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6월의 음반 리뷰
ALPHA1034 바흐 : 평균율 클라비어곡집 2권
연주: 아론 필잔 (피아노) Alpha
오스트리아 피아니스트 아론 필잔이 2020년 1권에 이어 완성한 2권. 카를하인츠 켐머를링과 라르스 포크트의 제자인 그는 글렌 굴드의 자유분방한 스타일을 존경하지만, 그보다는 언드라시 시프나 머리 페라이어의 단정한 연주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말한다. 또한 그는 톤 코프만의 오르간이나 하프시코드 연주 그리고 르네 야콥스가 지휘한 <B단조 미사>와 같은 바흐의 성악곡으로부터 많은 영감을 얻는다. 그것은 ‘키리에’가 <평균율 1권>의 마지막 푸가와 연관 있듯이 실제로 바흐의 의도가 그러했기 때문이라고 필잔은 확신한다. 바흐를 자기 과시의 도구가 아니라 내면의 성숙과 세상을 향한 사랑으로 이해하려는 음반.
ALPHA1040 모차르트: 클라리넷 작품 전곡 1집 - 세레나데
연주: 니콜라 발데루 (클라리넷) 외 Alpha
40대 중반의 니콜라 발데루는 그동안 작고한 거장 줄리니, 아바도, 하이팅크, 마주어에서 고음악의 거봉 아르농쿠르와 노링턴까지 숱한 지휘자와 경험을 쌓은 베테랑. 알파 레이블 데뷔를 시작으로 모차르트가 클라리넷을 위해 쓴 전곡에 도전한다. 그는 모차르트의 관악기 사랑은 시대정신, 곧 관현악의 전성기가 도래했음을 증명하는 것이라 확신한다. 모차르트의 천재성에 발맞춰 제국 극장과 궁정은 관악 앙상블 ‘하르모니’를 창단했다. 첫 앨범은 바로 모차르트가 빈에 발을 디딘 이 무렵에 쓴 세 세레나데를 담았다. 규모와 표현력 면에서 오페라에 필적하는 관악 합주를 통해 발데루와 동료들이 상쾌한 출발에 성공했다.
ALPHA1121 쇼스타코비치: 미켈란젤로 시 모음곡, 교향시 "10월"
연주: 마티아스 괴르네 (베이스),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미코 프랑크 (지휘) Alpha
미켈란젤로 탄생 500주년을 기념한 <모음곡>은 쇼스타코비치가 죽기 한 해 전에 쓴 ‘백조의 노래’이다. 솔제니친의 체포와 로스트로포비치의 서방 이주에, 베토벤 사중주단의 리더 보리솝스키, 누이 마리아, 바이올리니스트 오이스트라흐의 죽음까지 잇따라 작곡가는 깊은 내면으로 침잠했다. 애도, 상실, 죽음의 주제로 쓴 소네트를 고른 그는 제목을 새로 붙였다. 예술 전성시대 르네상스에 대한 목관의 서정적인 동경과 짧은 인생에 대한 자조가 차가운 망치 소리로 교차한다. 괴르네의 예언적인 음성이 조각가와 작곡가 모두를 빛으로 이끈다. 10월 혁명 50주년을 기념하는 위촉곡 <10월>도 반체제 예술가의 잊혔던 ‘저항작’이다.
CKD759 바흐: 푸가의 기법 (비올 앙상블 버전)
연주: 판타즘 앙상블, 대니얼 하이드 (오르간) Linn BBC뮤직매거진 만점, 스케르초 익셉셔널
“모든 성부가 지속적으로 노래한다.” 바흐 사후 <푸가의 기법>을 출판할 때 FW 마르푸르크가 서문에 적은 말은 로런스 드레이퓨스가 이 곡을 넉 대의 비올을 위해 편곡할 때 가장 주목한 점이다. ‘서정적으로 노래하기’야말로 비올 합주가 다른 어떤 앙상블보다 자신 있게 내세울 장점이기 때문이다. ‘거울 푸가’, 곧 성부가 시차를 두고 시작되다가 전위 절차에 따라 거꾸로 들리도록 설계된 푸가(12, 13곡)에서 판타즘의 합주는 아름답다. 반면 “대화를 삼가는 곡들”이라고 판단한 네 카논은 비올 대신 오르간 독주에 할당했다. 드레이퓨스는 바흐가 전곡을 자신의 이름(B-A-C-H)으로 끝낸 것은 ‘겸손’ 때문이라는 소견을 보인다.
CKD778 라흐마니노프: 교향곡 전곡, 죽음의 섬 외
연주: 크리스티안 마첼라루, 서독일 라디오 심포니 오케스트라 Linn
라흐마니노프의 교향악은 피아노 협주곡에 비해 관심이 적고 그 적은 관심도 교향곡 2번에 집중되어 왔다. 마첼라루는 부당한 무게쏠림을 해소할 방안으로 세 교향곡과 두 교향시를 한 번에 발매하는 강수를 두었다. 미숙하지만 ‘러시아 5인조’와 차이콥스키 후계자의 출발을 알리는 교향곡 1번, 실패의 트라우마를 벗고 10년 뒤 나온 걸작 교향곡 2번, 다시 30년이 지나 창작의 만년 불협화음의 시대에 조응한 교향곡 3번까지 파노라마처럼 이어진다. 마첼라루와 쾰른 악단의 선명한 청사진과 매혹적인 셈여림의 증감이 작곡가가 고민했던 많은 문제를 가감 없이 드러내준다. 교향시 <보헤미아 기상곡>과 <죽음의 섬>도 만점 부록이다.
림스키코르사코프의 <스페인 기상곡>과 차이콥스키의 <이탈리아 기상곡>을 모델로 쓴 <보헤미아 기상곡>은 나도 처음 듣는다. 기상곡은 아침에 일어나라는 곡이 아니라 기괴한 모양이라는 뜻의 카프리치오를 번역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