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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준호 Nov 10. 2023

쿠마의 무녀를 찾아간 바이아에서

2023년 11월의 음반 리뷰

ALPHA918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14번 

일랴 레핀의 그림에 기욤 아폴리네르가 시를 붙였고, 아래와 같이 쇼스타코비치가 곡을 썼다

괴르네와 라디오 프랑스 필의 쇼스타코비치 3부작 첫 앨범. 작곡가의 베이스를 위한 음악 가운데  교향곡 13번 ‘바비 야르’와 <미켈란젤로 시에 붙인 모음곡>이 이어질 예정이다. 쇼스타코비치는 1964년 무소륵스키의 가곡집 <죽음의 노래와 춤>을 관현악 편곡한 뒤 자극을 받아 베이스와 소프라노의 가창을 더한 열한 개 악장의 교향곡 14번을 작곡한다. 가르시아 로르카(2곡), 기욤 아폴리네르(6곡), 빌헬름 퀴헬베커(1곡), 라이너 마리아 릴케(2곡)의 시에 붙인 음악은 쇼스타코비치 미학의 결정판으로 꼽힌다. 드물게 듣는 <다섯 단장>까지 미코 프랑크의 독해는 세심하고 치열하다.

연주: 아스미크 그리고리안 (소프라노), 마티아스 괴르네 (베이스),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 미코 프랑크 (지휘) Alpha  

8악장: 콘스탄티노플 술탄에게 답장하는 자포로제 카사크인들

ALPHA929 슈베르트: 아름다운 물방앗간 아가씨 

2019년 알파 레이블을 통해 혜성처럼 등장한 독일 바리톤 콘스탄틴 크리멜은 코로나 시기를 거치며 호에넴스의 ‘슈베르티아데’에서 연가곡을 부르는 위치에까지 이르렀다. 직접 쓴 내지 해설에서 크리멜은 2021년 독일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이 9천 명 이상이고, 그 가운데 75 퍼센트가 남성이었음을 들며, 짝사랑으로 죽음에 이른 뮐러/슈베르트 주인공의 내면을 파고든다. 그는 엘리자베트 퀴블러로스의 ‘분노의 5단계’ 이론, 곧 부정-분노-타협-우울증-수용이라는 도식에 슈베르트의 창작 여정을 대입하고, 속편 <겨울 나그네>의 녹음이 이어질 것을 암시한다.

Alpha 그라모폰 에디터스 초이스 

연주: 콘스탄틴 크리멜 (바리톤), 다니엘 하이데 (피아노) 

장식음이 시냇물을 따라 산으로 가네~

ALPHA990 빌라 로보스: 아마존의 숲 /글래스: 메타모르포시스 I 

<아마존의 숲>은 원래 영화 <녹색의 장원>의 사운드트랙이었다. 오드리 헵번과 앤서니 퍼킨스라는 스타가 주연을 했음에도 햅번의 남편 멜 페러의 빈약한 연출력 때문에 흥행에 실패했다. 당연히 음악도 마구 편집되어 작곡가도 몰라볼 지경이었다. 화난 빌라 로보스는 도라 바스콘셀루스의 시를 더한 오라토리오로 개작했다. 자연에 대한 경외감을 담은 가장 독창적인 음악으로 꼽히지만 녹음은 매우 드문 어려운 곡이다. 이 연주는 살가도 부부가 파리 필하르모니에서 사진전 <아마조니아>를 열었을 때 함께 연주되었다. 이탈리아계 브라질 여성 성악가와 지휘자의 교감이 빚은 비범한 앨범.

연주: 카필라 프로벤찰레 (소프라노), 필하르모니아 취리히, 시모네 메네제스 (지휘) Alpha 

이것은 거의 테렌스 맬릭의 영화를 보는 것이구만!

A547 프레스코발디: 하프시코드 작품집 

바로크 건반 음악의 최고봉 지롤라모 프레스코발디가 이탈리아 남부 음악과 주고받은 영향에 대한 코르티의 독보적인 탐구를 담은 앨범이다. 1594년 베노사의 카를로 제수알도는 아내를 맞으러 페라라에 갔고 젊은 프레스코발디는 그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다. 뒷날 프레스코발디는 로마 성 베드로 사원 오르가니스트로 봉직하며 전 이탈리아의 음악적 유산을 한데 모았다. 그는 토카타, 칸초네,  치아코나, 카프리치오, 리체르카르 따위의 멜로디와 대위법 실험을 <피오리 무지칼리>로 집대성했다. 코르티는 제수알도 성악의 영향을 받은 남부 작곡가의 성과를 면밀히 비교한다. 

연주: 프란체스코 코르티  ARCANA 디아파종 도르, 쇼크 드 클라시카, 텔레라마 만점 

단눈치오는 바흐가 프레스코발디로부터 받은 영향에 대해 침을 튀며 얘기했다. 그럴 만도!

FUG808 멘델스존 & 에네스쿠: 현악 8중주 

벨기에 퀸 엘리자베스 뮤직 채플 교수인 로렌초 가토와 미구엘 다 실바가 아도르노 4중주단 멤버를 비롯한 동료들과 두 천재 작곡가가 십 대에 작곡한 현악 8중주를 녹음했다. 두 곡은 단순히 현악 4중주의 더블링이 아니라, 여덟 개 악기가 각기 독주로 복잡 미묘한 대위법의 주체가 된다는 점에서 독창성을 평가받으며 함께 연주되는 횟수도 늘고 있다. 현악기의 질감이나 주제의 활용에 대한 이해로부터 장차 교향곡으로 나아갈 자신감을 얻은 멘델스존이나, 루마니아 민속 음악의 역동성을 브람스의 유산에 통합하는 데 성공한 에네스쿠의 과감함이 실내악 장인들의 손으로 진가를 발한다.

연주: 로렌초 가토 (바이올린), 미구엘 다 실바 (첼로), 퀸 엘리자베스 뮤직 채플 솔로이스츠

Fuga Libera  

멘델스존은 8중주의 3악장에 괴테의 발푸르기스의 밤 풍경을 묘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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