주제가이다. 검프는 젊은 대통령과 그의 동생이 연달아 암살되었다고 회고한다.

소피 마렵소

영화 <바비, 2006>의 주인공들은 동생 케네디 암살 당일 우연히 그의 주위에 있던 보통 사람들이다. 총상을 지혈했던 호텔 주방 직원 호세는 LA 다저스 열성 팬이다. 그는 그날 6연속 완봉승을 이룰 드라이스데일의 경기 티켓을 구했다. 누구나 가고 싶지만 아무나 가긴 힘든 자리였다. 그런데 심사 꼬인 지배인이 야근을 지시하는 바람에 표를 주방장에게 양보한다. 값을 묻는 주방장에게 호세는 ‘공짜’라고 답한다. 애초에 가치를 매길 수 없기 때문이다. 그는 관람 후 티켓 조각을 돌려주기만을 바란다. 

"The Once and Future King"

주방장은 벽에 왕관을 그리고 그 아래 ‘한때 그리고 훗날의 왕 The Once and Future King’이라 적는다. T. H. 화이트가 쓴, 뮤지컬 <카멜롯>의 원작 소설 제목이다. 주방장은 호세가 “친절하고 남을 위하고 겸손한” 젊은 시절 아서왕을 닮았다는 특급 찬사로 감사를 표한다.

재키 챈 아님!

<포레스트 검프>나 <바비>의 장면은 그야말로 아는 사람만 알아챌 것들이지만, 2016년 내털리 포트먼 주연의 영화 <재키>에서 <카멜롯>은 훨씬 중요한 역할을 한다. 남편 사후 인터뷰를 마무리하던 재클린 케네디는 가장 중요한 것을 잊었다며 <카멜롯> 이야기를 덧붙인다. 남편이 생전에 특히 좋아했던 주제가의 마지막 구절을 자기 정부의 기조로 삼았다는 것이다. 쫓겨나다시피 백악관을 떠나기 하루 전 그녀는 음반을 축음기에 올린다. 노래는 영화 말미에 다시 흐른다.

     

잊히지 않게 해 다오

짧지만 빛났던 순간

카멜롯이라 부르던

때가 있었음을     


Each evening from December to December...

9회 말 2사 후, 야구팀은 도저히 뒤집을 수 없을 경기라도 꼭 이길 수 있다는 꿈을 팬들에게 심어줘야 한다. 지도자라면 마땅히 지금의 한발 후퇴가 더 큰 도약을 위한 움츠림이라는 이해를 구성원 모두에게 구하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매진해야 한다. 케네디가 그것을 바랐고, 많은 이들이 공감했기에 그의 이름이 잊히지 않는 것이다. 화이트의 소설을 뮤지컬로 각색한 앨런 제이 러너는 케네디와 초트 스쿨, 하버드 대학을 함께 나온 친구였다. 케네디는 친구가 자신의 이상을 음악으로 만들어줬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케네디 암살의 진실은 덮어두고 음모론만 무성한 동안 그의 사생활은 폭죽처럼 파헤쳐졌다. 메릴린 먼로를 비롯한 숱한 상대와의 추문은 그의 이름에 먹칠했다. ‘내로남불’이 <카멜롯>의 피해 갈 수 없는 주제이기 때문일까? 아서왕의 왕비 기네비어는 남편의 오른팔인 랜슬럿과 치명적인 사랑에 빠진다. 랜슬럿은 “당신을 떠난다면 여름은 아닐 거에요”라는 노래로 애틋함을 표한다. 그는 가을, 겨울, 봄의 추억을 더하며 결국 영원히 헤어질 수 없음을 암시한다.

If Ever I Would Leave You

그런 두 사람을 내칠 수도, 용서할 수도 없는 아서왕은 “여자를 어찌 다룰까”라고 노래한다. 2021년 케네스 브래너의 자전 영화 <벨파스트>에서, 여자친구에 몸이 달은 손자를 위해 할아버지가 할머니와 춤을 추며 이 노래를 부른다. “여자를 어찌 다룰까 (...) 그저 사랑할밖에.”

Simply love her!
How to Handle a Woman

아서왕이 “짧지만 빛났던 순간”을 잊히지 않게 해달라고 당부한 소년은 톰이다. 그냥 톰이라면 의미 없지만 그는 자신을 ‘워릭의 톰’이라고 밝혔다. 함께 싸우길 청하는 소년에게 왕은 더 큰 의무를 부여한다. 전장을 벗어나 살아남아 우리 이야기를 후대에 남겨달라는 것이다. 워릭의 토머스 맬러리(1415-1471)는 수많은 아서왕 설화의 원전인 <아서왕의 죽음 Le Morte d'Arthur>을 쓴 사람이다. 아서는 그것으로 승리했음을 소리 높여 외친다.

That was known as Camel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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