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5월 음반 리뷰
앙리 르롤 (Henry Lerolle, 1848-1929)
오르간 리허설 La Répétition à l'orgue, 1887
이 그림은 파리의 생프랑수아 자비에르 교회의 오르간 갤러리를 묘사한다. 가수는 마리 에스퀴디에, 오르가니스트는 작곡가 에르네스트 쇼송이다. 왼쪽에 앉아 있는 여성은 르롤의 아내인 마들렌 에스퀴디에이며, 그녀의 오른쪽에 앉아 악보를 들고 있는 여성은 쇼송의 아내 잔느 에스퀴디에이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ALPHA1110 코파친스카야 - 망명자
몰도바 태생의 코파친스카야는 소련 붕괴 뒤 빈으로 이주했고, 지금은 스위스 베른에 산다. “뿌리 뽑힌” 그녀가 같은 처지 선배들의 음악을 한 데 모았다. 소련에서 평생 인정과 괴롭힘을 오가다 함부르크에서 만년을 보낸 슈니트케, 폴란드에서 영국으로 망명한 안드제이 파누프니크, 4분음 피아노를 발명했지만 파리에서 조국을 돌아볼 수밖에 없던 비슈네그라드스키가 그들이다. 그러나 평생 빈에서 살았음에도 군중 속에 고독했던 슈베르트도 같은 신세. 벨기에를 떠나 미국 신시내티에서 생애 처음 ‘뿌리’ 내린 이자이의 교향시 ‘유배’가 음반 제목. 몰도바와 우크라이나/러시아 민요 두 곡이 망명자의 향수를 쓸쓸히 담아낸다.
연주: 파트리치아 코파친스카야 (바이올린), 토마스 카우프만 (첼로), 카메라타 베른
Alpha 그라모폰 에디터스 초이스, BBC뮤직매거진 초이스
회색 깃털의 뻐꾸기야, 왜 슬픈 노래만 부르니?
숲에 지친 걸까, 아니면 내 죽음을 예언하는 걸까?
하이두크, 전사여, 나는 네 소녀의 그리움을 전하러 왔다
그녀가 우물에서 물을 길으러 갈 때 부르는 노래를
회색 깃털의 뻐꾸기야, 내 사랑에게도 내가 그녀를 그리워한다고 전해줘
나는 세 명의 보야르를 더 죽이고, 마을로 돌아갈 것이다
ALPHA1114 모차르트: 콘서트 아리아
륄리, 라모, 글루크의 ‘오트콩트르’ 삼부작을 완성한 메헐런의 다음 타깃은 모차르트. 11개 연주회용 아리아 가운데 모차르트가 직접 완성한 8곡에 <미트리다테> 가운데 한 곡을 더했다. 그 자체로 콘서트를 위해 쓴 곡이거나, 다른 작곡가의 인기 오페라에 삽입하려고 쓴 것을 말한다. 모차르트는 9세에 첫 곡을 썼고, 14세에 밀라노에서 <미트리다테>를 발표할 때는 로시니를 예고하는 데까지 이르렀다. 만하임과 빈에서 당대를 주름잡던 테너를 위한 곡들이 낭만주의를 열어젖히는 순간, 메헐런의 시선이 베토벤 <피델리오>의 주인공 플로레스탄을 바라봄을 짐작케 한다. ‘자고로’라는 뜻의 앙상블이 그가 원하는 모든 것을 제공한다.
연주: 레이나우드 반 메헐런 (테너), 아 녹테 템포리스 앙상블
Alpha 디아파종 도르
CVS114 그레트리: 오페라 <카이로의 대상> (Blu-ray & DVD)
마리 앙투아네트의 총애를 받았지만 혁명 뒤에도 여전히 업적을 인정받았던 앙드레 그레트리(1741-1813)의 걸작이 베르사유 무대에서 다시 올려졌다. 1784년에 초연된 이 작품은 놀랍게도 모차르트의 <후궁탈출>의 얼개에 <피가로의 결혼>의 갈등 요소와 <티토 황제의 자비>의 결말을 담고 있다. 해적에게 납치된 부부가 이집트에서 서로 떨어졌다가 튀르키예 고관의 궁전에서 재회해 탈출을 시도한다. 붙잡힌 이들은 알고 보니 고관의 프랑스인 친구의 아들과 며느리. 이집트와 튀르키예의 이국적인 관심을 음악에 반영하고, 그 사이 프랑스 미덕을 예찬하는 민족주의 음악의 시발을 엿볼 수 있다. 음악은 물론이고 의상에서 발레까지 완벽한 프로덕션이 오감을 즐겁게 한다.
연주: 에르베 니케 (지휘), 르 콩세르 스피리튀엘
Chateau de Versailles 그라모폰 에디터스 초이스
RIC469 포레: 레퀴엠 (1888년 초연 판본)
포레 서거 100주기를 기렸던 2024년 나뮈르에서 녹음된 교회 음악집. 앙리 르롤이 1887년에 그린 앨범 표지 그림은 파리 생프랑수아 자비에르 교회의 오르간 갤러리를 묘사한다. 오르간을 연주하는 에르네스트 쇼송과 에스퀴티에 세 자매(화가와 작곡가의 아내를 포함)는 마치 한 해 뒤 “아무 목적 없이 재미로” 작곡될 포레 레퀴엠의 분위기를 전하는 듯하다. 출세작인 <장 라신 칸티클>부터 ‘봉헌’과 ‘리베라 메’를 쓰기 전 <레퀴엠>의 초연 모습, 여성 합창과 하르모늄, 바이올린 만으로 반주하는 <빌레르빌 어부의 미사>와 극소편성의 마드리갈, 모테트가 평생 천국과 속세 사이에 평화의 가교를 놓았던 작곡가를 돌아보게 한다.
연주: 나뮈르 실내 합창단, 밀레니움 오케스트라, 티보 레나르츠 RICERCAR
RIC468 오르페우스의 류트
‘21세기의 오르페우스’ 보르 줄얀은 피렌체의 아카데미아 플라토니카와 페라라의 궁정에서 싹튼 류트 음악의 에너지가 즉흥 연주에서 왔다고 확신하고, 그 씨앗이 뿌려진 15세기로 날아갔다. 당대 제일의 연주자 피에트로보노의 연주를 본 사람은 “어떻게 그의 손가락들이 동시에 날아다니고, 한 손이 한순간에 그렇게 많은 다른 곳에 있을 수 있는지”에 놀랐다고 전한다. 즉흥은 단순히 명인기를 뽐내는 것이 아니라 악상을 기억하고 필요할 때 상상력을 동원해 그것을 끄집어내는 육체와 정신의 합일이었다. 한 사람이 멜로디를 연주하는 동안 다른 사람이 대위법을 덧붙이는 ‘리체르카르’야말로 이 음반사의 지향점이다.
연주: 보르 쥴얀 (류트, 보컬), 모니카 푸스틸니크 (비올라 다 마노) RICERCAR
디아파종 도르, 쇼크 드 클라시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