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드리안의 곁을 맴돌며 그에게 곡을 써달라고 조르던 루디 슈베르트페거는 마침내 뜻을 이룬다. 아드리안의 성격으로는 나올 수 없는 협주곡이 이렇게 해서 탄생했다. 창작자가 작품에 자기 목소리를 담기 시작한 낭만주의 시대 이래로 협주곡은 진지한 작곡가의 관심 사항이 아니었다. 특히 독일 작곡가의 주관심사는 교향곡이었고, 협주곡은 스스로 연주하기 위한 것이거나 절친한 친구를 위해 쓰는 것이었다. 자신이 받아야 할 박수를 명인기를 보인 독주자에게 돌리고 싶을 정도로 관대한 작곡가는 많지 않았다. 하물며 아드리안같이 자의식이 강한 작곡가야 말할 것도 없었다.
아드리안은 불링거 저택의 모임에서 스스로 그런 진지한 작곡가임을 공고히 한다. 사람들은 구노와 베를리오즈, 빈의 왈츠들을 들으며 가벼운 음악에 아드리안이 달가워하지 않을 것이라고 슬쩍 떠본다. 그는 훌륭한 작곡가는 그런 가벼운 것에도 관대하고, 가벼운 것을 잘 다루기 위해서는 오히려 무게 있는 기반이 필요하다는 식의 자만심을 피력한다. 아드리안은 생상스의 <삼손과 델릴라>에 나오는 델릴라의 아리아 ‘그대 음성에 내 마음 열리고’(Mon cœur s’ouvre à ta voix)를 함께 듣기를 권한다.
그대 음성에 내 마음 열립니다 / 동트는 새벽에 입 맞추며 꽃이 피어나듯이
허나 내 사랑하는 이여, 이 눈물을 그쳐줄 / 그대 목소리를 좀 더 들려줘요!
영원히 델릴라 곁에 돌아온다고 말해줘요! / 지난날의 약속을, 내가 좋아한 그 약속을
다시 한 번 되풀이 해줘요!
아, 답해줘요, 나를 황홀경에 잠기게 해줘요! / 보리 이삭이 산들바람에 출렁이듯이
체념하려던 내 마음은 이제 그리운 / 그대 목소리에 떨며 몸부림칩니다.
죽음을 실어 나르는 화살보다 빠르게 / 사랑하는 사람이 그대 품 안으로 날아갈게요.
아, 답해줘요, 나를 황홀경에 잠기게 해줘요! / 내 사랑에 답해줘요.
아드리안은 바그너의 영향을 듬뿍 받은 관능적인 델릴라의 아름다운 노래를 예로 들며 예술에 있어 엄격한 도덕적인 잣대가 창작성을 제한한다는 주장을 한다. 세레누스가 보기에 아드리안은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살롱의 대화 수준과 주제를 벗어나 있었다. 그 방어란 곧 진지한 작곡가로서 슈베르트페거를 위한 협주곡을 써준 사실이었다. 그리고 어쩌면 이 또한 슈베르트페거를 완전히 자기 수하로 두기 위한 악마적인 계획의 수순이었는지 모른다. 아울러 각각 루이스 크라스너(Louis Krasner, 1903-95)를 위해 바이올린 협주곡을 쓴 쇤베르크와 알반 베르크의 예를 떠오르게 한다.