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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준호 Aug 14. 2023

퍼시 비시 셸리에 대하여

단눈치오의 셸리 사랑

(이어서)


『쾌락』과 『무고한 존재』 모두 탁월한 음악 감식가인 단눈치오의 공감각 묘사가 흘러넘친다. 『쾌락』을 주도하는 곡은 루이지 라모의 ‘노란 귀부인들의 가보트’이다. 다작인 라모의 많은 음악 가운데 정확히 어떤 곡을 뜻한 것인지는 모르겠다. 다만 라모를 ‘장 필리프’라는 이름 대신 ‘루이지’라고 의도적으로 잘못 쓴 것을 보면, 음악도 짐짓 수수께끼로 남기려는 의도일지 모른다. 그러나 수수께끼는 풀라고 있는 법! 소설 분위기에 가장 어울리는 것은 <A단조의 새 모음곡> 가운데 ‘가보트와 두블레’이다. “권태와 사랑의 무도곡”이자 “여기서 자주 연주하며 빌라 스키파노이아에 머물렀던 추억으로 계속 남을 그 곡”이다.

원곡은 하프시코드이나, 마리아는 이렇게 피아노로 연주했을 것이다.

음악이 스페렐리와 마리아를 이어주는 공통 관심사라면, 스페렐리가 마리아에게 강권하는 작가는 영국 낭만주의 시인 퍼시 비시 셸리(Percy Bysshe Shelley, 1792-1822)이다. 스페렐리는 마리아에게 말을 타고 소나무 숲을 가로질러 가자고 한다. 그러면서 “셸리가 제인에게 쓴 서정시들 가운데 「추억 Recollection」을 다시 읽으라”라고 권한다. 곧 독자에게 읽으라는 말이다. 그 이유는 이 시가 소나무 숲 예찬이기 때문이다.

     

<영 인디애나 존스> "위험한 큐피드" 편 가운데

(...)

우린 소나무 숲을 방황했지 / 대양의 거품을 감싸 안은 곳

We wandered to the Pine Forest / That skirts the Ocean's foam,

(...)

우린 소나무 가운데 멈춰 섰지, 황무지의 거인들이 선 듯한 곳

We paused amid the pines that stood / The giants of the waste,

(...)

우린 웅덩이 곁에 멈춰 섰지, 숲 가지 아래 놓인 곳

We paused beside the pools that lie / Under the forest bough;

(...)

우리 높은 세상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 달콤한 전망이 저 아름다운 녹색 숲을 사랑하는 물속에 비쳤지

Sweet views which in our world above / Can never well be seen / Were imaged in the water's love / Of that fair forest green;

(...)     

물속에 비쳤지...

단눈치오에게 소나무 숲은 향기로운 녹색 사랑의 공간이다. 스페렐리와 마리아는 마치 예정된 것처럼 그 숲으로 간다. 디아나 여신과 악테온, 비너스와 아도니스, 셀레네와 엔디미온 그리고 트리스탄과 이졸데가 사랑을 나누었던 그 장소이다. 결국 뒷날 단눈치오는 그 유명한 ‘비 내리는 소나무 숲 La pioggia nel Pineto’(1903)를 쓴다. 솔숲을 적시는 빗방울에 화자(話者)와 그의 연인 에르미오네가 식물이 되는 이야기이다.

식물 정령에는 다 이유가 있다

돈나 마리아는 계속해서 셸리의 시에 파고든다. 「두 요정: 알레고리 The Two Spirits: An Allegory」도 그것이다. 여기서는 셰익스피어 『템페스트』에 나오는 에어리얼과 같은 요정 둘이 대화한다. 첫째 요정은 ‘밤’을, 둘째 요정은 ‘낮’을 기다린다.

     

밤이 온다!

Night is coming!

(...)

그것은 낮이다!

And that is day!

트리스탄과 이졸데... 연소자는 볼 수 없다 하네..

소설의 마지막에 어쩔 수 없는 이별을 앞둔 스페렐리와 마리아는 언젠가 약속했던 대로 돈나 로마 영국인 묘지의 셸리의 무덤에 함께 간다. 바람이 불 때마다 장미 나무에서 꽃잎이 흩날린다. 소설에는 나오지 않는 셸리의 묘석에 적힌 글은 셰익스피어의 『템페스트』의 그 유명한 시 ‘다섯 길 물속 Full fathom five’에서 가져왔다.

     

시신 하나 흩어지지 않고

밀물과 썰물을 견디어

귀하고 진기한 것이 되었네     

Nothing of him that doth fade,

But doth suffer a sea-change

Into something rich and strange.     

에어리얼이 왕자에게 아버지의 익사를 알리는 많은 노래 가운데 단연 최고는 퍼셀이다

대신 단눈치오는 그 옆에 또 하나의 묘석에 적힌 시를 마리아의 입으로 들려준다.     


여기 두 친구가 있으니 그들의 삶은 불가분이었네

그들의 추억도 그러하리, 지금 나란히

무덤에 누웠지만, 그들의 유골도 나뉘지 않으리

그들의 심장이 살아서 하나로 뛰었으니     

These are two friends whose lives were undivided;

So let their memory be, now they have glided

Under the grave; let not their bones be parted,

For their two hearts in life were single-hearted.

루이 에두아르 푸르니에가 그린 셸리의 장례: 서 있는 사람이 트렐로니, 헌트, 바이런, 뒤에 무릎을 꿇은 이가 아내 메리 셸리. 이 그림은 리버풀에 있다고 한다.

셸리의 시 「묘비명 Epitaph」이 적힌 무덤은 사실 친구 에드워드 트렐로니의 것이다. 트렐로니는 바이런과 셸리에게 항해를 가르친 친구이며 두 사람의 장례를 주도했다. 그는 셸리가 라스페치아에서 익사체로 발견된 뒤 시신을 수습해 피사에서 화장했고, ‘타지 않은 심장’을 존 키츠가 묻힌 로마 영국인 묘지에 안장하며 그 옆자리를 자기 무덤으로 예약한 것이다. 마리아는 “그들이 심장이 살아서 하나로 뛰었다”는 구절에서 감동하여 베일을 벗어 가져온 장미 줄기를 감싼 뒤 향기를 맡고 비석에 내려놓았다. 그 장미는 며칠 전 눈 오는 날 스페렐리가 마리아의 집 정원에 두고 간 것이었다. 그런 뒤 두 사람은 키츠의 무덤 쪽으로 걸어갔다. 돌아오는 길에 그녀는 스페렐리에게 “죽을 것 같다”라고 말하며 흐느낀다.

로마 영국인 묘지의 셸리 무덤

이제 단눈치오가 시를 쓰고 파올로 프란체스코 토스티가 곡을 붙인 <아마란타의 노래>를 얘기할 준비가 거의 다 되었다. 이러려고 이런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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