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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준호 Dec 24. 2018

37. 러시아 발레단

제37장: 사울 피텔베르크  


이 장에서 아드리안은 또 한 사람 악마의 하수인을 만나게 된다. 연주 여행 중에 잠시 파이퍼링에 돌아온 그를 기다리는 것은 뮌헨에서 자가용을 타고 온 손님이었다. 슈바이게슈틸 부인은 그가 ‘날건달’ 같다고 불쾌하게 귀띔한다. ‘일류 음악가들의 매니저’라 자신을 소개한 자는 폴란드 태생의 유대인인 사울 피텔베르크였다. 그는 최근에 나온 아드리안의 작품을 눈여겨보고 그와 일하기 위해 찾아왔다고 설명했다.


피텔베르크는 타고난 예술에 대한 안목과 돈 많은 호사가들에 대한 아첨을 결합해 큰 성공을 거두고 있다고 자평한다. 그는 아드리안과 그의 작품이 유럽 도처에서 성공을 거두게 할 자신이 있다고 큰소리친다. 한편으로 그는 선택받은 예술가들은 그렇게 대중 앞에 나서지도, 심지어 그들 상호간에도 교류를 갖기 않았음을 빈의 한 하늘 아래 살았던 브루크너, 브람스, 볼프의 예를 들어 주장한다. 아드리안 또한 그와 같은 반열이라 추켜올리며 자신과 같은 거간은 불필요하다고 깎아 내린다.

<봄의 제전> 초연을 재구성한 BBC 영화 <제전의 폭동Riot at the Rite> 가운데

‘선택받은 자’에 대한 이야기는 선택받은 두 민족, 유대와 독일에 대한 관계로 확대된다. 프랑스와는 비교할 수 없는 우수한 역량 때문에 두 민족은 같은 운명이자 라이벌 관계라는 것이다. 하고 싶은 말을 가리지 않고 떠들고 스스로 비하하기를 오가던 피텔베르크는 마치 그 자체가 목적이었다는 듯이 순순히 물러난다. 이 흥행사의 장면은 오히려 아드리안의 음악이 세상과 동떨어진 것이라 규정하거나 또는 그렇게 만들려는, 조롱이자 간계로 읽힌다.


이 장 전체는 무엇보다 냉소적으로 당대 유럽 음악계를 풍자한다. 피텔베르크는 러시아 발레단(Ballet Russe)의 단장으로 파리에서 대성공을 거둔 세르게이 댜길레프(Sergei Diaghilev, 1872-1929)나 그의 후배 솔 휴록(Sol Hurok, 1888-1974)과 같은 임프레사리오를 상징한다.

피텔베르크가 지휘한 보로딘 <이고르 공> 가운데 폴로비츠인의 춤

댜길레프는 쇤베르크의 라이벌인 스트라빈스키의 음악적인 대부로, 무명의 젊은 작곡가에게 <불새>, <봄의 제전>, <페트루슈카>와 같은 작품을 의뢰해 파리의 중심인물로 만들었다. ‘피텔베르크’라는 이름은 폴란드 지휘자였던 그제고시 피텔베르크(Grzegorz Fitelberg, 1879-1953)로부터 가져온 것이 분명하다. 그는 <봄의 제전>을 초연했던 피에르 몽퇴가 미국으로 건너 간 뒤에 러시아 발레단의 지휘자가 되어 스트라빈스키의 오페라 <마브라>를 초연한 인물이다. 피텔베르크가 자신이 “댜길레프에 이은 파리의 2인자”라고 말하긴 하지만 뒤에 그가 언급하는 동료들, 곧 장 콕토, 레오니드 마신, 마누엘 데 파야야 말로 댜길레프와 스트라빈스키 사단의 핵심 멤버들이다.


결국 토마스 만은 피텔베르크와 아드리안의 만남을 통해 스트라빈스키 진영의 속물적인 예술을 비꼼과 동시에 쇤베르크 진영의 고립된 예술관을 꼬집고 있다.

파월과 프레스버거가 만든 <분홍신>에 버나드 허먼의 음악을 입힌 매튜 본의 발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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