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드리안의 마음을 얻었다고 생각한 슈베르트페거는 그것이 파국의 전조임을 전혀 짐작하지 못했다. 두 사람은 파울 자허(많은 현대 음악가를 후원했다)의 초대로 스위스에서 협주곡을 연주했다. 호평이 쏟아지는 가운데 이들은 취리히의 사교계에서 마리 고도라는 여인을 만나게 된다. 마리는 파리에서 성공한 디자이너(당대의 코코 샤넬은 스트라빈스키와 염문이 있었다)로 무대 의상에도 깊이 관여했던 성공한 여인이었다. 더욱이 토마스 만이 여러 작품에서 그토록 좋아했던 ‘관자놀이’도 매우 매력적인 여성이었다. 성공한 여성 전문직 종사자와 주목 받는 작곡가의 만남은 예사롭지 않았다.
이윽고 마리가 다른 일을 위해 뮌헨에 왔을 때 아드리안은 일전에 자신이 묵었던 기젤라 호텔을 추천한다. 친구와의 대화를 통해 그가 마리와 결혼을 염두에 두고 있음을 안 세레누스는 말할 수 없이 기뻐했다. 세레누스가 직접 본 마리의 모습은 더욱 훌륭했고, 특히 친구의 말처럼 그가 자신의 어머니와 흡사한 그녀의 목소리에 깊이 동요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세레누스는 친구가 피안의 음악과 밀교 같은 숫자로 가득한 마방진과 계시록의 세계를 벗어나 진정한 삶의 영역으로 돌아온 것에 매우 고무되었다. 그러나 만일 그렇다면 악마와의 계약 위반이었고, 이것은 오히려 악마의 계략을 위해 모든 준비가 완료된 것임을 암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